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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여영 기자의 블로그. 이 기자가 올린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글은 임시접근금지 조치 됐다.
이여영 기자의 블로그. 이 기자가 올린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글은 임시접근금지 조치 됐다. ⓒ 화면캡쳐

참여자도, 기록자도 아닌 한 편의 글이 결국 문제가 됐다. 답답한 심정에 무작정 광화문 일대를 헤매며 썼던 한 편의 '5·29 촛불 집회 참관기'가 한 젊은 기자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다. <중앙일보> 이여영 기자 이야기다.

그는 지난 8월 20일 담당 에디터로부터 해고(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 기자의 몇몇 '행동'들이 "조직에서 받아들이기는 좀 그렇다"는 사유였다. 공식적으로는 계약 만료에 따른 계약 해지였다. 하지만, 이 기자가 지난 5월 촛불집회 때 블로그에 썼던 한 편의 글이 결국 문제가 됐음을 이 기자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 기자는 자신의 해고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글에서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썼다.

"당장 든 생각은 실망감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언론사가 구성원의 생각하나 수용 못하나 하는 감정이었습니다. 내 처지를 한탄하기에 앞서 중앙일보가 안 됐구나 하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이 기자가 말하는 "구성원의 생각 하나"는 이 기자가 5월 29일 촛불집회를 보고 쓴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은 것에 대해'라는 한 편의 블로그 글을 말한다. 선배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가 예정돼 있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카메라를 둘러메고 광화문에 나가 촛불집회의 기록자도, 참여자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에서, 그러나 결국에는 기록자로서 보고 느낀 그대로 쓴 글이었다.

자신의 솔직한 심정 '표현'한 게 '문제'라니...

그가 쓴 글은 한번이라도 촛불집회에 나가보았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그런 내용이었다. 평화롭고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촛불집회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갔다. 그가 본 촛불집회의 풍경은 "관람객인 대중들이 전시회를 이끌어 가는 것처럼, 대중들이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이끌어가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80, 90년대의 거리시위를 예상했던 기자를 당혹스럽게 할 정도로 희한한 광경이었고, 그는 "촛불집회야말로 한 층 성숙해진 우리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평했다. 그가 보고 듣고, 체험한 바대로는 그랬다.

거기에서 멈췄다면 이 기자가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가 느꼈던 답답함의 갈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인근 식당에서 꽤 늦은 저녁을 시켜 먹었다. 그런데 허기가 가시는게 아니라 속이 더 쓰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해 내가 몸담고 있는 중앙일보가 최근 기록한 것과 민심은 다시는 맞닿을 일이 없을 것처럼 멀어지고 말았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다. 물론 언론은 단순한 민심의 기록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민심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훈계할 특권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진실은 과연 어느 쪽에 더 근접해 있을까?

우리나라를 뒤엎은 정치적 당파주의와 사회적 냉소주의가 가장 가까워야 할 언론과 대중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다. 비록 나 자신은 직접 간여하지 못했지만, 지난 한 달여간 조중동의 보도가 다분히 당파적이고, 냉소적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대중 역시 그에 당파적이고 냉소적으로 대응했지만.

쓰린 속을 달래려고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까워서, 기어코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말았다."

이여영 기자 혼자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조중동 기자 가운데 이 기자와 같은 속앓이를 했던 기자들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기자는 그 심정을 블로그를 통해 '표현'했다. 솔직하면서도 지극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몇몇 선배들은 "글을 내려라, 제목을 바꿔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조중동에만 허락되는 것인가

언론사들이 자사 기자들의 대외적인 의견 표명에 폐쇄적이었던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언론기관이면서도 정작 자사 기자들의 의견 표명, 특히 자사의 보도 태도 등에 대한 비판적 의견 표명에는 신경질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한 때 노조를 중심으로 조중동에서도 내부 비평이 활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옛날 일이다. 그런데 3년차 젊은 기자가, 그것도 연봉계약직 기자가 '사고'를 쳤다.

이여영 기자 사건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거대 신문들이 '표현의 자유'에 얼마나 억압적인 가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일 수 있을 것이다. <PD수첩>과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인 누리꾼들에 대한 사법적 처벌을 주장하고 있는 신문들이고 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언론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 없이는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런데 언론 스스로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 오늘 조중동의 모습이다. 다른 언론사의, 언론인들의,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는 억압하고, 처벌하자면서 자신들의 언론의 자유는 아무 탈 없이 보장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조중동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이, PD들이, 시민들의 자신의 발언과 표현 때문에 억압당하고, 사법적 처벌을 받는 현실에서, 그리고 동료 기자가 해고당하는 현실에서 자신들은 자유롭게 기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후기: 이여영 기자의 조인스 블로그 글은 현재 다음 블로그로 이사 중이다. 9일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음 블로그 맨 위에 걸려 있던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그의 글은 오후 들어 '임시접근금지' 조치 됐다. 글을 열어볼 수 없게 됐다. <다음>은 권리침해 신고가 들어옴에 따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 44조의 2(정보의 삭제요청 등)에 따라 30일 동안 이 게시물에 대해 임시 차단조치를 취한다고 밝히고 있다.

인터넷 글에 '30일 임시차단'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면, 신문과 방송은 어떠해야 하는가. 신문과 방송에는 그런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인터넷 보다 훨씬 더 영향력있는 매체가 바로 신문과 방송인데,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인가.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의 언론 자유는 '임시차단 상태'라는 점일 것이다.


#이여영#표현의 자유#촛불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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