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난 뒤 날이 꽤 쌀쌀해졌습니다. 다행히 우리집은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가을걷이를 모두 끝내고, 올해 거둬들인 벼가마도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어왔습니다.
벼뿐만 아니라 여름내 정성스레 돌본 빨갛게 익은 고추도 모두 따서 말려놓고, 쭉쭉 파란하늘로 치솟은 수수대도 잘라 알맹이를 털어내 동생 차로 저 멀리 강화도까지 가서 찧어오기도 했습니다. 머리통보다 훨씬 큰 노랗게 잘 익은 호박도 따놓고, 길쭉한 콩깍지에 알알이 여문 갖가지 콩들도 부모님께서 일일이 따서는 잘 말려 종류별로 까서는 소쿠리에 담아 놓았습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들깨도 타작해 검불을 선풍기로 날리고, 볕이 잘드는 옥상에 널어두었습니다. 검은 이빨을 드러낸 옥수수도 볕에 말려 알을 털어내서는 강냉이로 튀겨놓았습니다. 어린 조카나 온가족이 겨우내 주전부리 삼게 말입니다. 밭에는 아직 김장용 배추와 무, 파가 남아있지만, 조만간 김장을 한다하니 모두 뽑아 집으로 가져올 것입니다.
이렇듯 겨울 문턱에 접어든 요즘 옥상부터 3층, 2층 집안 곳곳이 부모님이 한해동안 땀흘려 키우고 수확한 농작물들로 가득합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과도 같습니다. 붉은빛이 도는 루비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콩알 하나하나도 소중하기 그지없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없는 땅과 하늘 그리고 부모님의 땀이 어울려 맺힌 보석과도 같은 낟알 하나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씨앗속에는 우리의 생명을 이어줄 또다른 생명과 작은 우주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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