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반 고흐, 죽음의 비밀>(문국진/예담)은 반 고흐의 죽음이 남긴 많은 의문과 진실을 법의학자인 문국진이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방대한 자료 수집과 작품을 토대로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데 집중되어 있다. 책은 반 고흐의 그림과 함께 엮여 있어 글과 함께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반 고흐, 죽음의 비밀>
 <반 고흐, 죽음의 비밀>
ⓒ 예담

관련사진보기

그냥 그림을 보는 것하고 저자의 생애에 대한 책을 읽고 난 뒤에 보는 그림은 분명히 다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언젠가 유럽여행 기회가 주어진다면 천재화가이자 고독한 나그네 화가였던 반 고흐의 미술관에 꼭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독한 천재화가 반 고흐,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이자 정열의 화가이며 일평생 고독한 천재화가였던 반 고흐가 남긴 미술품과 그의 생애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의 일생은 그가 원했던 사랑과 행복 대신 외로움, 고독과 싸워야 했던 변방의 삶이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자연과 이 땅의 사람들이 소홀히 하고 간과해 버리기 쉬운 소외된 자들, 노동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반 고흐의 관심과 마음이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생명의 화가인 것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반 고흐의 출생과 고독 속에서도 뜨겁게 타올랐던 그림을 향한 끝없는 추구와 죽음, 그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까지 한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전체를 대략 그려볼 수 있다. 특히 그가 그린 그림들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책 말미쯤에 가서야 반 고흐의 죽음이 자살이었는지 혹은 자살을 위장한 타살이었는지를 많은 자료를 토대로 저자는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반 고흐, 그는 누구인가?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한 빈촌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직업, 즉 화랑점원, 서점 점원, 어린이 성경교사, 전도사 등을 거치다가 나중에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화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불과 10년, 그러나 짧다면 짧은 10년 동안 그의 삶 전부를 불태우며 정열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은 충격을 주었고 오늘날도 회자되고 있다. 그의 삶은 뜨거웠고 파란만장했다.

그의 그림은 바로 그의 삶의 지문이다. 그의 그림은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는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 있었고 자연을 사랑했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800여 통에 이른다. 동생 테오가 그의 물주(?)였고, 그는 동생에 크게 의지했다. 반 고흐는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고 경제적 뒷받침은 전적으로 동생의 몫이었다. 반 고흐의 생애를 보면 상실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 고흐는 그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죽은 형의 생일과 같은 날 태어났다.

이 우연한 날짜의 일치, 그의 어머니는 죽은 큰아들을 슬퍼하며 매일 아들의 묘지를 찾았고 반 고흐는 자기와 똑같은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보았다. 그 우연한 사실이 반 고흐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불운의 계기였을까. 그는 런던의 하숙집에 머무를 때 그 집 딸 외제니를 열렬히 사랑한 것을 비롯해 몇 명의 여성을 사랑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거나 실패했다.

그는 여러 번의 발작을 일으킨 간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발작병이 그의 삶, 곧 그림그리기를 빼앗진 못했다. 그가 생레미 요양원에 있을 때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불쌍한 병이 나를 묵묵히 일에 열중하게 만든다...발작이 일어나면 무섭다. 그리고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오히려 일에 열중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위험에 노출된 광부가 자기 일에 열중하는 것과 같다." 그는 37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지금도 그와 그의 예술은 뜨겁게 살아 있다.

