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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땅에서 부부는 서로의 마음이 되어 준다.
▲ 시인과 아내. 시골살이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땅에서 부부는 서로의 마음이 되어 준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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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자연에서 길어 올리는 시인이 있다. 그를 만나려면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으로 가서 포도농사로 유명한 마을인 예밀리를 찾아야 한다. 인접한 곳엔 시선 김삿갓 유적지가 있어 그의 시시계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만든다.

유승도 시인의 집엔 시향과 꿀향이 함께 흐른다

농사를 지으며 시작업을 하고 있는 이는 유승도 시인. '반농반시'의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의 집은 망경대산 중턱에 있다. 집이 위치한 곳이 해발 고도가 700여m나 되니 자연이든 사람이든 숨쉬며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땅이다. 그래서였던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유승도 시인의 가족은 언제나 건강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지난 일요일(5일) 그를 만나러 망경대산으로 갔다. 지난 5월에 그의 집을 찼았으니 5개월 만의 걸음이었다. 생각해보니 지난해 연말을 유승도 시인의 집에서 보낸 이후 5개월 마다 그의 집을 찾은 듯 싶다. 지난 봄엔 벌이 분봉을 한다고 하여 찾았고, 이번엔 꿀을 딴다 하여 갔으니 그의 집은 시향과 함께 달콤한 꿀향까지 흐르는 집이 분명했다.

10월에 접어 들자 유승도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극히 느린 말투와 스님처럼 선문답 같은 말투는 여전했다.

"꿀을 뜨기 시작했는데 언제 한 번 다녀가시지요?"
"그럼 가야지요."

지난 달 한국문학평화포럼에서 주최한 태백문학축전에서 만난 유승도 시인에게 토종꿀을 뜨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더니 전화가 온 것이다. 지난 5월 분봉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 벌통에 꿀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약으로 써야 겠는데, 토종꿀을 좀 구했으면 좋겠다"라는 모친의 말을 몇 차례 들었던 탓도 있었다.

시인이 벌통에 꿀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 벌통과 시인. 시인이 벌통에 꿀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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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연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막대를 꽂아둔 벌통까지만 꿀을 뜨고 나머진 벌들의 양식으로 남겨둔다.
▲ "요기까지만 꿀 뜹니다" 시인은 자연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막대를 꽂아둔 벌통까지만 꿀을 뜨고 나머진 벌들의 양식으로 남겨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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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벌은 나누기 싫어 사람 공격, 토종벌은 나눌 줄 알아

바쁘지도 않은 인생이지만 날을 잡다 보니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가을 햇살이 하늘 가득 쏟아지는 휴일, 삼겹살 두 근과 빵을 사들고 유승도 시인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시인 부부는 꿀을 뜨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여 얼른 삼겹살을 구워 콩이 든 밥을 놓고 마루에서 식사를 했다.

"소주 한 잔 하실랍니까?"
"거 좋지요."

유승도 시인이 물었고, 나는 흔쾌히 답했다.

"아고, 술을 많이 마시면 벌이 달려 들어요."

주변 경치에 취해 몇 잔을 거푸 들이키자 시인의 부인이 말했다. 그 말에 들던 술잔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유인 즉슨, 술을 마시면 몸에 열이 나게되고 열이 나면 벌이 달려 든다는 거였다. 일리 있는 이유였다. 성묘 때마다 벌로 인해 사고가 나는 것도 술이 원인이었다니 믿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딱 몇 잔만…."

그렇게 시인의 부인에게 허락을 받았지만 결국은 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식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꿀을 뜨기 시작했다. 가끔 사진이나 TV를 보면 꿀을 뜰 때 얼굴이나 손에 모기장을 쓰고 했지만 시인 부부는 맨 몸으로 꿀을 뜨러갔다. 술을 마신 나도 있었지만 벌이 달려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벌이 달려들지 않나요?"
"양봉벌은 자신들이 만든 꿀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토종벌은 달려들지 않아요."

