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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농민 학부모들은 7일 오전 경남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고사 반대를 요구했다.
 노동자.농민 학부모들은 7일 오전 경남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고사 반대를 요구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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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화)부터 이틀간 전국의 중학교 3학년 교실은 시험 모드에 돌입합니다. 중학교 3학년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업성취도평가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죠. 학교마다 중간고사가 막 끝난 때라 아이들이 모처럼 해방감을 느끼는 그 짧은 휴식 기간이 이로 인해 저당 잡히고 말았습니다.

전국 단위 일제고사는 공개 여부를 떠나 학교별 '서열'이 매겨질 수밖에 없는 탓에 일선 학교들은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습니다. 학교 이미지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고, 성적이 뒤쳐진 학교라는 '낙인'은 사람들의 정서상 웬만해서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될 게 뻔합니다.

시험을 앞두고 사설 학원의 발 빠른 '영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 다퉈 '내신 완벽 대비 학원'이라며 호들갑을 떨더니, 요즘은 더 이상 그런 '류'의 광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특목고, 자사고 등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시험다운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며 마구 충동질하고 있습니다. 학교 시험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전국에 자신과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등수가 매겨진다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아이는 없습니다. 덩달아 학부모들의 관심 또한 자녀들 내신 관리에서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로 방향을 급선회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장사하는 학원들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습니다.

상위권 아이들만을 위한 울타리 굳히기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중간고사 준비하랴, 학업성취도평가 대비하랴 시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도 아닌 중학교에서도 우리가 무슨 시험 치르는 기계냐는 하소연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 학부모도, 일선 학교의 교사들조차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며 한숨만 내쉴 따름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숨 막히는 풍경이 '보편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느닷없는' 학업성취도평가는커녕 '멀쩡한' 중간고사에조차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십중팔구 성적이 뒤쳐진 아이들이며,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궁핍해 '한가하게' 공부나 할 처지가 못 되는 경우입니다.

계층마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 전전긍긍하며 목을 매단 아이와 학부모들은 많아야 열에 서넛입니다. 몇몇 '뜻 있는' 아이들은 일제고사 시행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도저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들은 사실상 학교와 사회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입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확연해집니다. 올 초부터 계획을 세워 시험을 준비해왔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으니 그냥 찍고 잠이나 자야겠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고, 심지어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학업성취도평가의 취지와 의미 또한 '각양각색'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상위권 아이들의 '실력'을 재차 뽐내는 기회이자, 그들만의 울타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비아냥에 수긍이 가는 이유입니다. 곧, 토요일을 제외하면 180일 남짓인 수업 일수 중에 이틀이나 따로 빼내, 멀쩡한 수업 시간을 이용해 전국의 중학교 3학년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학업성취도평가 위한 '모의고사' 본다고요?

학업성취도평가를 바라보는 아이와 학부모들만큼이나 일선 학교들의 대비하는 모습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중간고사가 끝나 해이해진 데다가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시험인 탓에 아이들이 대충 '찍는' 것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아예 이 시험에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예컨대, 성적에 반영되지는 않으나 담임교사가 채점 결과에 따라 응분의 책임을 묻는다며 은근히 을러대는 경우도 있고 기존의 중간고사 성적에 견줘 향상된 정도에 따라 포상하는 등의 방법도 고민되고 있습니다. '네거티브'한 방식이든, '포지티브'한 방식이든 하나같이 학교마다 덤터기 씌워진 고육지책입니다.

그러나 '서열'이 매겨지고 공개되는 경쟁에서는 반드시 '과열'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종국에는 시험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것은 물론, 교육의 근간을 뒤흔들고 황폐화시키기 십상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입시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일제고사는 또 하나의 '작은 입시'가 되어 학사운영에 개입하려 들고 있습니다.

몇몇 사립 중학교를 중심으로 '학업성취도평가 대비를 위한 모의고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끝 모를 과열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시험 대비용 시험'을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모의고사를 치르게 된다면 또 멀쩡한 수업 일수를 하루 더 빼내야 함은 물론입니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지쳤습니다

주변 학교의 대응을 서로 눈치 보는 처지이지만, 어떻든 여느 곳에 견줘 '열심히 하는 학교'라는 이미지를 학부모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기필코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투지'는 똑같습니다. 학교와 학부모의 '과잉 의욕'은 결국 아이들의 학습 시간을 무한정 늘리는 방향으로 흘렀고, 그런 까닭인지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요즘 들어서는 학원에서도 수업 대신 학업성취도평가 대비 모의고사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잖아도 고단하기만 한 아이들의 하루 일과에 또 하나의 '복병'이 나타난 셈입니다.

언제쯤 되어야 잔뜩 찌푸린 그들의 얼굴과 축 쳐진 어깨가 펴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올 들어 우리 사회에 가장 나빠진 것이 경제 상황이라지만, 급속도로 황폐해져만 가는 교육 현장을 직접 와 보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도, 교사도 퀭한 눈에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꿈일지언정 '희망'을 이야기했었는데.

덧붙이는 글 | 교사들 사이의 불문율 한 가지. '시험 자주 본다고 학력 향상되나?' 그런데도 시험의 종류와 횟수를 마구잡이로 늘리는 건, 오직 하나 사교육업체 배불리기 위한 방편이 되기 십상입니다. 공신력을 지닌 시험 하나가 수십 개의 다종다기한 모의고사를 출현시키기 때문입니다. 설마 이럴 의도로 일제고사를 계획한 건 아니겠죠?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전국학업성취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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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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