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염전으로 두 섬을 이어붙인 전남 신안군 증도를 찾아갑니다. 역사 유적지로 잘 알려진 보길도,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홍도와 흑산도, 그리고 최근 슬로시티로 지정돼 각광받고 있는 청산도 등과 함께 서남해의 손꼽히는 관광지입니다.


섬도 섬이지만 가는 길 또한 아름답습니다. 서해안고속국도를 따라가다 무안국제공항 바로 못 미쳐 망운 나들목에서 벗어나면 서해로 고개를 불쑥 내민 해제반도입니다.


양파와 고구마를 품고 있는 벌건 황토밭을 가로지르더니만 2차선 아스팔트길은 어느새 바다를 가르며 달립니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 가는 길 마냥 바다를 양 옆에 끼고 폭이 3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가는 목 위에 도로가 놓인 까닭입니다.


간신히 섬을 면한 해제(海際)를 지나 신안군 지도(智島)에 이르는 24번 국도는 남도 농촌의 전형적인 풍광과 갯내음 가득한 어촌의 정겨운 모습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푸른 들과 하늘이 맞닿아 있고, 드넓은 갯벌이 바다에 얹혀진 풍경은 자동차의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록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바다(海)의 축제(際)’라는 마을의 이름답게, 특히 초가을의 햇빛을 받아 온통 은빛으로 빛나는 갯벌은 해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눈이 부십니다.


꽤 번화한 지도읍소재지를 지나면서부터는 징검다리 뛰어 넘듯 섬들을 건너야 합니다. 지도에서 송도로, 다시 송도에서 사옥도로. 섬들을 잇는 연도교가 개통되어, 비록 섬이지만 배가 아닌 자동차라야 쉬이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들판과 바다를 반반씩 면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들을 스치듯 지나 사옥도의 끄트머리에 이르면 증도를 오가는 철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착장 바로 곁에 바다에 박힌 못처럼 콘크리트 교각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안 있어 이곳에도 연도교가 놓일 모양입니다.

 

사옥도와 증도를 오가는 저 철선의 역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지만, 콘테이너 박스 차곡차곡 포개듯 이십여 대의 승용차를 너끈히 싣는 모습을 보노라니 시위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양식장이 다칠세라 바다를 사뿐히 미끄러지듯 달리기를 20분, 마침내 증도에 닿습니다.


증도 선착장 주변은 온통 갯벌입니다. 그것도 살아 꿈틀거리는 갯벌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그 갯벌에는 게와 짱둥어가 지천인데 자동차와 사람들이 내는 왁자지껄한 소음쯤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갯벌이 살아있다’는 말을 귀가 아닌 눈으로 확인한 셈입니다.


선착장을 벗어나 관광객을 맨 처음 맞이하는 곳은 소금박물관입니다. 돌로 지은 옛 소금창고를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소금에 관련된 정보와 소품들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꾸미고 전시해 놓았는데, 특별하달 건 없지만, 이 섬의 상징이 소금과 염전임을 알려주는 증도의 랜드마크입니다.


소금박물관 뒤로는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한 염전이 펼쳐집니다. 단일 염전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다는 태평염전입니다. 6. 25 전쟁 당시 북으로부터 피난 내려온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하는데, 양쪽에 둑을 쌓고 바다를 막아 만들다보니 위아래 두 섬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기름띠가 인근 해역에 덮쳐 바닷물을 염전에 끌어들일 수 없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만 동동 구른 채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땡볕 아래에서 소금을 쓸어 모으는 염부들의 몸놀림은 무척이나 분주해보였습니다.


염부들의 살갗은 검정 고무판을 깔아놓은 염전 바닥보다도 더 까맣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그 흔한 모자도 쓰지 않습니다. 넓은 모자챙으로 얼굴을 가려봐야 투명한 소금밭에서 반사되는 햇볕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손바닥만 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거기에서 나오는 뽕짝 리듬에 고된 노동을 달래가며 긁어모은 하얀 소금더미 위로 그들의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쩌면 소금이 그래서 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소금을 저장하는 거뭇한 나무창고 뒤로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태양광 발전소가 세워져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줍니다. 염전은 본디 강수일수가 적고 일조량이 많은 곳에 자리 잡게 되므로, 태양광 발전소와도 입지 조건이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란히 자리한 그 둘은 과거와 미래, 옛 것과 새 것, 노동과 자본 등의 대구가 연상돼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한참을 달려 염전을 벗어나면 남도의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농촌 마을이 오순도순 정겹고, 도로가 끝나는 막다른 곳에 채를 쳐서 걸러낸 듯 고운 모래가 지평선을 이루는 우전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여름은 다 지나갔지만 수영복 차림을 한 사람들과 하릴없이 산책하는 몇몇 관광객들이 눈에 띕니다. 보아하니 신발을 신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닐 텐데 하나 같이 신발을 손에 든 맨발 차림입니다. 백사장을 걸어보니 발에 닿는 촉감이 흡사 밀가루를 밟는 것 같습니다.


백사장에 서서 바다를 보면 아득한 수평선 위로 시야를 방해하는 게 전혀 없습니다. 서해에서는, 그것도 남도의 다도해에서는 웬만해서는 볼 수 없는 풍광입니다. 뭍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수많은 섬으로 둘러싸인 곳인데도, 수평선을 허락한 것은 더 없는 축복입니다. 그것도 해가 지는 정 서쪽을 향해 열려 있으니 하늘이 내려준 관광지라 할 만합니다.


사람마다 증도를 찾아오게 된 이유야 다 다르겠지만, 섬을 떠나면서는 한결같이 하루 이틀 더 묵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마트나 병원은커녕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없는 ‘불편한’ 곳이지만, 주민들의 신산한 삶이 배어있는 염전과 살아 숨 쉬는 갯벌, 넓고 깨끗한 백사장, 그리고 푸른 바다까지 두루 갖춘 아름다운 섬입니다. 왜 이런 곳에서 영화나 CF 촬영이 없었을까 싶을 정도로.

덧붙이는 글 | 우전해수욕장 인근에 갯벌체험관과 숙박을 할 수 있는 대규모 리조트 시설이 갖춰져 있어 가족휴양지로 제격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신안군 증도#태평염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