아하, 양봉과 토종의 차이에 그런 비밀이 있는 줄 몰랐다. 나눌 줄 모르는 양봉과 나눌 줄 아는 토종이라니. 벌의 세계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벌통을 들고 있는 시인의 아내.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 "이게 바로 토종꿀이랍니다" 벌통을 들고 있는 시인의 아내.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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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통을 들고 있는 시인의 손에 벌이 기어 오르지만 쏘지는 않았다.
▲ 시인과 벌. 벌통을 들고 있는 시인의 손에 벌이 기어 오르지만 쏘지는 않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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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꿀 먹고 취한 소설가, 벌통 하나 들고 끙끙 대

유승도 시인이 놓은 벌통은 스무 개 남짓, 시인은 벌통을 두드리며 꿀이 어느 정도 들어 찼는지 확인했다. 꿀이 든 벌통은 잘 익은 수박처럼 경쾌한 소리를 냈다.

"작년엔 꿀을 하나도 뜨지 못했는데, 올핸 제법 들었는 걸요."

작년에 꿀을 뜨지 못한 것은 비가 자주 내린 탓이었다. 올해는 비 내리는 날이 적어 야생꽃들의 개화가 오래 지속되었고, 자연스레 벌들의 활동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주변의 밀원이 한정되어 있어 많은 꿀을 생산하지는 못하다는 꿀농사. 그래도 필요한 정도의 꿀은 얻을 수 있다지만 그것도 언제나 하늘이 정하는 만큼이었다.

몇 층 높이로 만들어진 벌통은 한층씩 떼어 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시인은 꿀이 들어있는 곳을 쇠줄로 잘라 벌통을 분리했다. 분리된 벌통엔 꿀이 가득 들어 있고, 그것을 들어 올리니 꿀이 주륵 흘러내렸다.

시인의 부인은 남편을 도와 벌통에 든 꿀을 함지에 담았다. 밀랍 사이로 가득 찬 꿀은 빛깔도 고왔다. 시인의 부인이 손바닥만한 꿀을 뚝 떼어 먹어 보라고 건넸다. 양봉도 아닌 것을 수박 먹듯 우적우적 깨물어 먹으니 입안 가득 꿀이 고였다. 목으로 넘어갈 땐 '이게 웬 횡재?'다 싶을 정도로 행복하기까지 했다.

"토종꿀을 먹으면 취한다고 하더만 정말인가 봐요?"

꿀 뜨는 일을 도와주는 것은 고사하고 아무 생각없이 몇 조각을 집어 먹었더니 어쩐지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약발이 받는 증거입니다. 더 드시고 취하면 한 숨 주무세요."

시인의 부인, 말씀도 곱다. 취하면 그만 먹으라고 할 것이지 더 먹고 한 숨 자란다. 충남 서산이 고향인 유승도 시인과 경북 상주가 고향인 그의 부인, 남편은 말이 느리고 부인은 말이 빠르다.

부부란 한 길을 함께 걸어 가는 것. 시인과 아내가 벌통에 든 꿀을 떼어내고 있다. '꿀 보다 달콤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부부이다.
▲ 부부. 부부란 한 길을 함께 걸어 가는 것. 시인과 아내가 벌통에 든 꿀을 떼어내고 있다. '꿀 보다 달콤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부부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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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토종꿀을 소설가 어머니를 위해 선뜻 건네고

빠름과 느림 사이에 존재하는 아들 현준이는 부모가 꿀을 뜨는 사이, 이웃집에 사는 여자 친구와 숨바꼭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영락없는 시골집 풍경에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현준아, 배 꺼진다 그만 뛰거라."

그 말을 했더니 시인의 부인도 어린 시절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가장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시인의 부인. 그래도 대학 교육 만은 다 시켰다는 부모님. 그런 일로 유승도 시인과 함께 '국문학'을 전공했고, 유승도 시인이 정선 구절리 마을에서 광부생활을 할 때 시인의 아내가 되었다.

"꿀을 뜨려니 벌들에게 미안하네요."

유승도 시인, 꿀을 한 입 베어 먹으며 말했다. 한 통의 꿀을 채우기 위해 벌이 얼마나 많은 날갯짓을 해야 했는지 인간으로서는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시인과 소설가는 벌들의 삶에 대해 서로 짐작해 보았지만 전자계산기로도 산출 할 수 없는 엄청난 수고로움만 확인하고는 말을 잊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이 어디 한 둘일까. 그 많은 꽃들을 찾아 다니며 꿀을 모았을 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것이 유승도 시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꿀을 뜰 때도 벌들이 겨우내 먹고도 남을 양식의 꿀은 남겨 두었다.

