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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의 언행’이 한 신문 사설에서 ‘광우병 불안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다른 신문의 사설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전직 장관의 혹세무민’이라고 했다. 원로가 그래서 되겠느냐는 것이다. 6월 하순의 일로, 5월 5일자 시민사회신문 1면에 실린 기고문에 대한 반응이다. 다른 몇몇 신문도 비슷한 글을 실었다.

 

 이 ‘원로’는 김성훈 교수, 중앙대 부총장을 지내고 현재 상지대 총장인 자원경제학자다.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그 전에는 UN 식량농업기구 식량유통부문 외교관으로 일했다. 자원봉사 시민운동가로서도 힘쓴다.

 

 미국산 쇠고기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다는 소식, 캐나다에서 올 들어서만 세 번째 광우병 소가 확인됐다는 보도(8월 16일)와 ‘광우병 미국 쇠고기 수입허용 특혜법’이란 비난을 받는 가축법 개정안 얘기 등을 접하고, 이 새로운 국면을 판단할 자료를 찾다가 김성훈 교수를 탓하는 위의 글들을 다시 보게 됐다.

 

누가 진짜 혹세무민하는가!

 

이 원로의 어떤 ‘언행’이 ‘세상을 어지럽히고[惑世]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였나[誣民]’를 이 시점에서 톺아보고 싶어졌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통상(通商)전문 관리의 말이나, 신문들의 주장은 김성훈 교수가 CJD(크로이츠펠트-야콥병)과 인간광우병이라고도 하는 vCJD(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혼동했거나, 동일시해 ‘사실을 왜곡, 과장하고 국민 불안을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그랬을까? 설마 김 본부장의 말처럼 혼동했을까? 자원경제학 박사 교수가, UN의 농업식량 외교관을 지낸 전문가가 그렇게 ‘무식’할까?

 

 CJD와 vCJD를 동일시(同一視)? 그럴 가능성은 있다. 관점이 다르면 의외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대목은 원문을 읽어야 하는 법이다. 남이 풀이해 준대로 받아들이거나, 이를 인용해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참 위험하다. 상당수 언론이 그런 모양새인데, 이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김 교수의 글이다.

 

 - 미국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미국서 치매로 죽은 사람이 해마다 늘어나 1979년엔 653명이던 것이 2002년엔 무려 5만8,785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예일대와 피츠버그대의 의학팀이 각각 수행한 실험결과는 놀랍기 그지없다.(김 교수의 글 한 부분)

 

 그렇다. 놀랍다. 김 교수는 여기서 23년 만에 치매(癡呆)로 죽은 사람의 수가 무려 90배로 늘었다는 ‘미국 현대 질병 역사의 괄목할만한 사실’을 주목했다.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치매로 고생하는 이나 치매 부모를 모시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치매는 ‘보통 질병’이 된 것이다. 어떤 학자나 언론인도 세상의 변화를 분명하게 시사하는 이런 수치를 보면 가슴이 뛴다. 그렇지 않다면 필시 사이비(似而非)다.

 

 웬 뜬금없는 치매타령이냐고? 이 글 ‘김성훈 다시 읽기’의 핵심 출발점 중 하나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부검 없이는 확진 어려운 '뇌 송송 구멍 탁' 질병

 

 치매로 죽은 사람의 뇌를 부검하니 5~13%가 CJD로 사인(死因)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모 두 치매(Alzheimer병)인줄만 알았더니 그 중 5~13%는 CJD더라 하는 얘기 아닌가?

 

 김 교수의 글은 질문을 던진다. 최근 들어 크게 늘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치매)의 일정 부분이 프리온(Prion) 때문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프리온이 무엇인가? CJD나 vCJD와 같은 전염성 ‘뇌 송송 구멍 탁’ 질병(해면상뇌질환)을 부르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변형 단백질이다. 과거 암이나 에이즈의 경우처럼 흔히 ‘무서운’이라는 말이 붙는 물질이다.

