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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버마(미얀마) 정부의 전횡과 독재를 피해 1994년 미국으로 망명한 시인 마웅 소 챙(59)의 격앙되고 떨리는 목소리가 강당을 채웠다.

 

"1962년 네윈 장군과 그의 일당이 강제로 권력을 찬탈한 후 군사독재가 여전히 우리 버마 국민들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딴쉐 장군과 그의 군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당신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서 눈을 돌리지 말아주십시오."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의 모임'(회장 임동확 시인)이 주최한 '한국-버마 문학 교류의 밤'이 진행된 8일 밤. 서울 마포 이원문화센터에 모인 100여명의 버마 망명객과 한국인들은 진지하게 마웅 소 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임동확 회장은 "한때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버마는 지금 (군사독재와 사이클론 피해 등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며 "1980년 광주항쟁이라는 아픔의 역사를 지닌 우리가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이 건설하고자 하는 민주사회에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말로 이날 문학 교류의 밤이 지닌 의미를 설명했다.

 

행사장에는 이승철, 정용국, 권오영, 유종순, 김지유, 신순봉 등 한국의 시인 10명이 자리를 함께했고,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버마의 청년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들은 양국의 입장을 격려하는 시들을 낭송하고, 한국과 버마의 노래와 전통공연을 펼치며 우애를 다졌다.

 

이번 문학 교류의 밤 후원단체의 하나인 한국작가회의 도종환 사무총장(시인)은 축사를 통해 "1988년 8월 8일 버마 민중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우리와 유사한 아픔을 겪고 있는 버마인들을 마음으로부터 위로하고 지지한다"는 말을 전해 좌중의 박수를 받았다.

 

한국과 버마의 시를 낭송하고, 전통문화 공연 펼치며 우애 다져

 

이날 행사에선 한국의 시인들이 '저항'(임효림)·'나는 벌레가 무섭다'(권오영)·'동사 2-1980년 겨울, 서울'(유종순)·'테칼코마니'(김지유)·'광주와 버마 사이 그리고 꽃불 같은 사람들아'(이승철) 등의 작품을 비장한 어투로 낭송했고, 버마 저항시인들이 대표적 작품들인 '억지웃음'·'나와 그들'·'믿음' 등이 울려 퍼졌다.

 

행사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마웅 소 챙은 버마 양곤대에서 철학과 미학을 전공한 작가로 1973년 등단 이래 망명 전까지 지속적으로 반독재 운동을 전개해온 사람. <탄환의 의미> <아름다운 총소리> <거친 화산> 등의 시집을 출간했으나 그의 작품은 여전히 버마에선 금서다. 마웅 소 챙의 시집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그럼에도 마웅 소 챙은 "지금 버마에는 두 부류의 작가가 존재한다. 군부독재를 위해 시를 쓰는 시인들과 버마 민중을 위해 시를 쓰는 시인들. 누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생존해 민주화된 버마를 자랑스레 맞이할 것인지는 자명하다"란 말로 자신의 처지가 비관적이지만은 않음을 강조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인의 가없는 낙관이었다.

 

행사의 마지막. 사회를 맡은 정용국 시인은 "우리는 오늘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버마 민중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 한마디는 '한국-버마 문학 교류의 밤'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명료하게 함축하고 있었다.

 

아래 인용하는 시는 1988년 버마 전국총학생회 회장을 거쳐 십수년 간의 투옥생활에도 의지를 꺾지 않고, 버마의 인권신장과 민주회복을 위해 싸워온 민꼬 나잉(46)의 시 '믿음'의 한 대목이다. 그는 현재도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한다.

 

나는 동지들에게 약속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동지들에게

끝나지 않는 혁명의 시기

만약 나의 피가 아직도 붉지 않다면

그대들의 피로 나의 용기를 북돋워 달라고

끝나지 않은 혁명의 시간

만약 내가 두려움에 빠져 겁쟁이가 된다면

그대들의 영혼으로 내 마음을 이끌어 달라고….


#버마#민주화#도종환#마웅 소 챙#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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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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