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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분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이 집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 그분의 전원주택 그분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이 집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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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올 해 초중반에 작은 시골 집을 지어서 완공을 봤고, 지금은 사사로운 마무리를 하느라 내 혼자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 곳은 시골 마을인데 인심이 너무 좋다. 몸 둘 바를 몰라할 정도로...

아버지 연세가 82이다. 부산 본가가 코딱지 만한 40년 된 아파트, 재건축 기다리다가 날 샐 것 같아서 지난해 리모델링 했지만 끝내는 반대를 무릅쓰고 새 집을 지었다. 부모님...평생을 돈 못벌고 집다운 집 한 칸 없이 이 날 이 때까지 살아 오셨거든.

물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한 푼, 땅 한 평 없지만 오히려 내 혼자 이렇게나마 이루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그런 후, 부모님은 한 주 걸러 한 번 씩 이 곳에 머물다 내려가시곤 하고 있다.

만나서 얘기하자, 여기서 식구 모두 하루 묵어가도 좋고... 혹시 이번 토요일 시간 봐서 한 번 오든지. 여기 외동읍 말방리인데 열차 타고 불국사역까지 오면 10분 안에 데리러 간다.
그럼 문자 메시지 하고 이번 주말에 한번 보자. 잠깐이라도. Ohmynews 기자에게...

그분은 방안에 놓을 소품 가구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참 손재주 하나 멋집니다.
▲ 손수 제작하는 소품 가구 그분은 방안에 놓을 소품 가구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참 손재주 하나 멋집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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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자르고 조립하고 풀을 먹여 붙여둡니다. 이렇게 마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럼 하나가 완성된 것이라 합니다.
▲ 완성된 소품 가구 나무를 자르고 조립하고 풀을 먹여 붙여둡니다. 이렇게 마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럼 하나가 완성된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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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일들이 번잡스러울텐데도 그분은 그 일들이 즐겁다고 합니다.
▲ 제작된 소품 가구들 여러가지 일들이 번잡스러울텐데도 그분은 그 일들이 즐겁다고 합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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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문 열고 쪽지가 왔나 살피다 위와 같은 내용의 쪽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위 내용을 보낸 분은 다름 아니라 오래 전 만난 지인으로 그동안 연락이 두절된 채 살다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저의 기사 내용을 보고 쪽지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분을 만난 지 벌써 20여 년이 다 돼 갑니다. 그 분은 동구지역 대기업 직장인이면서 고전음악 애호가이기도 합니다. 오디오에 있어선 남다른 혜안을 지닌 전문가기도 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몇 해 많아 형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쪽지를 보고 당장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토요일(10/25) 시간 내어 가겠다고 답쪽지를 보냈습니다. 참 반가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을 또 오마이뉴스를 통해 만나게 되다니요. 참 멋진 인터넷 매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그 분을 못 잊는 것은 오래 전 대중가요만 알고 있던 저에게 멋진 고전음악에 대해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가족과 함께 전원주택을 구경할 겸 가보려 했으나 수학여행 다녀온 딸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린데다 발까지 다쳐 병원 다녀오느라 저랑 초등학교 1학년 아들만 갔습니다.

오전 11시경 울산역서 불국사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니 30분 정도 걸려 도착했습니다. 그 분이 차로 마중을 나와 같이 집에 갔습니다. 집은 아담하고 멋진 전원주택이었습니다. 텃밭엔 주먹 두 개 만한 수박 한 개가 있고 상추와 무도 있었습니다.

시골이라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고안했다고 합니다. 미지근하게 방을 데우고 벽난로에 참나무를 넣고 불을 때면 밤새 방이 따뜻하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입니다.
▲ 벽난로 시골이라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고안했다고 합니다. 미지근하게 방을 데우고 벽난로에 참나무를 넣고 불을 때면 밤새 방이 따뜻하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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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땔 참나무를 얻어 짧게 잘라 차곡차곡 쌓아 두었습니다. 부모님을 배려하는 그분이 참 보기 좋습니다.
▲ 참나무 모으기 겨우내 땔 참나무를 얻어 짧게 잘라 차곡차곡 쌓아 두었습니다. 부모님을 배려하는 그분이 참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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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엔 오디오 방이 따로 꾸며져 있었으며 작은방, 큰방, 거실, 부엌, 욕실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벽엔 아담한 벽난로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 분은 목재를 구해 가구를 직접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못 본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와! 형님 대단하네요. 이런 것도 만들고."

그분은 그런 일이 재밌다고 했습니다. 쪽지로 보낸 내용처럼 마무리 단계로 소소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구도 제작하고 겨울 벽난로 땔감 구하려고 동네에 전원주택 짓는 곳을 돌아 다니며 참나무도 구해 와 도끼로 쪼개 쌓아 두었습니다.

