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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토밭에서 곡괭이로 호박고구마 캐는 동생부부
황토밭에서 곡괭이로 호박고구마 캐는 동생부부 ⓒ 이승철

“쇠스랑은 고구마 캘 때 필요하겠지만, 곡괭이는 어디에 쓰려고 사나?”
“아, 이거? 고구마 캘 때 필요할 것 같아서, 날이 너무 가물었잖아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둘러본 동생은 시내 농사용구 가게에 들러 곡괭이와 쇠스랑을 한 개씩 샀습니다. 고구마를 캐려면 쇠스랑은 필요할 것 같았지만 곡괭이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물어본 것입니다.

날씨가 너무 오래 가물었다고는 해도 고구마를 곡괭이로 캐야 할는지도 모른다는 동생의 말은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벌써 3년째 농사일을 하는 동생의 말이니 믿을 수밖에 없었지요.

거제 도심을 벗어난 승용차는 구불구불 좁은 길을 30여분이나 달렸습니다. 섬은 온통 산이었습니다. 넓은 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산골짜기 비좁은 논밭에 곡식들이 영글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랑이 논과 다랑이 밭들이었지요.

그래도 바닷가 작은 포구들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지요. 그런 길을 달려 낮은 고개를 넘어 도착한 곳이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 마을, 마을은 조그만 포구 안쪽에 자리 잡은 작은 어촌 겸 농촌이었지요.

 어쩌다 조금 큰 고구마를 캐어 손에들고 기뻐하는 제수씨
어쩌다 조금 큰 고구마를 캐어 손에들고 기뻐하는 제수씨 ⓒ 이승철

동생은 우선 단골로 이용하는 민박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우리가 머물 민박집은 커다란 거실과 안방, 그리고 작은 방 두 개와 욕실이 딸린 오래된 농가였습니다. 그래도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음식을 나누며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민박집에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배추밭과 파밭, 그리고 종려나무 묘목들이 빼곡하게 심겨져 있는 밭을 지나 고구마밭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동생의 밭은 마을과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중간에 있었습니다.

허술한 울타리 사이에 걸쳐있는 장난감 같은 각목쪼가리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황토향이 뭉클합니다. 기다란 형태의 큰 밭과 층층이 작은 밭 세 개는 동생 부부가 정성을 드려 가꾸는 매실나무 200여 그루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무슨 과수원이 이렇게 말끔할 수가 있어? 나무 밑에 풀 한 포기 없는 빨간 황토밭이잖아?”

놀라운 모습에 내가 동생 부부를 바라보며 한 말입니다. 매실나무를 기르는 밭이면 분명히 과수원인데 나무와 나무들 사이에 고구마를 심어 놓은 것을 제외하면 나무 밑은 온통 붉은 황토색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왕 농사짓기로 마음먹고 하는 일인데 수북하게 풀밭이 되게 할 수 없어서 철저하게 풀을 매주었지 뭐!”

정말 변변한 풀 한 포기 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동생부부는 1년에 70여일 이상씩 이곳에 머물며 풀을 뽑고 나무를 가꾸었다고 합니다. 특히 장마철이나 풀이 많이 자라나는 여름철이면 풀을 뽑고 돌아서면 다시 돋아나는 잡초들을 제거하느라 많은 땀을 흘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뭄 때문에 길쭉하게 자라지 못하고 둥글둥글 작은 고구마들
가뭄 때문에 길쭉하게 자라지 못하고 둥글둥글 작은 고구마들 ⓒ 이승철

이날도 우선 밭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침범한 잡초들을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가을철이기 때문에 잡초의 씨앗이 밭 가운데 떨어지면 내년에 그만큼 힘이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날 오후 시간은 이렇게 나무들을 돌보고 잡초를 제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동생 부부가 풀을 매고 매실나무를 손보는 동안 나는 언덕 밭둑 아래에 조그만 웅덩이 하나를 팠습니다. 비가 내리면 물이 고여 매실나무와 밭작물에 조금이라도 수분공급을 더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언덕배기 황토밭이 너무 메마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작업하는 동안 쨍쨍 내리쪼이는 가을 햇볕에 온몸은 금방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지만, 시간은 빨리 흘렀습니다. 민박집으로 내려올 때는 모처럼의 노동으로 피로가 온몸을 휘감았지만 적당히 따뜻한 물로 씻고 난 후의 저녁밥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지요.