고흐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지누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는 또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회복이 따르게 마련이며 지금도 그것 때문에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훗날 이 병이 나으면 그것이 오히려 재기와 치유의 에너지가 됩니다. 병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목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병의 좋은 면이라 생각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후에는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에 이제는 병을 겁내지 않고 매일의 일에 열중할 수 있습니다...병이 있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화근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새로 출발시키고 회복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흐가 자른 것은 왼쪽 귀일까, 오른쪽 귀일까

반 고흐가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파리를 떠나 아를로 간 후 아무도 동참하지 않았다. 고갱 한 사람만이 그 '노란 집'이라 일컫는 곳으로 오게 되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갈등과 불화를 겪게 되고 고갱이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격분했던 반 고흐,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귀를 잘랐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가 귀를 자른 것은 고갱이 떠남으로써 '화가 공동체' 실현이 완전히 무너지는데 대한 실망의 표시라고 표현한다. 왜 하필 귀를 잘랐을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정신장애자가 자기 몸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은 어떤 명령적인 환각에 의한 것이고 그 환청을 듣고 자해를 한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반 고흐는 귀를 자르기 며칠 전 '아를 투우장의 관중'을 그렸다. 자신의 귀를 잘라 창녀 라셀에게 바친 것을 두고 그가 쓰러진 소와 승리한 투우사의 두 역을 혼자서 다 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반 고흐는 말이 없으니 그 확실한 답은 알 수 없다. 그가 자른 귀는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이것을 놓고도 논란이 많았지만 그가 자른 귀는 왼쪽 귀라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린 그림이라 얼핏 보면 오른쪽인 것 같지만 실은 왼쪽 귀라는 것이다.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

비록 아주 짧은 생을 살다 간 반 고흐지만, 그리고 지독히도 불운한 화가였지만 그의 그림은 대부분 너무도 따뜻하고 밝다. 화가 반 고흐는 그의 그림으로 말을 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가, '시인이란 가슴 깊은 곳에 고통을 감추고 있으면서 그것을 비명이나 신음 대신 아름다운 음률로 만들어내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그림을 비롯해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않을까.

파리에 있을 때 그가 그린 그림 중 '구두 한 켤레'를 보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 임했는가를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그가 그린 이 그림은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예술의 구원'이라는 수필 중 '움푹 패인 시커먼 구두 속에는 노동자의 지친 발걸음이 새겨져 있다'는 구절에 주목하고 얻은 소재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다른 화가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소재였다고 한다. 반 고흐가 코르몽의 아틀리에세서 사귄 친구 로트레크와 프랑수아 코지는 그를 이렇게 말했다.

"반 고흐는 중고품 만물 시장에서 잘 닦인 새 구두 한 켤레를 샀다. 그리고 농부나 노동자 등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궂은 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몽마르트 언덕을 가로질러 외곽도로를 누볐고, 그 한 켤레의 구두가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진 다음에야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처럼 그는 일상생활에 담겨져 있는 주제를 무엇보다 좋아했다. 그리고 낡아빠진 구두를 그린다는 것은 광부, 농부,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 고흐는 19세기 미술에서 다루는 소재들, 즉 성서적, 신화적 주제들에서 벗어나 그 시대에 가장 천한 주제에 속하는 농부를 그렸다. 농촌 풍경의 대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의 영향을 받기도 한 그였지만 그는 특히 노동자, 농민, 광부들을 그렸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가 그린 그림 중 '감자 먹는 사람들'은 농부들의 소박한 경건함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경건한 분위기...반 고흐는 이렇게도 말했다고 한다.

"이 그림이 진정한 농민의 그림이라는 평을 받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해바라기와 실편백나무 역시 많은 것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찬란한 노란색'을 찾기 위해 얼마나 집중하고 노력했는지 책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를 시립 병원 입원 당시 의사가 그의 과도한 음주를 나무랐을 때 그는 이렇게 변명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오...올 여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나로서는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오.'

이 압생트라는 술은 색맹이라는 색채 이상을 초래하는데 황시증도 그 부작용 중에 하나라고 한다. 즉 약쑥을 증류해 만든 압생트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데 테레벤(송진에 포함되어있는 방향성액체) 유도체가 함유되어 있어 이 술을 많이 마시면 중독은 물론 시각 장애를 일으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 그림을 그릴 때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기기묘묘한 노랑과 파랑의 색깔을 얻기 위해 고심, 그래서 압생트를 자주 마셨다고 한다. 거기서 태어난 것이 바로 '아를의 빈센트의 집(노란 집)' '해바라기', '아를의 밤의 카페', '수확하는 사람' 등의 명화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저자는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반 고흐가 남긴 800여 통의 편지와 600여 점의 유화작품을 토대로 추적한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추측했지만 반 고흐는 오직 그림으로만 말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자는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하나하나 추적해가면서 그 베일을 벗긴다.

