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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에 새겨진 꽃 매발톱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에 피어난 꽃
이슬에 새겨진 꽃매발톱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에 피어난 꽃 ⓒ 김민수


내 소망 중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슬을 볼 수 있는 곳에 사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 삶의 자리에서 떠난 뒤에야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고, 그 시간을 좀더 행복하게 만들어 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가 다시금 새겨지는 요즘이다. 지난 날의 상처와 오지 않은 불확실한 내일을 염려하느라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어려서부터 경쟁하며 자란 덕에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겨 자기 존재로 인해 행복해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행복해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늘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다 생각하니 미래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이슬 작은 이슬방울, 작은 우주를 담고 피어나다.
이슬작은 이슬방울, 작은 우주를 담고 피어나다. ⓒ 김민수

이렇게 나의 존재감이 흔들릴 때, 어제의 상처와 내일의 불확실성이라는 악마가 나를 사로잡을 때 나는 작은 것에 집중한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이슬방울을 가만히 바라보면 자기보다도 더 큰 것들을 넉넉히 품고 있다. 그리고 햇살이 뜨면 이내 사라져 버리고, 그 안에 담겨있던 것들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이슬을 보면서 짧은 이슬의 삶과 다르지 않은 내 삶을 돌아본다.

그리 길지 않을 터인데,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은 내게 있어서 이슬이다.

이슬 바라보노라면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다.
이슬바라보노라면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다. ⓒ 김민수

작은 이슬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착해지려고 한다. 맑음, 모난 곳 없음, 작음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닮고 싶은 것들이다.

맑아서 자기의 색깔을 주장하지 않지만 본질을 잃지 않는 이슬 방울처럼 살고 싶다. 모난 곳이 없어 작은 풀잎도 상하게 하지 않는 이슬방울처럼 살고 싶다. 물량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작은 것의 의미를 깨달아가며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소망이다. 좀처럼 혼탁한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고, 각이 져서 남을 포용하지 못하는 마음이 다듬어지지 않고, 큰 것만 추구하는 나를 본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탄식이 절로 난다.

이슬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 그렇게 살고 싶다.
이슬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 그렇게 살고 싶다. ⓒ 김민수

아름다운 말들은 세상에 넘쳐나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퍽퍽하기만 한 것일까? 교회마다 성당마다 사찰마다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우리 세상은 왜 이렇게 비종교적일 뿐 아니라 반종교적인 것일까?

그것은 삶으로 살지 못함이다. 삶으로 살아지지 않는 것은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라도 유희에 불과하며, 언어의 유희를 넘어서서 언어의 공해에 불과하다. 나도 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변명하자면, 내가 말하는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그 노력과는 다르게 내가 말하는 삶과 전혀 다른 길에 서있는 나를 볼 때 이방인을 보는 것처럼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슬 맑고 영롱한 이슬, 그의 삶은 왜 그리도 짧을까?
이슬맑고 영롱한 이슬, 그의 삶은 왜 그리도 짧을까? ⓒ 김민수

그의 삶은 작고 짧지만 맑다. 그들의 고향은 바다 혹은 강물이다. 그의 삶은 짧지만 영원하다. 작지만 작지 않다. 그들의 작지 않음은 물신과는 다른 작지않음이다. 그들의 영원은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그들은 사라질지언정 시들지 않는다. 늘 풋풋하다. 무더운 여름, 이슬방울에 마음이 촉촉하게 젖는다.

우리 육체에도 이슬방울이 생긴다는 것을 아는가? 농부의 검은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노동자의 굵은 팔뚝에 맺힌 땀방울 그 모두가 이슬방울이다. 맑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슬방울, 그것은 강제로 찜질방에서 내는 노폐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땀방울, 맑은 이슬이다.

풀잎에 맺힌 작은 이슬방울들을 보면서 오늘 나는 노동자들과 농민들과 이 땅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소금땀 흘리는 모든 이들의 땀방울을 떠올린다. 이슬이 있어 새벽 풀섶이 아름답듯이, 그들의 땀방울이 있어 아직은 이 땅에 살 만한 세상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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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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