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아마도 '끝',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몇 년 동안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부터 새로운 학교, 친구, 선생님 등을 만난다는 설렘이 느껴지게 마련일 것.
그렇다면 졸업여행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홀로 6학년'들의 첫 만남
전국에서 모인 17명의 '나홀로 6학년' 학생들은 지난 4일부터 2박 3일 동안 서울과 강화도에서 '더불어 졸업여행'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나홀로 6학년'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농촌 지역의 초등학교에는 6학년이 자기 혼자뿐인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전국적으로 107명에 이르는 '나홀로 6학년' 학생들이 있는데, 이들이 초등학교의 마지막 여행을 외롭게 보내지 않도록 <오마이뉴스>가 '더불어 졸업여행'을 주선한 것이다.
새 친구들과 첫 만남은 따뜻한 햇살이 제법 쌀쌀한 바람을 감싸주던 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이뤄졌다. 여행을 하기에는 '딱'인 가을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울 덕수궁 정문 앞은 가을 소풍을 온 유치원생들로 붐볐다.
그 사이로 큰 가방을 메고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 아이들. '나홀로 6학년'들 중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인 신안에서 온 아현이, 경남 통영에서 온 해원이, 할아버지와 함께 충북 충주에서 온 미연이. 서먹하기만 한 지 내내 선생님과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17명의 '나홀로 6학년'들이 다 모였을 때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색한 분위기가 여전했다. 어색한 분위기 사이로 조별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서울에서 첫 구경을 시작했다.
덕수궁 내부를 둘러보고 난 후에는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MBC로 이동해서 스튜디오를 견학했다. 어색해서 그런 건지, 재미가 없는 건지 아이들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어색함은 조금씩 무너지고... "우리 동네에 수달 많아"
그 다음 이동한 63빌딩은 아이들에게 어떠했을까. 수족관 구경 중 '물개 쇼'를 관람하게 됐는데, 아현이는 디지털카메라로 직접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재미있어?"라는 물음에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영상을 찍는 아현이의 모습은 흥미로워 보였다. 또 경북 울진에서 온 성훈이는 수달을 보자 "우리 동네에는 수달이 '짱' 많다"며 다른 아이들에게 수달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다.
63빌딩 구경이 끝나고는 여의도에서 양화로 이어지는 1시간 코스의 유람선을 타고 서울 일대의 야경을 관람했다. 해가 지고 난 후라 바람이 꽤 쌀쌀했지만, 아이들은 한사코 밖에 있겠다며 선실 안에는 잘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서로 어색하지만 그래도 혼자서는 들어가기 싫었던 모양이다.
함께 통기타 공연을 볼 때, 강원도 영월에서 온 새별이는 공연 초반에 "다 모르는 노래예요"라며 관심 없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노래 '사랑이 올까요'가 나오자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숙소로 이동할 때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방을 같이 쓰냐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첫인상이 별로예요", "말을 못 걸겠어요"라고 말하며 이내 그 말뜻이 표정에도 나타났다.
그러나 '잘 어울리지 못할 것 같다'는 예상을 깨고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7명의 남자 아이들은 베개 싸움으로, 10명의 여자 아이들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른 채 수다로 우정을 쌓아갔다.
"엄마, 나 조개껍데기 주웠어"
이튿날인 5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이동하는 버스 안, 이제 좀 친해졌는지 아이들은 제각각 마음이 맞는 친구와 앉았다. 아이들은 피곤하지도 않은 듯 선생님들을 붙잡고 게임하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암동 도착.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은 "건물이 몇 층이에요?", "저게 엘리베이터에요?", "목 아프다"라며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들의 질문 공세는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도 계속됐다. 그저 신기한 눈빛으로 여기저기 구경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오마이뉴스> 사무실 견학 후,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한국영화박물관으로 이동해 관람하고 갯벌 체험을 위해 강화도로 이동했다.
갯벌을 본 아현이는 "추포에 있는 갯벌보다 여기가 더 좋은 것 같다"며 "추포에서는 낙지도 잡는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에서 온 정욱이는 갯벌에서 조개껍데기를 하나 줍고 엄마에게 "엄마, 나 조개껍데기 주웠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조개껍데기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갯벌에 들어가지 않던 성훈이도, 전북 완주에서 온 소현이도 너나 할 것 없이 갯벌로 들어가 게를 한 마리씩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집으로 돌려 보내줘야 된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아이들은 아쉬움을 내비치며 갯벌 위로 손을 폈다.
노래할 고민에 빠진 민교 "죽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화도에 위치한 '오마이스쿨'로 이동했다. 오마이스쿨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저녁에 있을 장기자랑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노래는 무엇으로 할 지, 춤을 춰야 할 지, 인원은 어떻게 나눠야 할 지 등 아이들은 장기자랑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장기자랑 시간이 다가오고, 노래를 연습하던 소현이와 지영이의 목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장기자랑에 참가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장기자랑의 첫 순서로 해원이가 피아노를 쳤고 그 다음으로 성훈이, 경북 봉화에서 온 용준이, 강원도 정선에서 온 기훈이가 '달인'이라는 개그를 선보였다. 장기자랑 시작 전까지 맹연습을 했던 소현이와 지영이는 노래 '사랑과 전쟁'을 불렀고, 가수가 꿈이라는 두 소녀 미연이와 새별이는 노래 '만약에'를 열창했다.
또 아현이, 새별이, 미연이는 노래 '오빠 나빠'를 불렀고 전북 완주에서 온 지은이는 노래 '투명인간'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장기자랑의 마지막 순서로 정욱이가 태권체조를 선보였다.
장기자랑 심사를 할 동안 강원도 정선에서 온 민교의 노래를 청해 듣기도 했다. 무대로 나올 때까지 머뭇거렸던 민교는 "오우, 죽겠다"며 노래 '숲 속을 걸어요'를 불렀다. 완창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던 민교의 모습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들... "연락처 알려줘"
장기자랑 시간을 마치고 운동장으로 이동해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폭죽에 불이 붙을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폭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몇 개의 폭죽이 불발되자 아이들은 "에이, 뭐야"라고 아쉬워했지만, 모아놓은 나무에 불을 붙이자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모닥불을 중심으로 원을 만들고 서로 손잡고 섰다. 동요 '둥글게'를 부르면서 게임을 진행했는데, 전날의 어색함은 어디 갔는지 이제 손을 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말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조용했던 전남 화순에서 온 선희는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놀아본 적이 없다"면서 "많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게 돼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용준이는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나홀로 졸업하는 일이 없지 않느냐"며 "기회가 되면 지금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아이들의 연락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어 선희의 선생님인 정선희 교사는 "지금까지 제일 좋았던 점은 소중한 우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나홀로 졸업여행'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두고두고 남아, 인생에서 값진 체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캠프파이어까지 마치고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은지 숙소 곳곳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베개 싸움, 술래잡기 등 자신들이 어울려 놀 수 있는 방법으로 지칠 때까지 잠이 올 때까지 놀 작정이었다. 밤은 깊어만 가는데 복도 밖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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