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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저상버스는 지난 5년간 전국에 1100여 대가 도입돼 시내버스로 운행되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 5주년을 맞이하여 3차례에 걸쳐 저상버스 도입에 관한 에피소드와 저상버스 운행에 따른 문제점, 그에 따른 대안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기자 주

2006년 4월 11일 오후 2시, 서울 강북구 수유3동 우체국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기다리며 박철원(27)씨는 휠체어에 탄 채 하염없이 왼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상버스 슬로프(경사로)를 도로에 내려놓은 상황.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자력으로 오르기에는 힘든 경사각이다.
 저상버스 슬로프(경사로)를 도로에 내려놓은 상황.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자력으로 오르기에는 힘든 경사각이다.
ⓒ 원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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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로 버스를 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박씨가 이용할 노선의 저상버스는 아까 지나갔지만 기사는 "슬로프(경사로)가 고장나서 태울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고서는 떠나버렸고 뒤에 올 저상버스는 언제 올지 알 수조차 없었다. 결국 1시간 17분이 지나서야 저상버스가 도착해 어렵사리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박씨가 버스 한 번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만 소모한 시간은 2시간이었다.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약속시간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집에서 출발하였음에 그는 간신히 약속시간에 맞출 수가 있었다.

저상버스가 도입된 지 5년을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저상버스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회의적인 반응이 더 큰 편이다.

저상버스가 도입됨에 따라 교통약자, 특히 장애인의 외출에 보탬이 되고는 있지만, 노선별로 저상버스의 운행대수가 적은 상황이다 보니 무작정 저상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지역에서 버스정보시스템(BIS)을 통해 저상버스 도착 여부를 알려주고 인터넷·ARS를 통해서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아직 상당수의 지역에서는 저상버스 운행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2시간 기다려서 저상버스 한 대

교통약자란

장애인을 비롯하여 노약자(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자를 말한다.

2008년 현재 교통약자의 수는 약 1,182만 명으로 전국 총 인구의 24.3%로 예측된다. 각 대상별 비율로 살펴보면 장애인 10.5%, 고령자 37%, 임산부 3.7%, 어린이(5~9세) 27.3%, 영유아를 동반한 자 21.5% 순(비율은 2005년말 기준)이다.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나 학생들과 같이 매일같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버스 승차방법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저 멀리서 정류장을 향해 오는 버스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자신의 승차 표시를 한다. 그리고서는 차도로 뛰어들어 1~2개 차로를 지나 정자하는 버스에 탑승한다. 물론 이 과정 중간에는 주차해있는 승용차와 정차해 있는 택시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현행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32조에서는 버스정류장이 설치된 곳으로부터 10m 이내의 구간에는 정차 및 주차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승객을 태우기 위해 버스가 정차하려는 순간에도, 끼어들고 진입하는 택시나 차선을 바꾸는 승용차가 많다. 그래서 접촉사고는 유독 정류장 근처에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버스가 인도에 최대한 접근해서 정차한 뒤 중문에 설치된 슬로프(경사로)를 내려야 한다. 앞서 소개한 박씨의 저상버스 탑승사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저상버스가 버스정류장에 불법 주정차를 하고 있는 택시로 인해서 진입하지 못한 채 도로 한 가운데 정차해서 승객을 태우고 있다.
 저상버스가 버스정류장에 불법 주정차를 하고 있는 택시로 인해서 진입하지 못한 채 도로 한 가운데 정차해서 승객을 태우고 있다.
ⓒ 원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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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수이고, 이럴 경우에는 장애인이 차도로 내려가 버스에 타야만 한다.

차도로 내려오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 인도는 차도와 보통 높낮이가 달라서 높이가 같은 곳까지 가야 차도로 내려갈 수 있다. 그런 뒤에도 저상버스는 슬로프를 내릴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전진·후진을 반복해가며 차량을 앞뒤로 수차례 이동하고 나서야 정차한다.

차도에 슬로프를 가설해도 경사각이 커져 전동휠체어는 오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올라가서는 버스 안에 안전장치(휠체어 바퀴를 고정해주는 장치)가 설치된 곳에 휠체어를 세워야 하는데, 여기에 다른 승객이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접이식 의자를 접어야 한다.

차도에서 저상버스를 타는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다. 여기에 드는 시간이나 교통정체(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일 경우)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과연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 주겠는가?

저상버스는 생겼는데, 왜 길에는 장애인 없을까

저상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탑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본 적이 없다고 답을 한다. 본 적이 있는 사람의 경우도 그 횟수를 물어보면 '1~2회가량'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저상버스 기사들도 비슷하다. 일주일이나 한 달에 1~2회, 많으면 2년을 넘게 운행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장애인을 태워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기사도 있다.

