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말라고 밀쳐도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세월은 참으로 잘도 가고 잘도 온다.
새벽잠을 깨우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능소화가 선홍색 울음을 토하면서 마당에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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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홍색 울음을 토하며... 능소화는 꽃잎 그대로 떨어진다. 양반집에만 심었다는 그 자존심때문일까 마지막 죽음마져도 도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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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젖은 몸이 더욱더 고혹적이다.
옛날 양반집에만 심어져 있었다던 능소화.
떨어지면서도 고고한 자존심만큼은 간직하려나 보다.
죽음마저도 도도하다.
능소화의 꽃말은 "매력"이다.
"매력적인 당신은 삶의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쁨을 연인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
꽃점을 입 모아 말하는 듯 그들은 한껏 목젖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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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무엇을 말하려는가... 뜨거운 8월을 넘긴 마지막 능소화의 외침, 매력적인 당신은 삶의 기븜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능소화의 꽃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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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의 화려한(?) 주검 옆에는 소국이 한껏 피었다.
작년 화분에 담겨 있던 놈을 마당에 심었었는데
매년 잊지 않고 꽃을 피운다.
가끔은 저놈들이 나보다 생명력이 더 났다는 생각이다.
죽음과 또 다른 생명의 오만함… 나의 존재를 그들로부터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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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국들의 반란... 화려한 능소화의 주검옆엔 아랑곳 않은 소국들의 또다른 화려함. 우리네 인생과 다를바 없다. 화려한 그늘밑의 어두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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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 그치면 지겨웠던 여름은 언제였던가,
떨어진 능소화처럼 8월은 구석방으로 밀쳐지고
또 다른 방한칸에 가을이라는 그놈은 예전과 똑같이
내 허락도 없이 들어오리라.
촉촉한 키스 향 같은 안개비를 몰고 9월은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