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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도 안성시에 '오로지종합복지원'이라는 사회복지법인이 있다. 양성면 미산리 '미리내성지' 옆에 위치한 '미리내실버타운'을 비롯한 다섯 개 복지 시설과 노인병원을 묶은 이름인데, '유무상통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유무상통(有無相通)'은 말 그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통하고 매한가지라는 뜻이다.

(이 유무상통마을에 대해서는 내가 지난 2006년 5월 11일 <'노인십계명'을 아십니까?>라는 글로 자세히 소개한 바 있으므로 오늘 이 글에서는 중복을 피한다.)

이 유무상통마을을 설립하고 운영하시는 방상복 신부님이 지난 8일부터 단식을 하고 있다. 방 신부님은 서울대교구장이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최고위 성직자이신 정진석 추기경께 드리는 네 가지 사항의 질의를 가톨릭 인터넷 '굿 뉴스' 게시판에 올렸다.

그리고 6일 동안의 시한부 단식을 하고 있는데, 추석 전날인 13일에 단식을 끝내는 것은 명절을 맞이하여 부모나 친지를 뵈러 유무상통마을을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제대로 맞기 위해서다.

유무상통마을 노인들의 태안 해변 방문 '기름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월 8일, 경기도 안성 '유무상통마을' 노인들이 태안 해변을 찾았다.
유무상통마을 노인들의 태안 해변 방문'기름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월 8일, 경기도 안성 '유무상통마을' 노인들이 태안 해변을 찾았다. ⓒ 지요하

정진석 추기경께 대한 방상복 신부님의 공개 질의와, 답변을 요구하는 단식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굿 뉴스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다. 지금은 다소 소강 상태지만, 찬반 양론으로 매우 시끄러웠다.

그거야 당연지사이지만,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이런 사안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수구적인 시각을 지나 거의 증오심에 가까운 표현들을 예사로 하는 요령부득인 사람들도 많다.

아무튼 이 글에서는 방상복 신부님의 단식 이유와 정진석 추기경의 답변을 요구하는 공개 질의 사항들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않기로 한다.

방상복 신부님은 단식 사흘째가 되는 허기진 몸으로 오늘(11일) 전남 구례 땅에 가 계실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쯤 구례군 광의면과 산동면을 지나는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오체투지 순례단'에 합류하여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순례에 동참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굿 뉴스 게시판에 오른 어떤 분의 글에서 접한 바 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오늘 당장 전남 구례로 달려가고 싶다. 그곳엘 가면 문규현 신부님과 방상복 신부님, 동기이신 두 사제를 동시에 뵐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 병환 중인 상태다. 어제(10일)도 서울 강남성모병원과 동대문 근처 한의원을 다녀왔다. 핑계거리가 있다는 것은 묘한 위안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다.

몸이 불편하신 노인도 방상복 신부님이 몸이 불편하신 노인을 손수 업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음식점으로 가고 올 때는 휠체어를 밀어 바다 구경도 시켜 주셨다.
몸이 불편하신 노인도방상복 신부님이 몸이 불편하신 노인을 손수 업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음식점으로 가고 올 때는 휠체어를 밀어 바다 구경도 시켜 주셨다. ⓒ 지요하

지금 오체투지 순례를 하시는 분들과, 단식을 하는 허기진 몸으로 먼길을 달려가서 그 순례에 동참하는 분을 생각하면 이렇게 집안에 편안히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럽기 한량없다. 하여 조금이라도 그분들의 순례에 동참, 부합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자 애를 쓰고 있다.

<2>

나는 요즘 음식을 철저히 가려먹고 있다. 금기식품, 제한식품, 허용식품들의 목록을 잘 숙지하면서 자제와 극기의 실체를 부분적으로나마 힘껏 감내하고 있다. 그것은 내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항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금기식품 중에는 해물이 많이 포함된다. 칼륨 성분이 많은 생선회는 절대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한다. 요산을 많이 만들어내는 오징어와 낙지 따위는 물론이고 패류는 일절 먹지 말아야 한다. 등 푸른 생선도 마찬가지다.

백색, 홍색, 회색 생선은 조금씩 먹어도 되지만, 역시 요산 때문에 절제를 해야 한다. 심지어는 김과 미역 등 해초류도 인 성분 때문에 금기식품에 속한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갯것들과 거리를 두고 사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에서 식사를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외식을 할 때는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생선회나 해물 요리 등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이것도 일종의 '고행'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유무상통마을의 방상복 신부님을 떠올리곤 한다.