반 고흐는 자살의 위험인자를 모두 지니고 있었던 화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구체적인 예를 제시한다. 그의 자살은 결코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한 죽음이 아니라 주변 여건에 의해 피할 수 없이 택하게 된 죽음이라고 말한다. 반 고흐의 그림 중에서 자살의 위험인자를 잘 표현했던 그림은 '영원의 문턱(울고 있는 노인)'이라고 하면서 맨 먼저 제시한다.

고민과 괴로움이 극에 달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반 고흐가 지녔던 자살의 위험 인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자살 미수로 끝난 귀를 자른 사건, 어릴 땐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상실감과 철들어서는 이성의 사랑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화가 공동체에 대한 꿈이 깨어진 것과 형제간의 사랑에 대한 상실감, 고독과 절망감, 성격과 알코올, 정신장애 등을 꼽는다.

반 고흐의 작품은 그가 죽은 뒤, 그러니까 영안실에 모인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애 첫 단독 전시회이자 마지막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그가 자기 목숨을 걸고 구했던 찬란한 노란색, 그 빛깔로 가득한 그림들이 그의 그림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전당으로 바뀐 것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나는 이 책에서 사실,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도 중요하겠지만 반 고흐의 37년이라는 삶, 천재화가의 고독한 삶과 불꽃같은 그림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열정에 더 깊이 반했다. 37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간 그는 사는 동안 깊은 고독과 가난과 외로움, 상실, 정신적인 병을 안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은 열정을 다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밀어 넣고 불태웠던 화가였다.

작은 것, 보잘것없는 것, 소외당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고 진정성을 그려내려 했던 화가였다. 화랑점원에서 출발하여 서점 점원, 어린이 성경교사,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거쳐서 화가가 되었고 그렇게 짧은 37년의 생애를 마쳤다. 생레미 요양원을 퇴원한 후 1890년 5월 20일, 파리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조용한 마을 오베르에 도착한 그는 거기서 마지막 남은 시간들을 그림에 몰두한다.

고작 그가 머물렀던 마지막 그 날들은 70여일, 그 기간동안 그가 그린 그림은 72점의 유화였다. 하루에 한점 이상씩 그림을 그리며 불꽃처럼 그렇게 정열을 쏟아 부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그림에 몰두했던 반 고흐는 가끔 다시 발작이 찾아올까봐 불안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까.

자신의 귀를 잘랐고, 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반 고흐, 그러나 그가 자신을 향해 쏘았다는 권총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반 고흐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사라진 권총은 어디 있을까. 끝까지 침묵했던 그는 지금도 그림으로 말할 뿐이다.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아직도 궁금한가. 그렇다며 이 책을 통해해 다시 한번 당신이 추적해 보기 바란다. 반 고흐의 죽음의 미스터리 뿐 아니라, 고귀한 한 영혼의 예술혼, 평생 고독과 싸웠고, 그러나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렸고 불꽃처럼 타올랐던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이 당신을 압도하고 말 것이다.

저자소개: 법의학자. 1925년생, 호는 도상, 필명은 유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 미국 칼럼비아 퍼시픽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 정회원이면서 국제법의학회 한국대표 등등. <법의 검시학>, <의료법학>, <모차르트의 귀> 등 30여권의 저서가 있다


반 고흐, 죽음의 비밀 - 자살인가 타살인가, 그림으로 밝혀낸 죽음의 미스터리

문국진 지음, 예담(2003)


#고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