 

 뇌를 열어봐야 정체를 알 수 있는 이 병의 특성 때문에 이 병으로 죽어도 다른 병명이 붙기 십상이다. 프리온이 어떻게 작용하여 뇌가 마치 스펀지처럼 변하는 이런 질병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정설이 없다고 한다.

 

 인간에게 프리온이 작용하면 CJD이고, 소에게 작용하면 BSE(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광우병)다. 양, 염소의 뇌가 스펀지처럼 되는 것은 스크래피(Scrapie)다. 이 밖에 사슴이나 고양이과 동물, 열대동물에도 이런 질병은 나타난다.

 

 인간에게 프리온이 작용하여 발생한, 또는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질병이 CJD이고, 이는 vCJD(변종CJD) sCJD(산발성CJD) gCJD(유전성CJD) iCJD(의원성CJD) 등으로 구분된다. 각각 특성이 있지만 변종이건 산발성이건 유전성이건 의원성이건 모두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의 울타리 안에 있는 질병이다.

 

 일부 신문이나 김종훈 본부장은 인간광우병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과 CJD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학계가 그렇게 확인했다는 것이다. 사실인가?

 

 김성훈 교수는 ‘광의의 CJD에는 인간광우병도 포함된다’고 썼다. 또 상당수 전문가들이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대목은 MBC 피디수첩의 보도와 관련해 가장 큰 논쟁을 부르고 있기도 하다.    

 

"인간광우병과 산발성CJD가 다른 질병인지는 의문"

 

 김 교수의 글은 이렇게 묻는다. “그럼 CJD는 괜찮은 것이요? 그건 미친소병과 상관없소? 인간광우병(vCJD)만 문제고, CJD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소?”

 

 최근 방한해 시민사회단체의 강연과 국회 공청회에서 미국 쇠고기, 광우병과 관련한 발표를 한 마이클 핸슨 박사(미국 소비자연맹 수석연구원)는 미국 감염통제당국이 ‘아레사 빈슨이 vCJD로 죽은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정작 사인(死因)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핸슨 박사는 “인간광우병(vCJD)과 산발성CJD(sCJD)가 다른 질병인가 하는 점은 의문”이라며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산발성CJD 발병률이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논쟁에서 CJD는 산발성CJD(sCJD)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다음 문건을 보자. 

 

 - 인간과 동물 사이에 프리온이 전염된다는 사실이 실험실에서 증명되었지만, 어떤 동물에게 질환을 일으키는 프리온이 인간에게서도 프리온 질환을 일으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990년대 중반 연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CJD에 걸리면서 이러한 유형의 전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1986년에 영국의 소들 사이에 광우병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 병원체인 프리온에 감염된 쇠고기의 섭취가 CJD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있지만 증명되지는 않았다.

 다만 CJD와 비슷하면서도 증세가 다른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의 발생으로 영국에서 환자가 사망하면서 많은 과학지들이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2001년에 CJD와 vCJD를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여 예방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포털사이트 다음 ‘CJD 항목’의 한 부분)

 

 통신사 UPI의 의학기자 스티브 미첼의 2003년 말 기사를 토대로 이 문제를 추적한 글에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CJD(sCJD)와 vCJD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과, 매년 3백여 명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는 비슷한 미국 내 환자를 CJD 환자로 확정하는 미국 정부 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한국에서도 CJD환자는 발생했고, vCJD로 매우 의심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가족의 반대로 부검을 못해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당국의 주장 또한 논쟁 중인 가설의 하나"

 

 그는 또 미국 알츠하이머 환자의 13%가 막상 CJD 환자로 결론 난, 1989년 연구를 수행한 예일대 로라 마뉴엘리디스 교수의 증언을 기초로 ‘광우병 병원체가 sCJD와 vCJD를 둘 다 유발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김성훈 교수의 설명으로 이 부분의 실체를 ‘추정’해 보자.