지난해 12월 이후로 방상복 신부님을 세 번 뵈었다. 기름사고로 정신이 없던 지난해 12월 17일 방상복 신부님이 태안 해변을 찾으셨다.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승용차로 함께 오신 세 분의 일행 중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숙부 되시는 분도 계셨다.

신부님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양심의 가책으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노라고 했다. 직접 기름 닦는 일은 못하더라도,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격려 인사라도 해야 마음이 다소나마 편해질 것 같아서 서둘러 오셨다는 얘기였다.

신부님은 소원면 의향리 십리포 해변과, 모항리 만리포 해변 등, 도합 세 곳의 천주교 천막을 다니며 서울대교구 까리따스 봉사대 '밥차' 봉사와 군부대 간식제공 봉사를 하는 신자들에게 격려금을 나누어주셨다.   
       
태안을 돕는 식사 태안군 근흥면 안흥항의 한 음식점 안에 앉으신 유무상통마을 노인들. 직접 기름 닦는 일은 할 수 없지만, 태안 해변에서 식사 한 끼 하는 것도 태안을 돕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오신 노인들이었다. 왼쪽 줄 맨 앞에 앉은 이가 방상복 신부님.
태안을 돕는 식사태안군 근흥면 안흥항의 한 음식점 안에 앉으신 유무상통마을 노인들. 직접 기름 닦는 일은 할 수 없지만, 태안 해변에서 식사 한 끼 하는 것도 태안을 돕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오신 노인들이었다. 왼쪽 줄 맨 앞에 앉은 이가 방상복 신부님. ⓒ 지요하

그러고 돌아가신 방상복 신부님은 금년 1월 8일 40여 명의 유무상통마을 노인들과 함께 다시 태안 해변을 찾으셨다. 유무상통마을 성당에서 전례봉사를 하시는 노인들과 지난해 12월 24일 '성탄제' 때 수고를 하신 노인들이라고 했다. '有無相通마을'이라는 큰 글자가 앞 유리에 새겨진 대형 버스가 노인들을 가득 태우고 온 것이었다.

"노인들이 해변에서 직접 기름 닦는 일을 할 수는 없고, 기름재난 때문에 손님들이 거의 없는 태안 해변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도 좋은 봉사가 되리라는 생각으로, 점심 한 끼 먹으러 온 겁니다."

나는 방상복 신부님 일행을 안흥항의 한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한산한 안흥항 풍경에 다시금 서글픈 심사를 안아야 했다. 주방장도 나가고 없는 음식점에서는 주인 아줌마가 서툰 솜씨로 회를 떴다. 종업원 아줌마 혼자 40여 명의 손님들을 치르는 건 너무 벅찬 일이어서 나와 방 신부님, 유무상통마을의 젊은 여직원들이 일손을 보태야 했다.

그런데 방 신부님은 생선회를 들지 않았다. 생선회뿐만이 아니었다. 해물이라는 해물은 그 무엇이든 일체 들지를 않았다. 심지어는 해초류까지도…. 신부님은 별도로 된장찌개를 시키고 김치와 채소들만으로 식사를 했다.

나는 방 신부님이 해물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해 6월 태안읍의 한 바닷가에서 가진 천주교 신자 네티즌들의 모임 자리에서 알았다. 아니, 알았다기보다는 신부님이 사양이나 절제를 하시는 것으로 짐작했다. 내가 애써 장만한 붕장어를 양념에 묻혀 굽기도 하고 소금을 발라 굽기도 했는데, 그 맛있는 붕장어 구이를 통 잡숫지 않아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 뒤로 방 신부님의 그런 모습을 거의 잊고 지냈는데, 해가 바뀌고 다시 뵙게 된 자리에서 해물은 일체 드시지 않고 된장찌개를 시켜 식사를 하시는 신부님을 보자니 냉큼 이상한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 중에는 생선회를 먹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익힌 해물은 즐겨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방 신부님은 그 무엇이든 해물이라는 것하고는 완전히 담을 쌓은 본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해물 음식을 권하고, 일행들이 해물 음식을 맛있게 자시는 모습을 둘러보며 즐거운 웃음을 짓는다.             

