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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공연 보도와 관련해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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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여주인공 두루미(이지아 분)는 음대 출신으로 지방 시청에 근무하는 여직원이다. 시에서 문화특구 지정을 받기 위해 아이디어를 제시하라고 직원들을 닦달하자 두루미는 음악의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기획한다.

기획안이 승인되고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시에서 3억 원을 지원받은 두루미는 그 돈으로 세계적인 지휘자 '강마에'('마에스트로 강', 김명민 분)를 초빙하고 프로 오케스트라를 섭외할 계획을 세우는데, 문제는 어수룩한 두루미가 시의 지원금을 공연 브로커에게 사기당하면서 발생한다.

이미 지휘 위촉료를 지불한 상태여서 외국에 체류 중이었던 '강마에'는 불러왔는데, 오케스트라 단원 연주비를 마련할 길 없는 두루미는 아마추어 연주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짜 오케스트라를 결성하게 된다. 강마에가 이 가짜 오케스트라를 지휘 감독하게 되면서 생기는 해프닝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소재다.

강마에는 이 대책 없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을 향해 '똥덩어리' 등의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를 늘어놓기 일쑤지만, 그의 음악성과 카리스마에 단원들은 서서히 감화되고 강마에 역시 단원들을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는 게 지금까지의 대략적인 사건 전개다.

<베토벤 바이러스> 가짜 오케스트라가 현실에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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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소개가 이 글의 목적은 아니지만, 드라마와 관계된 문제 제기 한 가지를 해 보자. 도대체 이런 식의 가짜 오케스트라가 결성되는 일이 현실에서 가능한가? 답변부터 말해보자면, 그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개연성이 매우 낮고 드라마의 특성상 사건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오케스트라 조직의 특수성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100여명 이상의 단원이 필요한데, 이들을 모두 '완전 고용' 형태로 기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투자금 이상의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 만한, 속된 말로 '잘 나가는' 오케스트라가 현실에서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오케스트라에서 단원들의 고용 형태는 '계약직'이다. 비교적 풍부한 시 예산을 활용하여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서울 시립교향악단조차 정식직원은 60명 안팎이니 그 밖의 오케스트라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사설 오케스트라 단체의 경우 모든 단원이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전문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나 드라마에서 두루미가 급조한 사이비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나 법적인 신분상의 뚜렷한 차이는 없는 게 현실이다. 계약된 연주를 위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연주회에 참여하는 이들의 집합, 현실에서 오케스트라의 정체가 이렇다.

'서태지 심포니' 공연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꽤 많이 에둘러 온 셈이지만, 위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제기할 문제와 적지 않은 연관 관계가 있다.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가짜 의혹
서태지 심포니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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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심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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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27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위대한(the great)' 서태지 심포니 공연이 열리게 되어 있다. 그것도 '로열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라는 세계적 공연 단체와 협연을 한다고 널리 알려져 왔다. 미리 밝혀두건대, 기자는 이 공연에 대해 음악적으로 아무런 편견이 없다(참고로, 기자는 작은 책 한 권까지 써가면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지지해 왔던 사람이다).

공연 제목에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데서 서태지 혹은 서태지를 둘러싼 이들의 어떤 촌스러운 강박을 느끼기도 했지만, 서태지 정도의 디테일에 강한 음악가가 오케스트라와 록 그리고 샘플링 사운드를 믹스시킨 효과는 어떻게 발휘될지 상당히 큰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태지와 공연하기로 되어 있는 이른바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드라마 속 두루미의 오케스트라처럼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심상찮은 의혹이 인터넷상에서 제기되어 왔다.

*어느 블로거의 1차 의혹 제기
*어느 블로거의 2차 의혹 제기

여기에서 서태지 심포니의 관현악 편곡자인 톨가 카쉬프의 경력 부풀리기 등의 의혹이 제기됨은 물론이거니와 핵심적 내용인즉슨,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홈페이지에 실린 공연 일정에는 서태지 공연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도 않다는 것, 따라서 한국에서 공연할 '로열 필하모닉'은 영국의 유명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오케스트라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다.

서태지 컴퍼니 해명이 찜찜한 까닭

그런데 이 의혹에 대해 서태지 컴퍼니 측에서 오늘자 인터넷 뉴스 기사를 통해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이들이 제시한 답변을 보면 다음과 같이 그 입장이 정리된다.

① 서태지 심포니 공연은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RPO')와의 정식 계약에 의해 이루어졌다.

② 상암에서 연주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대부분 'RPO'의 정식 단원이며, 조만간 이를 증명하는 개별 연주자 프로필을 제시하겠다.