"토종꿀이라고 하지만 꿀을 뜨고 설탕을 넣어 주는 경우도 많아요. 벌들로서는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그래서 꿀의 절반만 나눠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런 시인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벌들은 시인의 손에 묻은 꿀을 빨아 먹기는 하지만 절대로 '한 방' 먹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번엔 벌통을 직접 옮겨 보았다. 무겁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가뿐하게 들었다. 떼어낸 벌통을 드는 순간 얼마나 무겁던지 내 몸이 휘청했다. 벌통을 땅바닥에 떨어 뜨릴 수도 있는 상황, 꿀이 몸에 묻던 말던 벌통을 바투 잡았다. 족히 10kg은 될 법한 벌통에 든 꿀은 두 되 정도의 양이라고 했다.

벌통의 꿀은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잘 걸러 병에 담아 보관한다. 유승도 시인은 그렇게 담긴 것 중에서 한 병을 내게 건넸다.

"어머니께 드리세요. 벌들의 힘으로만 만든 토종꿀이라 효과가 좋을 겁니다."

이거 참, 고맙고 미안했다. 꿀농사도 농사 중에서 큰 농사일 텐데, 선뜻 건네고 선뜻 받고 말았다. 자연에서 덤으로 얻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부르는 게 값인 토종꿀이 아니던가. 그런 귀한 것을 선뜻 내어주는 시인의 마음을 어찌 갚아야 할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꿀이 가득 차 있는 벌통. 예술작품이 따로 없다.
▲ 벌들의 예술. 꿀이 가득 차 있는 벌통. 예술작품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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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만든 밀랍 사이로 꿀이 가득하다. 밀랍 사이는 벌이 다니는 통로이며 꿀은 색이 진할 수록 맛이 좋다. 저런 꿀 조각을 몇 개나 먹었으니 취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 "꿀 좀 드실래요?" 벌이 만든 밀랍 사이로 꿀이 가득하다. 밀랍 사이는 벌이 다니는 통로이며 꿀은 색이 진할 수록 맛이 좋다. 저런 꿀 조각을 몇 개나 먹었으니 취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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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토종꿀이라 그런지 약발 한번 좋네"

그는 지난 여름 우리집 앞의 계곡에서 소설가 김도연과 이종득, 윤대녕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삼겹살을 구울 때 텃밭에 심었던 방울토마토를 가지고 왔고, 9월 중순 문학행사를 할 때엔 본인이 직접 생산한 싱싱한 포도를 한 상자 가지고 와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연에서 받은 것들을 사람에게 나누는 시인의 심성, 그의 심성은 자연이라 해도 무방하다.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새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승도야

- 유승도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에 수록된 시 '나의 새' 전문

아침 시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새와 함께 살아가는 유승도 시인. 그날 아침도 새들은 그의 집 주변을 돌며 "승도야"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의 집 마당엔 잘 익어가는 꽈리가 있었다. 주변의 밭에는 시인이 가꾼 포도밭과 콩과 들깨가 알을 채우고 있고, 하늘을 날던 새들은 그가 가꾼 양식을 나누어 먹기 위해 시인의 밭으로 자주 내려 앉았다. 새들은 그냥 먹기 미안했던지 시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째째 삐어 삐어 삐억
나에게 와주실 수 있으세요
째째 삐어 삐어 삐억
째째 삐어 삐어 삐억
해가 반짝 뜬 날에도
비가 가득한 날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 유승도 시집 <차가운 웃음>에 수록된 시 '새는 말한다' 전문

토종꿀을 받아 든 어머니 환하게 웃으시며 "아구야, 고맙구나. 지난 번에 따순 밥도 못해 먹이고 보냈는데…고맙다고 전해라" 하셨다.

그날 유승도 시인의 집에서 겁없이 집어 먹은 토종꿀로 인해 다음 날까지 속은 타 오르고 취기 또한 가라앉지 않아 나 홀로 하늘을 보며 "허, 토종꿀이라 그런지 약발 한번 좋네" 했다. 시인의 집에 다녀오면 내 마음에도 시가 몇 편씩 깃들어 주제 넘게도 시를 끄적이곤 했다. 참, 고약한 밤이다.

유승도 시인이 토종꿀 농사 터는 소박하고 재미있다.
▲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유승도 시인이 토종꿀 농사 터는 소박하고 재미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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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승도, #토종꿀, #시인과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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