전문가용 오디오로 모두 별도 구매하고 또 부품을 구해 조립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세상에 둘도 없는 오디오 세트 입니다. 이렇게 구비하는데 오랜 세월이 소요 된 듯합니다.
▲ 오디오 세트 전문가용 오디오로 모두 별도 구매하고 또 부품을 구해 조립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세상에 둘도 없는 오디오 세트 입니다. 이렇게 구비하는데 오랜 세월이 소요 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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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턴테이블과 멀리 보이는 양쪽 음향기기 입니다. 내가 베토벤 음악을 좋아해서 교향곡 3번을 들어 보았는데 마치 현장에서 듣는 음악 같았습니다.
▲ 턴테이블기기와 음향기기 앞의 턴테이블과 멀리 보이는 양쪽 음향기기 입니다. 내가 베토벤 음악을 좋아해서 교향곡 3번을 들어 보았는데 마치 현장에서 듣는 음악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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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엘피판을 좋아 했습니다. 디지털화된 시디는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며 현장감 있는 음악은 역시나 엘피판으로 들어야 한다며 한 곡을 들려 주었습니다.
▲ 음악감상 준비중 이분은 엘피판을 좋아 했습니다. 디지털화된 시디는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며 현장감 있는 음악은 역시나 엘피판으로 들어야 한다며 한 곡을 들려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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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오디오 전문가로 전국 마니아들의 자문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다니랴, 새 집 지으랴, 음악과 오디오 마니아로 활동하랴 참 바쁘게 살고 있었습니다. 저도 아이와 같이 다니며 나무 구하러 다니고 도끼로 참나무 쪼개 쌓아 두는 일 등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 분은 손수 밥을 지었습니다. 텃밭에 나가 상추를 골라와 씻고  김치 등의 검소한 반찬으로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참 가정적인 남자였습니다. 오후엔 같이 음악 감상도 하고 여러가지 대화도 하였습니다.

"형, 이 집은 언제부터 짓기로 마음 먹은 거예요?"

부모님께 근사한 집 한채 지어 드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평생 어렵게 살아 변변한 집에서 살아보지도 못한 노후한 부모님을 위해 그동안 번 돈 모두 투자하여 땅을 구하고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3년 전부터 추진해서 이제야 끝났다고 합니다. 참 보기드문 효자 아들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는 분답게 집 구조가 특색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이번에 집짓기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땅 구입하고 집짓기를 시작 할 때 이웃과 마찰 등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양보할 건 하고 설득할 건 하면서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나간 겁니다. 지금은 이웃과 친근하게 지낸다니 말입니다.

거실엔 호박과 대추가 많이 쌓여 있어 궁금했는데 모두 이웃에서 따다 준 먹거리들이었습니다. 그분의 성실함과 진솔함에 감복했나 봅니다. 지금 지은 집은 노부모를 위한 집이니 만큼 출퇴근이 용이하고 노부모의 교통 문제가 없는 곳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바로 앞이 마을 차도이고 조금 나가면 큰 도로가 나옵니다.

"형은 언제부터 고전음악을 좋아했어요?"

국민학교  학교 조회 때 나오는 행진곡 듣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또한, 피아노 학원서 흘러 나오는 연습 소리와 국가 행사때나 학교 행사때 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며 지나는게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오디오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취업후 첫 월급 타서 오디오부터 구입하고 판도 모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작이 지난 1989년부터라니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오디오가 독일제인데 그것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그분은 그동안 숱한 오디오를 직간접으로 체험해 보았다고 합니다. 크게 서구와 동구로 나뉘는데 서구 음향은 고객 취향에 맞추다 보니 아름답고 울림을 크게 한 반면 동구 음향은 과장이 없고 가식도 없고 양념도 없고 색깔도 없다고 합니다. 곰삭은 소리고 옛날 소리라고 합니다.

실제 소리고 담백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서구 음향 도구들이 화려한 디지털을 추구한다면 동구 음향 도구는 아날로그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자신은 있는 그대로의 소리, 연주 현장에서 들리는 그 입체 음향과 동일한 소리를 찾아 헤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10년 전 드디어 그 소리를 찾았고 그 후 다른 음향기기로 바꾼 적이 없다고 합니다. 턴테이블과 진공관 엠프, 스피커 등 모두 몇 년씩 저축해 구입한 고가 음향기기들이지만 후회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공부도 많이 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라는 말까지 들으니 그만하면 된 것이라고 만족해 합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그분께 계획을 들어 보았습니다. 소박한 대답을 듣게 되어 내 마음마저 흐뭇합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이 완전 정리되면 동네 나이든 분들 모셔다 국악 같은 음악도 들려 드리고 영화도 보여 주는 게 지금의 내 계획이지."

베토벤 교향곡 3번을 들으며 그 분과 한 대화는 줄곧 부모님과 부모님 또래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초점이 가 있어 필자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대화가 마무리 되면서 부모님이 부산서 오신다기에 같이 불국사역으로 마중나갔습니다. 오는 시각이 우리가 떠날 시각이랑 맞아 떨어져서 그렇게 했는데 불국사역에 도착하여 잠시 기다리니 80세 넘은 인자한 모습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가왔습니다.

그 분은 우릴 소개하고 우린 인사를 했습니다. 오시는 부모님은 아들이 지어준 멋진 전원주택으로 향하고 우리는 울산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행복한 표정으로 차에 오르는 부모와 자식의 그 따뜻한 모습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국내 것도 있지만 국외 것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귀한 판도 있다네요. 도대체 몇 장이나 될까요?
▲ 수집한 엘피판 국내 것도 있지만 국외 것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귀한 판도 있다네요. 도대체 몇 장이나 될까요?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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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디오전문가, #고전음악,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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