③ 하지만, 공연의 특성상 객원 연주자를 들여 놓았기 때문에 연주자의 100%가 'RPO' 단원은 아니다. 그래서 'RPO'라고 쓰지 않고 '로열 필하모닉'이라고만 썼다.

④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지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냐 아니냐는 논쟁은 소모적이다". 곧, 지금의 의혹제기는 유명 연주 단체의 이름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타이틀 지상주의가 만든 해프닝"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위에서 ①의 사실 관계가 확실하다면, 나머지 ②, ③, ④에 대해서는 논의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서태지 컴퍼니는 언론을 통해서 계약서만 제시하시라. 의혹은 간단히 해명된다. 요컨대, RPO의 책임자의 사인이 든 계약서 사본만 제시하면 될 뿐, 그 밖의 어떤 해명도 본질을 흐리는 것일 뿐이다.

가령 ②에서처럼 서태지 컴퍼니가 연주자 프로필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의혹의 해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로필의 조작가능성이나 검증의 어려움이라는 문제를 떠나서, 최근 10~20년 사이 RPO의 연주회에 계약 관계로 참여해 왔을 연주자 수를 헤아려 보자면 천여 명을 헤아릴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일회적 계약을 맺은 연주자들의 참여는 세계적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자연히 ③의 해명 내용 역시 난센스가 된다. RPO와 정식 계약을 한 게 맞다면(①이 사실이라면) 객원 연주자들을 여럿 썼다 하더라도 RPO라는 명칭을 쓰는 데 법적인 문제가 없다.

실상 연주곡의 성격에 따라 특수 악기 연주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해서 오케스트라의 정식 공연에도 일정 비율의 객원 연주자들이 섞인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서태지 컴퍼니는 이 상식에 무지한 건지 무지한 척하는 건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요컨대, ①에 대한 증거만 제시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증거도 휴지 조각에 불과해진다.

'계약된 연주를 위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연주회에 참여하는 이들의 집합'이라고 오케스트라의 현실적 정체를 밝힌 기자의 언급을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오케스트라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기자는 그 구분을 위한 현실적 조건 또는 최소 조건으로서의 법적인 근거를 요구할 뿐이다.

'타이틀 지상주의가 만든 해프닝'이라니...

특히 이름난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경우 정식 단원과 객원 단원의 구분은 비교적 엄격하다. 하지만, 한국의 클래식 공연계에서 정식 단원이 거의 없이 객원 오케스트라 단원들만으로 구성된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초대하거나 '로열 필하모닉'과 같이 이름을 교묘하게 변경하여 짝퉁 해외 오케스트라를 초대하는 식의 크고 작은 해프닝은 적잖이 벌어진다. 대부분 편법적 계약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합법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는 일들도 종종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일은 대중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상식과 감식안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화 후진국적 현상이지만, 한국 공연계 전반의 이런 후진국적 관행에 비추어 보면 서태지 컴퍼니의 행태는 찜찜하더라도 대충 묻어두고 넘어가는 게 좋을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④의 해명 방식이다. '로열 필하모닉'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고?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소리 아닌가. 줄기세포가 한 개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떠냐고 하던……. 나아가 그들은 지금의 의혹제기가 유명 연주 단체의 이름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타이틀 지상주의가 만든 해프닝'에 불과하다며 으르대기까지 한다. 적반하장도 이쯤 되면 코미디다.

최소한의 변명거리도 못 찾고 있는 서태지 컴퍼니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두루미는 가짜 오케스트라를 둘러싼 합법과 범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현실의 서태지 컴퍼니는 어떨까? 드라마 속 두루미의 오케스트라는 애초에 유명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빌어오지 않았다. 드라마 시청자를 향한 두루미의 최소한의 변명거리다.

드라마 속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공연을 향한 열정과 눈물겨운 저마다의 사연 또한 드라마 속 가짜 오케스트라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거리다. 물론, 그조차도 수긍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눈높이에 달렸다.

그런데, 현실의 서태지는 어떤가? 그들은 저 유럽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로열 필하모닉'의 명성에 기대어 16만원이 넘는 스탠딩 티켓을 수만 장씩 팔아대고 있으면서도 태연히 대중들을 향해 '타이틀 지상주의'를 탓하며 삿대질하고 있다.

한때 그 이름이 권력에 저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서태지'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이다. 권력자가 자기 얼굴을 돌아보지 못한 채 으시대면 대중은 슬퍼진다. 의혹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면 그냥 계약서만 내보이시라. 서태지가 '서마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은 '똥덩어리'가 아니란 뜻이다.

덧붙이는 글 | 최유준 기자는 음악평론가로서 <음악은 사회적이다> 등의 역서와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등의 저서가 있다.



태그:#서태지, #서태지 심포니, #로열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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