이렇다 보니 저상버스 운전기사 중에는 장애인 승차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차량을 기울이는 닐링 기능이나 슬로프 가동방법을 알지 못하는 이도 종종 있다. 방법을 배웠더라도 쓸 기회가 없다보니 실제 상황에서는 순서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고, 워낙 오랫동안 안 쓴 나머지 슬로프 장치가 고장이 났는데도 이를 알지 못해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지난 2006년 4월 경남 마산시 한 정류장에서는 슬로프 가동 및 정차 문제 등으로 인해 장애인 탑승이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다. 승객 몇명이 내려 휠체어를 들고 탑승시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장애인은 미안해 하며 기사에게 "그냥 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네티즌이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 마산시청 홈페이지에 게시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정류장 시설도 장애인들의 저상버스 이용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천 주안역 버스정류장에서는 석모(47)씨가 하차하려다 휠체어에 탄 채로 뒤로 넘어져 일시적 혼절·구토 등 뇌진탕 증세를 보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애인의 탑승을 위한 경사로를 내기에 앞서 저상버스 차체를 승차문 쪽으로 70~80mm 가량 기울도록 하는 닐링(Kneeling) 기능을 작동시키는 장치.(대우버스)
 장애인의 탑승을 위한 경사로를 내기에 앞서 저상버스 차체를 승차문 쪽으로 70~80mm 가량 기울도록 하는 닐링(Kneeling) 기능을 작동시키는 장치.(대우버스)
ⓒ 원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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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닐링으로 차체를 낮춘 다음에 슬로프(경사로)를 펼쳐 휠체어의 탑승이 가능하도록 한다(연속촬영).
 닐링으로 차체를 낮춘 다음에 슬로프(경사로)를 펼쳐 휠체어의 탑승이 가능하도록 한다(연속촬영).
ⓒ 원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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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우리라고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잖소"

지난 5년간 진행된 사업은 저상버스 도입뿐이었다. 저상버스 운행에 따른 정류장 시설정비나 인도 높이 조정, 정류장 인근 불법 주정차 단속 등 관리나 개선은 전혀 없이 저상버스만 도입하다 보니 버스가 다니는데도 이용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가 발생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장애인 김모(38)씨는 이런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우리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싶은데,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지고 차도에서 위험하게 버스를 타야만 하는 건가요? 정부가 왜 우리들의 목숨을 그렇게 가볍게 보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동해야 한다면 차라리 집에만 박혀 있으렵니다."

저상버스는 버스 업계에도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중량이 무거워 일반 차량보다 연료가 더 소모되고 있으며, 브레이크 라이닝 교체시기도 짧은 데다, 고장이라도 나면 부품을 수입해서 수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운행도 못 하고 차고지에 방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2005년에 처음 저상버스를 도입하여 현재 20여대를 운행하고 있는 A 업체의 관계자는 "운행할수록 연료비나 수리비가 다른 차에 비해서 훨씬 더 드는데, 우리라고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 마당에 이걸 운행하고 싶겠나"라며 "장애인이나 어르신들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매년 구입은 하지만 지자체 보조가 없으면 솔직히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연료 충전문제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천연가스(CNG)를 연료로 하는 저상버스는 연료 사용량이 많아서 하루에 두 번 충전해야 한다. 하지만 충전시설이 많지 않다. 멀리 있는 충전소까지 가려면 운행횟수가 줄고 공차운행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충전소를 늘릴라 치면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민원을 제기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성남 시내버스는 6개 노선 37대의 저상버스 중 4개 노선 33대를 CNG 충전소가 설치되어 있는 야탑동 차고지를 기 종점으로 놓고 운행하고 있다. 나머지 저상버스 4대도 최대한 야탑 차고지에서 가까운 인근 지역을 기종점으로 하고 있다.

역시 성남에 영업사무소를 두고 있는 대성운수(서울업체)의 경우도 차고지가 위치한 금광동에 이동식 충전소를 설치하면서 천연가스버스 및 저상버스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충전소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약 10㎞ 떨어진 송파공영차고지까지 가서 충전을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있었다.

K시의 공무원은 "저상버스 도입을 계속해야 하는데 업체에서는 반기지 않는다, 1억원의 보조가 있지만 적자가 심한 업체로서는 차체가격과 차체가액에 따라 부과되는 지방세가 부담스러운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에서 한국형 표준모델을 보급하기 전까지는 더 이상 차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입장이라서, 자치단체에서 일방적으로 도입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실정이며, 이는 비단 우리 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업무 담당자로서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저상버스는 시내버스 업체에 있어서 환영할 수만은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저상버스는 시내버스 업체에 있어서 환영할 수만은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 원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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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교통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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