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 감귤원에는 더부살이 하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감나무와 앵두나무, 매실나무, 꽃사과 나무입니다. 이 나무들은 모두 식목일 날 감귤원에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감귤원 끄트머리 자투리땅에 심어진 나무들은 감귤나무보다도 더 기세가 등등하게 자랐습니다.
감귤농장 주인의 고민해마다 감귤 값 폭락으로 마음 아픈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더군요.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매실나무, 4월에 예쁜 꽃으로 주인장의 마음을 유혹하는 꽃사과나무, 가녀린 가지에 연분홍 꽃을 덕지덕지 피우는 앵두나무. 이 나무들은 어찌된 일인지 꽃만 피우지 열매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해마다 3월 감귤원 전지전장할 시기가 되면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매실나무 3그루에서는 3kg 정도의 매실이 열려 주인장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앵두나무에서도 달콤한 열매를 맺으니 감귤원에서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지요. 유실수로서 구실을 톡톡히 했습니다.
열매 없다고 애물단지 취급 그런데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꽃사과 나무는 4월 화려한 꽃으로 주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그 열매의 정체가 무엇인제 궁금하게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올해 3월 꽃사과나무 가지를 무참히 잘라내게 되었지요. 특히 감귤원 끄트머리에 심었기 때문에 나무 존재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오마이뉴스 이승숙 기자가 쓴 '저 앙증맞은 꽃사과로 무얼만든다고요?'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아, 참! 애물단지 꽃사과 나무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들었습니다. 따라서 휴일 감귤원 꽃사과 나무를 찾았지요.
그런데 아뿔싸! 꽃사과 나무 열매는 어두컴컴한 감귤원 모퉁이에서 짓무르고 있었습니다. 2- 3개가 무리를 이뤄 서로 이야기라도 나누듯 대롱대롱 달려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이 녀석들이 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뜨겁던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관심을 두지 못했었거든요.
주인맘도 모르고 열매를 맺다니그런데 이 녀석들! 주인장 마음도 모르고 감귤원 모퉁이 바람고지에서 홀로 꽃피우고 홀로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매는 너무 익어 짓무르고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썩 내려앉더군요. 더부살이 주제에 기세가 등등하다고 나무라지 말 것을, 꽃만 피고 열매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야단치지나 말 것을, 무참히 가지를 갈기갈기 잘라내지나 말 것을.
꽃사과 열매에서 교훈을 얻다휴일 오후, 감귤원 모퉁이 어스름한 공간에서 나는 꽃사과 나무로부터 인생을 배웠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인보다 나그네가 당당하면 못마땅해 하고, 짧은 시간 결과가 없으면 퇴출이 되고, 저마다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여 짓밟아 버리는 경향이 있지요. 꽃사과 나무는 내게 교훈을 주더군요. 우리의 인생도 향기와 열매가 아름다우면 언젠가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교훈 말입니다.
꽃사과 나무는 감귤나무와 매실나무 앵두나무 가지와 엉켜 열매를 맺었습니다. 나는 꽃사과 나무를 위협하는 매실나무의 가을 순을 잘라 주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워왔던 감귤나무 가지도 몇 가지를 잘라 주었지요. 그랬더니 그 녀석들 빨간 열매를 내보이며 자신의 몸통을 내 보입니다. 꼭 능금 같았습니다. 능금이 이만큼 빨갛던가요?
꽃사과, 다시 태어나는 날너무 작아 앙증맞은 꽃사과 열매를 수확했습니다. 그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가지를 뻗어 올린 가지는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에 매달린 열매와 꽃사과 열매로 화분을 만들었지요.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집 주방에는 가을이 넘실거립니다. 11월 1일, 드디어 애물단지 꽃사과 나무가 다시 태어나는 날이었습니다. 아마 내년 3월이 오면 꽃사과 나무는 감귤원의 주인공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