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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발표됐다. 지난 10년간 직파 간첩이 붙잡힌 것은 2006년 7월 필리핀인으로 위장했던 정경학 이후 원씨가 두번째다.

 

위장 탈북 간첩은 원씨가 처음이며 성(性)을 미끼로 군 장교를 포섭했다는 등 대중들의 시선을 끌만한 요소가 많다. 그래서인지 언론들은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으로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당국 발표를 보고 흔쾌하지 않은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그가 북쪽에 넘겼다고 하는 정보는 중요 군사 기밀이 아닌 '관리 요망' 수준이었다고 한다.

 

과거 대형 공안사건의 경우 처음 발표될 때는 경천동지할 일로 소개되지만, 나중에 법원 판결에서는 형편없이 작은 사건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국은 3년여 전 원씨의 간첩 혐의를 눈치챘지만 이제야 구속 기소했다. 원정화 사건 직전에는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관련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사건이 터졌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타이밍'은 기가 막힌다.

 

사노련, 북한 싫어하는 데 이적단체?

 

경찰은 사노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했고, 활동가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사노련은 북한 체제를 국가 자본주의의 변종으로 본다. 따라서 그들은 뉴라이트보다 북한을 더 싫어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이적단체 혐의가 적용됐다.

 

사노련은 올 2월 창립해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자신들의 사무실 주소까지 써놓았다. 이런 단체가 얼마나 국가 변란을 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노련의 과격한 이론은 한국사회 전체는커녕 진보진영 안에서도 경쟁력이 거의 없다. 소수의 추종자들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들의 이론적 과격함이 실제 현실적 과격함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한 조직력으로까지 뒷받침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7월 기무사는 현직 장교와 하사관의 대학시절 경력과 인터넷에 올린 촛불집회 관련 글 등을 문제 삼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벌였다. 국방부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종의 금지도서를 정하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였다.

 

그러잖아도 진보 진영 단체들 사이에는 촛불 시위가 뜸해진 틈을 기화로 현 정권이 대대적인 공안 탄압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특히 촛불 시위 배후를 한국진보연대 등 반미 성향 단체로 지목해 어떻게든 '조직사건'으로 '엮어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는 28일 '10년만의 간첩 검거와 공안정국 시비'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사설은 "정부는 이 사건(원정화 사건)을 포함한 최근의 공안사건들이 '신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정략적 움직임'이라는 야당의 지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사노련 사건, 최근 경찰이 방통위에 '친북 좌파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는 움직임 등이 헌법이 규정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공안 살리기'에 올인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당선됐다. 그런데 집권 6개월 맞는 현재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공안 살리기'에 올인한 모습이다.

 

촛불 시위가 잦아들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가 승리하고, 올림픽의 좋은 성적까지 가세해 지지율이 상승하자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다. 여기에 북한이 핵 불능화 중단을 선언하고 북미간 관계가 좋지 않은 것도 현 정권에게는 괜찮다. 북미간 관계가 좋았다면 남한 내 공안 정국 조성은 북한을 자극해 통미봉남 우려가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태로 북미 대립이 계속되어서 내년에 새로운 미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한 6개월 정도까지 지속된다면 현 정권은 최소한 1년 정도 통미봉남 부담도 없다.

 

아마도 이명박 정권은 공안 정국을 조성해서 진보 진영을 때려잡고, 보수층을 결집시켜 사회를 안정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를 살리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전두환 정권 시절의 사고 방식이다.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 집권 7년 내내가 공안 정국이었다. 전두환 정권 내내 듣던 말, 특히 방송을 통해 항상 되풀이 되던 말이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현 정권이 방송 장악에 혈안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를 쓰고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낡은 발상으로는 경제 살리기는 어림도 없다. 25년 전 전두환 정권 시절만 해도 한국은 아직 저임금에 바탕한 노동 집약적 산업에 목매던 시절이다.

 

이제 한국은 정보통신 산업 위주의 경제 구조가 됐다.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인터넷이나 통제해 사회 불만을 막아보겠다는 발상은 25년전 '전두환 장군'이 써먹던 수법이다.

 

사실 지난 6개월간 현 정권의 경제 정책을 보면 케케묵은 냄새가 난다.

 

대운하라는 토목 공사로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했다가 일단 접었다. 고환율로 대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다가 외환보유고만 축냈다. 거기다 정부는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와중에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를 풀어 건설 경기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IMF 사태가 재발할지 모른다는 일부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만 하다.


태그:#이명박,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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