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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 강연내용에 관한 레디앙의 기사를 읽었다. 망설임 끝에 몇가지 문제제기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망설인 이유는 어쨌든 참여정부 시절 큰 틀에서 볼 때 국정운영의 한 부분인 방송정책 결정을 책임졌던 입장에서, 촛불집회나 촛불집회에 대한 평가 문제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의 보완'이라는 것이 촛불집회가 가지는 중요한 측면이라고 보고 문제제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최장집 교수 인식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와 정당의 부활'에 대한 바람은 상식이라할 만큼 당연한 것이지만 그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측면과 보완해야할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촛불 결과는 허망하다?

 

촛불집회는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정책결정에서 배제된 국민들의 정당한 의견제시였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제대로 된 국민의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민주적 절차의 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적 절차문제는 서서히 개선되어 왔다. 참여정부 초기 예를 들어 새만금과 방폐장 정책결정 과정은 표면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양상을 띠었다. 일부 보수언론이 혼란을 강조하고 정부를 공격해 참여정부를 아마추어로 몰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은 일사분란하다. 참여정부시절에는 심지어 위 해당사항을 놓고 최고 권력기구 내부에도 이견이 있었고, 이것이 표출되었다. 정부 내에도 이견이 있었다. 학계나 시민사회출신 정부 참여인사들은 위 사안뿐만 아니라 이라크 파병 문제와 FTA문제 등등에 대해 소신에 따라 제목소리를 냈다. 한 마디로 혼란스럽고 시끄러웠다.

 

그렇다면 참여정부 시절 갈등이 표출된 것은 '좋지 않은 것' 혹은 '민주주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 또는 '정부의 무능을 드러낸 것'이고, 이명박정부의 일사불란함은 '좋은 것' '정돈된 민주주의' '유능한 정부'를 의미하는 것일까.

 

정책 결정 이후 마무리 자세, 그리고 이후 정국 운영에 있어서도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는 확연히 다르다. 이전 정부들이 이후 정책결정 과정에서 나름대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했다면, 이명박정부는 국회가 열린 이후 '수'와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것이 최장집 교수로 하여금 "촛불 이후 이명박정부가 더 강해졌다" "촛불의 결과는 허망하다"고 표현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관련 보도 속 최장집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물론 같은 상황을 놓고 평가가 다를 수 있고 이런 판단을 해볼 수 있다. '경제살리기와 실용'을 내세우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공안'에 기대어 국정운용을 하고 싶을까. '대한민국에는 내 경쟁자가 없다'고 공언할 만큼 오만했던 이명박 대통령을 20%대 지지율은 부끄러울 만큼 초라하게 만든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중간 지대의 많은 국민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돌팔이·얼치기 경제전문가"를 뽑았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들린다. 국민에게는 불행이요, 이명박 대통령과 그주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지각있는 국민들이 '그'를 미처 파악하기전에 총선이 있었고 한나라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얻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과거의 착시에 기인한 힘'에 결과한 '권력'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명박이 촛불 이후 강해진 근거가 무엇인지는 금방 드러난다. 절대 다수인 국회의석외에도 한나라당이 거의 모두 장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가 이명박 정부의 배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슨 짓을 해도 최종적으로는 눈감아주는 보수언론, 이명박 정부가 못마땅해도 개혁을 내세우는 정부보다 낫다는 생각인지 뒷심이 되어주는 재계, 본성을 드러낸 공안기관들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이 이명박 정부의 배짱을 두둑하게 한다.

 

"촛불집회가 중요한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촛불은 새로운 민주주의 발전의 전환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내 생각으로는 "촛불이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와 정책결정에 결정적 제약을 가했다"라는 최장집 교수의 말은 "쇠고기협상에 관한한 촛불이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와 정책결정에 결정적 제약을 가했다"라는 정도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촛불의 결과가 허망하다"는 최 교수의 말이나 이후 방송장악과 공공기관 장악 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식 불도저 행태를 설명할 길이 없다.

 

촛불집회를 놓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다. 순기능이 더 크긴 하지만 역기능도 가진 게 촛불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일간지 기자가 며칠 전 제기했던 민주적 절차의 완성과 전선의 문제가 아닐까.

