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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노조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출근을 시도한 구본홍 YTN 사장을 가로막고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YTN 노조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출근을 시도한 구본홍 YTN 사장을 가로막고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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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물리력 대신 '세치 혀'로 구본홍 사장의 출근을 저지했다. 29일 아침 9시 8분, 구 사장을 태운 차량이 YTN 사옥 앞에 섰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이전과 달리 '마중' 나오지 않았다. 피켓을 들고 구 사장을 에워싸는 대신 함성과 야유를 섞어 구 사장을 맞이했다. "오늘은 몸으로 저지하지 않고 구 사장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겠다"며 '토론투쟁'을 벌인 것이다.

한 조합 관계자는 "그동안 구씨나 김사모 총무국장 등이 조합원들에게 '한번 얘기를 들어보라'고 했는데 오늘 그 논리를 한번 들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구 사장에게 "우리를 설득하든지, 아니면 밟고 (사장실로) 올라가라"고 외쳤다.

구 사장이 차에서 내려 조합원들 앞에 섰다. 늘 마찬가지로 김사모 총무국장, 류희림 대외협력국장 등이 구 사장 옆에 나란히 섰다. 이때부터 마이크가 오가는 '50분 토론'이 시작됐다. 조합원들 80여 명이 이 장면을 지켜봤다. 한 조합원이 깔개를 마련해줬으나 구 사장은 줄곧 서서 토론에 응했다.

먼저 가장 원론적이 질문이 나왔다.

출근을 시도한 구본홍 YTN 사장이 2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YTN 노조원들에게 가로막혀 자진 사퇴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출근을 시도한 구본홍 YTN 사장이 2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YTN 노조원들에게 가로막혀 자진 사퇴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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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후보 특보로서 그쪽을 지지하고 홍보했던 사람으로, 그 이력으로 24시간 뉴스채널 사장으로 오는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저항을 생각하지 않았나?

"우선 이렇게 추운 아침에 여러분들 (집회) 나오게 한데 대해 책임을 느낀다. 방송을 이끌려면 전문성과 경험이 있어야 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시 사장추천위원회가 구성됐고 내가 공모했다. 정정당당한 절차 거쳤다. 충분한 면접을 통해 내가 선임된 것이다. 여러분이 걱정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면 선임되지 않았을 것이다."

"형식적인 답변 하지 말라"는 조합원들의 고함이 나오자 구 사장은 "(특보) 이력만 갖고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다. 30년 기자생활 했고 전문직에 종사했다"고 대답했다.

- 취임 100일 됐는데 사장으로서 뭔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나?
"7월 주총 이후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저지를 했고, 물론 대화도 했다. 직접적 대화, 간접적 대화...그런데 이게 어그러졌다. 최후까지 대화했다. 사장 취임하면 경영 전념하겠다고 했었다. 이런 대치 과정에서 8,9월 광고가 하한기였다. 4분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광고주, CEO, 사장단, 광고주협회 사람들 만났다. 도와달라고 했다. YTN 반드시 화합할 것이니 광고 달라고 했다. 지금도 이런 노력 하고 있다."

- <돌발영상> 불방이 YTN 시장가치 떨어뜨렸다는 분석이 있다.
"<돌발영상>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없다. 면접때도 YTN은 젊고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얘기했고, <돌발영상>과 <별별뉴스>가 재밌다고도 말했다."

구 사장은 이따금씩 조합원들의 발언이 집단화되면 "이렇게 위압적으로 하면 얘기할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한 조합원은 "기자 생활 오래하신 분 답게 '야마'만 확실히 말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 구 사장의 2008 랜덱스 행사 생중계 때문에, 30분이었던 뉴스 시간이 50분으로 늘어났다. 사장 한 사람 때문에...이게 정상적인가?
"기획단계에서 얘길 들었는데 지난해 행사보다 키웠다고 하더라. 중계 전제로 한 사업이라고도 했고, 내가 간부회의때 '앞으로는 이 행사를 자제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조합원들과 구 사장의 설전이 뜨거워지던 무렵 왕선택 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10월 8일 보도국 항의방문 당시의 격정 토로가 오늘도 이어졌다. 왕 기자는 흥분하지 않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15년전 YTN은 이름밖에 없었습니다. 빈 공간에 책상, 의자 옮기면서 시작했죠. YTN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다녔습니다. 손바닥만한 구멍가게였어요. 그걸 이렇게 번듯한 20층 건물로 바꿔놨습니다. 이 후배들과 더불어 피흘리고 땀흘리고 눈물흘리면서, IMF때 6개월동안 월급 못받으면서 해낸 거에요. 그러려면 90%가 공정성, 신뢰성입니다. 구 사장 옆에 서있는 선배들, 000선배, 우리 같이 굶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YTN 안버리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구 사장님이 와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후배가 오순도순 지냈던 직장이 순식간에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눈을 부릅뜨는 직장이 됐어요. 저기 노종면이...목이 짤려서 피가 철철 나잖아요....,YTN 1등공신 노종면을 왜 자릅니까. 구 사장님 우리 불쌍한 식구들 생각해 주신다면 결단을 내려주세요."

왕 기자의 말을 듣고 있던 일부 여성 조합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퇴하세요'라고 거듭 소리질렀다.

왕 기자의 토로는 계속됐다.

"선배들! 우리 후배들이 싸가지 없게 한 것 있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러나, 좀 봐주세요. 같이 살아온 동지 아닙니까. 구 사장 오면 YTN 금방 KTV 돼요. 그러려고 고생했습니까. 우리들이요. 투쟁한 다음에 YTN 품질저하됐다고 욕먹을까봐 더 열심히 일합니다. YTN 노조요? 강성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좌편향? 아닙니다. 왕선택이 보증하면  다 보증하는 겁니다. 구 사장님 용단 내려주세요. 공정성 담보하겠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시청자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출근을 시도한 구본홍 YTN 사장이 2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YTN 노조원들에게 가로막혀 자진 사퇴 요구를 받자 곤혹스러원 표정을 짓고 있다.
 출근을 시도한 구본홍 YTN 사장이 2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YTN 노조원들에게 가로막혀 자진 사퇴 요구를 받자 곤혹스러원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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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기자가 말을 마치자 조합원들 사이에서 "대답을 해 달라" "사퇴해야 모두 산다"는 말이 나왔다.

한 조합원이 "구 사장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어렵게 일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구 사장은 "인감은 경영실장이 관리하고 사장이 직인을 찍게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그럼 사장 출장, 휴가때마다 월급이 안 나온다는 말이냐" "얼마든지 위임할 수 있지 않느냐" "다른 결재는 밖에서 잘만 하지 않느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지 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조합원 입에서는 "간부들과 호텔 다니면서 수 천만원씩 써도 되는 것이냐. YTN 형편과 사장이 쓰고 다닌 씀씀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는 등의 '과다지출' 비판이 쏟아졌다.

구 사장은 "정상적으로 회의할 수 있는 분위기면 안 그랬을 것"이라면서 "과다 지출 지적에는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조합원들의 질의와 항의가 빗발치자 아침 9시 55분 경 발길을 돌렸으며 일부 간부들이 구 사장을 큰 길까지 배웅했다. 구 사장의 뒤로 "월급갖고 장난치는 가정파괴범" "다시는 오지 마세요"는 조합원들의 외침 소리가 뒤따랐다.


태그:#YTN, #구본홍,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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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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