한나절의 노동으로 지친 몸은 깊은 잠을 청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조반을 먹고 고구마를 캐기 위해 다시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동생 부부는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보다 세 곱이나 많은 고구마를 심었으니 수확도 그만큼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고구마꽃,  줄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고구마꽃, 줄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 이승철

고구마 캐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오랜 가뭄으로 흙이 너무 단단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가지고 간 쇠스랑을 사용해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습니다. 쇠스랑이 땅속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들어갔다 해도 흙을 파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흙이 단단하여 쇠스랑 자루가 부러지려고 했으니까요.

할 수없이 곡괭이와 괭이로 조금씩 흙을 파내며 고구마를 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구마가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줄기 바로 아래 뿌리 부분을 겨냥하여 약간 바깥쪽을 괭이나 곡괭이로 파다 보면 엉뚱하게 고구마가 반쪽으로 찍혀 나오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호박고구마는 캐는 것도 까다로워 농민들이 잘 심지 않는답니다. 일반 고구마는 경운기로 갈아 넘기고 고구마를 골라내면 아주 쉬운데, 이 호박고구마는 전혀 엉뚱한 곳에 들어 있어서 경운기로 갈아 넘기면 고구마가 너무 많이 상하기 때문이랍니다.”

고구마, 그것도 호박고구마를 처음 캐보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내가 자꾸 고구마를 상하게 하자 제수씨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고구마 몇 개를 상하게 하고 나서야 조금 요령이 생겼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곳에 숨어 있던 고구마를 상하게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올해 고구마 농사는 완전 실패로구만, 너무 가물어서 고구마가 길쭉길쭉하게 쑥쑥 자라지 못하고 그냥 공처럼 동글동글 한 것이 틀린 것 같아.”

몇 포기의 고구마를 캔 동생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하는 말이었습니다. 제수씨가 줄기를 호미로 걷어내고 고구마 위치를 확인하면, 동생은 곡괭이로 파내는 작업을 계속했지만 신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매실나무 사이로 보이는 고구마밭. 
저 멀리 보이는 산은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가라산
매실나무 사이로 보이는 고구마밭. 저 멀리 보이는 산은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가라산 ⓒ 이승철

모처럼 동생의 농사짓는 모습도 살펴보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함께한 나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이맘때 충남 공주에 사는 친지가 보내준 호박만큼씩이나 커다란 고구마를 생각하면 아이들 주먹 정도 크기의 이곳 고구마들은 너무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으니까요.

“올해는 많이 수확해서 형제들과 이웃들에게도 넉넉히 나눠주려고 했는데 틀린 것 같아. 그동안 헛고생을 한 것 같아 아쉽구만.”

동생이 일손을 놓고 그늘에 앉아 쉬며 푸념을 합니다. 동생 부부는 지난봄부터 고구마를 심고 가꾸는데 작년보다 훨씬 더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뭄으로 고구마가 자라지 못해 너무 적은 수확을 하게 되자 실망이 여간 큰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매실나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 언덕은 유난히 바닷바람이 거세어 과일나무 키우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랍니다. 그런데 동생부부의 지극한 정성으로 2년 전에 심은 매실나무가 거의 모두 건강하게 잘 자란 것입니다.

이곳 토박이 주민들도 처음에는 ‘서울 뜨내기가 농사는 무슨?’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눈치였지만 요즘은 말끔한 밭이며 매실나무 가꿔 놓은 걸 보고 놀란답니다. 이날도 몇 사람의 나이든 주민들이 밭으로 찾아와 내년 고구마 농사에 대한 조언도 해주고 매실나무 잘 키웠다고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소박하고 정다운 이웃들의 모습이었지요.

“고구마를 곡괭이로 캐다니, 무신 가뭄이 이리 심한지 모르겠다.  서울 사람들 농민들이 이렇게 힘들여 농사짓고 수확하는 줄 모를 거라.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비싸다 하지 말고 사 먹어야지.”

우리가 곡괭이로 고구마 캐는 것을 둘러본 70대 노인이 근처에 있는 자기네 고구마 밭으로 가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날 동생 부부와 캔 고구마는 모두 5박스였습니다.

동생 부부는 15박스를 기대했지만 적어도 10박스는 나왔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워했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수확량이 너무 많이 줄어든 올가을 고구마, 그것도 힘들게 곡괭이로 캐야 하는 호박고구마, 정말 비싸다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먹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호박고구마#동생부부#다대리#곡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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