 

두 차례의 민주정부시절을 거치며 '완성되었다'고 선언되었던 민주적 절차가 지금 위협받고 있고 야당을 비롯해 시민사회와 학계 등등 다른 진영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기자의 지적처럼 전선을 어디에 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혹시 그동안 진보 혹은 개혁세력이라고 자부했던 우리들은 우리 앞에 놓인 '진보과제와 개혁과제' 그리고 각각의 해결방향 및 방식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공유하고 있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신자유주의 세계화 해결 앞에서 전선을 그어버리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똑같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민주 개혁적 과제의 완성앞에서 전선을 긋게 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다르다. 전선을 어디다 치고 연대하느냐의 문제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의 외연확대와도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적 절차 따위를 무시하고도 뻔뻔스러울 수 있는 마인드로 뭉친 세력과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하거나 지킬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있는 세력과의 차이점을 어느정도로 평가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점을 인정할 때 대북관계를 변수로 놓고 보면 좀더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다).

 

최장집 교수의 문제제기에 주목하는 이유

 

다음으로 최교수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만들어졌다면, 즉 2007년 12월 대선이 더 경쟁적 분위기에서 이루어지고 2008년 총선이 제도화된 상황 속에서 치러졌으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문제제게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왜 촛불집회 뒤 끝에 치르어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 결과와도 연결된 문제다. 왜 '민주주의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고' 대선과 총선결과가 그러했으며 공정택씨가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왜 서울시 교육감선거 투표율은 그토록 낮았을까. 왜 강남 지역 유권자들만 자신들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택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을까.

 

이러한 문제제기는 보다 근본적 문제에 주목하게 만들어준다. 지난 대선에서 왜 개혁적인 혹은 의식있는 국민들은 투표를 외면했을까.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왜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을까. 이로부터 보다 많은 것들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왜 참여정부는 그토록 무리하게 FTA를 추진해야 했을까" "왜 참여정부는 부동산 급등을 막기위해 주택대출 규제를 강화하지 않았을까" "왜 주경복 후보는 서민들에게 다가가는 교육대책을 내놓지 못했을까" "왜 이명박 지지율은 20%대인데 한나라당 지지율은 40%중반을 회복했을까" "왜 민주당은 잊혀진 정당으로 지지부진한 채 남아있을까"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했음에도 왜 민노당이나 진보진당 의석수는 늘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절대 다수임에도 왜 진보적인 정당에 대한 투표율은 낮을까" "왜 노동자들은 한나라당에 표를 줄까"

 

선거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 세력은 우선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성하고 패배의 원인과 이유를 철저히 분석해야한다. 그래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일어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해당세력이 일어서야할 사회적 필요성이 있을 때 일어서는 것이다. 우리 세력이 패한 것이 아니라 특정정당이 패한 것이라는 식의 생각은 위험하다 또 나는 어떤 세력에도 속하지 않았으므로 패하지 않았다는 태도는 도피적이기까지 하다.

 

촛불집회와 이명박 정권의 공안정국이 혹시 개혁 혹은 진보세력의 철저한 자기성찰을 회피하게 하지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위에 열거된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함께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보다 솔직한 입장을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논의의 진전을 위해 방송위원회에서 재직하는 동안 했던 정책결정에 대해 기회닿을 때마다 진솔하게 밝힐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류의 시각이 있을 수 있고 지식인 및 시민사회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촛불집회는 '국민적 시선'이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열린 소통수단을 통해 이명박정부의 행태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민주적 절차유린 및 막가파식 권위주의적 국정 운용, 소수 대기업에 몰아주기식 경제운용 방향, 방송 장악과정에서 보여준 언론자유말살행위 등등에 대해 국민들 대다수는 반대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가 '촛불이후 이명박정부는 더 강해졌다'라고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의 지지율은 여전히 20%대 초반내지 후반을 어기적 거리고 있다. 이웃나라에서는 20%대 지지율로는 국정 운용이 어려움을 인정한 총리가 사임했다.

 

성숙한 국민과 과거로 회귀하려는 민간 권위주의 정부와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최장집, #촛불,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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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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