 

 “당국이 내세우는 ‘이 두 가지 질병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주장’은 미국 축산업계의 이익과 ‘정치적 의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가설(假說)’일 뿐이다. 가설은 진실로 입증될 수도 있지만, 허망하게 스러질 수도 있다. 다른 여러 유력한 ‘주장’도 많다. 왜 우리의 ‘지성(知性)’들은 일부러 눈을 감는가?”(최근 시민사회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

 

 이제 김 교수의 글을 다시 읽는다면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사실’은 불편하고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은폐하면 안 된다. 이 엄청난 언론시장의 불황속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맛있다’는 정부 광고는 신문사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유혹일까. 그러나 언론의 눈은 독자를 향해야 한다. 한겨레신문이 한 미국 축산업체 모임의 홍보대행사로부터 백지수표 광고 제의를 받고 깨끗이 거절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하다.

 노학자가 며칠 밤을 새워 쓰고, 퇴고를 거듭해 발표했던 글을 꼼꼼히 새겨 읽었다. 소에게 소를 먹이는 인간 죄업의 부메랑, 인류 역학(疫學) 사상 에이즈보다도 더 무섭다는 인간광우병의 본질을 직시(直視)하고,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먹거리의 체통을 보다 더 엄정히 세우자는 뜻이었다. 의미 깊은 분노까지 보듬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정체가 새삼 걱정스럽다. 필자는 우둔해서인지 도대체 이 글이 ‘혹세무민’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김 교수가 이득을 얻기 위해 이 글을 썼을까? 현명한 사람이라면 남의 얘기만 듣고 중요한 사안에 관해 쉽게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 글의 일독을 권한다.

 

 글을 다 쓰고 난 시점에 김성훈 교수의 '주장'을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글을 발견했다. 전북대 의대 홍성출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이명박 정부의 프리온 병 임상실험'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이 글(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286556.html)또한 일독을 권한다.

 

"양국 소 도축 전 전수검사로 한미(韓美)간 신뢰 회복하자"
[미니인터뷰]김성훈 교수(상지대 총장)

 

 

 “이웃과 내 가족, 손자의 손자 이후까지도 생각하는 식품주권(food sovereignty)을 말한 겁니다. ‘생명권’이지요. 식품주권은 독도 경우의 영토주권과 같이 한번 망가지면 바루기 어려운 것은 물론 나라의 품격[國格]에도 치명상이 됩니다. ‘생명’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통상(通商)’의 소용, 그 눈앞의 이끗과 어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촛불정국, 국민 모두가 인간광우병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과장된 글로 혹세무민하셨나요?”하고 부러 물었다. 위의 육성(肉聲)이 그 답이다. 또 발표한 글은 학자의 입장으로 가능한 추정이자 건강한 걱정이라고 했다.

 

 “내 글을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그들 스스로 허약하다는 반증입니다. 이 중요한 사항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조차 권력과 여러 방편의 정부홍보로 막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착한 일이 아니지요.”

 

 이제 설렁탕을 비롯한 여러 미국 쇠고기, 특히 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 관련 음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 됐다며 허탈한 웃음을 보인 김성훈 교수를 8월 하순 원주의 상지대 총장실에서 만났다. 

 

안전 검증 안 된 다국적기업의 ‘신기술 식품’도 걱정

 

 “시민은 항상 정권보다 현명합니다. 그리고 용감합니다. 깜냥이 안 되는 이들이 무리해 일을 벌이다 시민들의 걱정을 부르지요. 역사와 국제정세를 아울러 보는 시민들은 악수(惡手)만을 애써 고르는 듯한 이런 판세를 이미 환히 읽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직과 이성을 회복하기를 바라지요.”

 

 걱정거리가 광우병뿐만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유전자조작 동물복제 나노기술 등을 이용한 다국적기업의 소위 ‘신기술 식품’이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채 밥상에 오르고 있거나, 시장을 휩쓸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부를 갖는다고 해도 시민들은 항상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먹거리가 유발한 이번 촛불정국은 우리 시민들과 시민운동가들에게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지요. 걱정이 어디 먹거리뿐인가요?”

 

 그 씩씩한 모습 여전했다. ‘혹세무민’ 비난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한미 양국의 축산농가가 공히 원하는, 도축 소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광우병 조사(전수조사)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수조사는 불가피한 것이어서 정부도 조만간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시민사회신문 논설위원입니다.


#김성훈#광우병#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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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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