나는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 신부님이 왜 해물 음식을 못 드시는지, 혹 의지로 안 드시는 건 아닌지, 참으로 궁금한 마음이었다. 나는 신부님께 물었다. 생선회를 드시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생선구이까지도, 조갯국 등 패류와 해초류 따위도 일체 입에 대지 않으시니, 혹 무슨 연유라도 있는 것 아니냐고,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신부님은 꼭 감추고 살아야 할 비밀 얘기가 아니어서인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해 주셨다. 9년 전인가 10년 전의 한 사제 피정 때, 자신이 가장 즐기는 음식 한가지를 평생 동안 먹지 않고 살기로, 그것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굳게 결심하게 된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때까지는 가장 즐기는 음식이 해물 요리였다고 했다. 생선회는 물론이고, 해물 음식을 다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해물을, 한가지 요리도 아닌 해물 음식 전체를 평생 동안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봉헌'을 지금까지 굳게 잘 실행해오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기름냄새 나는 해변에서 방상복 신부님과 유무상통마을 노인들이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의 한 해변을 둘러보며 비탄에 젖어 있다.
기름냄새 나는 해변에서방상복 신부님과 유무상통마을 노인들이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의 한 해변을 둘러보며 비탄에 젖어 있다. ⓒ 지요하

신부님의 그 말씀을 들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하는 음식들이니, 나도 이참에 평생 동안 생선과 패류를 일체 먹지 않고 살기로 하느님과 약속을 할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방상복 신부님에게서 오는 어떤 경이감에 계속적으로 압도되는 기분을 삼키며 별 맛 없이 식사를 했다.     
                  
<3>

방상복 신부님은 지난달 31일 주일미사 강론 때 유무상통마을 어르신들께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우리 한국에는 예수님을 믿는 이가 많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이가 많을까요?"

이내 대답을 하지 못하는 어르신들께 "아마도 예수님을 믿는 이는 99%요, 따르는 이는 1%도 안될 겁니다"라는 말을 한 다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예수님이 언제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나, 따르라고 하셨지! 오늘 신부인 제게도 하느님 성령께서 임하시어 한 소식을 주신 것 같습니다. 따르고 실천하는 이는 별로 없고, 그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면서, 무임승차하여 구원받겠다는 도둑놈 심보만 갖고 사는 이가 99% 이상이니, 이명박 대통령서부터 말단 신부에 이르기까지 다 그 모양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신자(信者)'란 말 그만 씁시다. 신자란 말은 너무 흔해서 그만큼 신용가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신자란 말 그만 쓰고 좇을 준(遵)자를 가져다가 '준자(遵者)'라는 말을 씁시다. '준자'란 '따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준주성범(遵主聖範)'이란 말 아시죠? 그 준주성범의 준자입니다. 어떻습니까? 준자, 준자. 미인 이름 같기도 하고, 왠지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우리 다함께 신자라는 말 대신 준자라는 말을 사용합시다. 예수님을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다시 말해 준자라는 말의 뜻을 깨닫고 실행한다는 뜻으로 이제부터는 준자라는 말을 사용합시다.

이름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적어도 '깨어난' 이들은 이름부터 개명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신자라는 말을 버리고, 우리 스스로 준자라는 말을 쓰면서 준자로 살아갈 때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부터 주님을 믿기만 하는 신자가 아닌, 주님을 따르는 준자가 됩시다!"

태안 해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인들이라 직접 기름제거 작업은 못하지만, 관심 갖고 찾아온 태안 해변에서 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태안 해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노인들이라 직접 기름제거 작업은 못하지만, 관심 갖고 찾아온 태안 해변에서 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지요하

나는 방상복 신부님의 그 강론 말씀을 전해 들으면서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방 신부님의 그 말씀에 절절히 동감하고, 기꺼이 동참할 마음을 가지면서도 나는 과연 준자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수없이 들었다. 이 의문 때문에라도, 나는 신자 차원을 벗어나 준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진정한 준자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준자'라는 말을 뇌리에 새기면서, 식사를 할 때는 더욱 방상복 신부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몸이 불편하신 노인을 버스에서 손수 업어 나르고, 자신은 해물 음식들에 일절 손을 대지 않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생선회를 권하고, 일행들이 해물 음식을 맛있게 드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시던 방 신부님.

9년 전인가 10년 전의 한 사제 피정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해물 음식 전체를 평생 동안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고행'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그 고행 속에서도 즐겁게 사시는 방상복 신부님.

그런 방 신부님이 신자만 즐비하고 준자는 보기 어려운 현실이 너무도 마음 아프고, 번민과 의문이 너무도 무거운 나머지 하느님께 '해답'을 청하며 지금 단식을 하고 계신다.

나는 비록 방 신부님의 단식에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오늘도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며 '준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어느덧 날이 바뀌어 버렸다. 


#사제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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