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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불순에, 두통에, 불면증까지

 

수능을 앞두고 고3 아이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남학생 한 명이 찾아와 수능을 앞두고 3일을 못 잤는데, 보건실에서 수면제를 받을 수 있느냐며 찾아왔다.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보건실에서는 수면제를 처방할 수 없다. 병원 방문을 권유하면서, 잠을 잘 잘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한 여학생은 갑자기 생리통이 심해졌다며 허리를 제대로 못 편다. 원래 생리통이 심하지 않았는데, 시험을 생각하니, 긴장감 때문에 더 아파진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일회용 핫팩과 진통제를 주면서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싱겁게 먹는 것도 생리통 경감에 효과가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변비와 설사로 고생인 아이들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감기, 두통, 소화불량,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안쓰럽다. 두려움과 불안, 긴장감은 여러 증상들을 품어올린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쓰나미가 휩쓸고 간 것처럼 이 증상들은 학생들에 따라서 경감되거나 증폭된다. 수능을 경험하고 난 후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부쩍 자랐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시험을 치르고 난 후 수능이 생각만큼 별 것 아니구나, 대범해지는 아이들이 있다. 수능 전에는 자신의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진로를 생각하던 아이들이, 실제로 변하기도 한다. 아이들 말로 거들떠보지 않던 대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생각보다 갈 수 있는 대학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게 아이들의 설명이다.

 

반대로 수능 이후 불안감이 극도로 심해지는 아이들도 있다. 수능에서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했다는 자책감은 때로는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몰고 간다.

  

자살 소식에 두려움에 떨고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 보는 수험생들. "얘들아, 너희들의 미래는 너희가 결정하렴"
수능 시험장에서 시험 보는 수험생들. "얘들아, 너희들의 미래는 너희가 결정하렴" ⓒ 권우성

학교에 발령받은 첫 해, 수능 고득점 학생의 자살 소식이 주요 뉴스를 장식했다. 내심 고 3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수능을 보고 혹여나 못된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 싶어,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에게 꼭 수능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강조해야겠다, 결연한 다짐을 했다.

 

"얘들아, 혹여 수능 결과 나오고 너무 절망하면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너희 존재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 잊어서는 안 돼."

 

잘 알지도 못하는 온갖 철학과 교양을 끌어다가 생명의 소중함을 설파를 했는데, 아이들 답변이 걸작이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공부 잘하는 애들이야 자존심에라도 더 좋은 대학가야한다고 발버둥이지만, 공부 못하는 저희는 상관없어요. 위를 바라보면 아찔하지만요, 아래를 바라보면 편안해져요. 저희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전국에 천지인데, 무슨 걱정이에요." 

 

나는 아이들의 그 명랑함에 반해 버렸다. 스물도 안 된 아이들이 관조하는 세상이란, 내가 받아들이는 세상의 영역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왜 옆에서 자꾸만 대신 결정해줍니까?"

 

상담 연수에서 교육학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선생님, 자신들이 공부 잘 했다고, '이것도 못해?'라고 아이들 너무 기죽이지 마세요. 꼴찌도 선생님이 되어야 아이들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혹여 아이들이 수능 시험 망치고, 울상이다가,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하면, 아이들 말 무시하지 마시고, 에그, 점수 맞춰 그냥 대강 지원해라, 그러지 마시고, 드디어 우리 학교에, 우리 가정에 큰 인물이 났다고 격려해주세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조금만 해보다가 안 되면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쉽게 중단하는데, 끝까지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게 어디에요? 또 자기가 점수 맞춰 대학 지원하겠다고 하면, 그 결정을 존중해주세요.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왜 옆에서 자꾸만 대신 결정해줍니까? 그냥 놔두세요. 아이들은 참 똑똑합니다. 실패도 해보고, 좌절도 해보고, 현실과 타협도 해보고, 뛰어넘기도 해 봐야 성장하는 것 아닙니까?"

 

대수능, 대한민국 국가 공인 성장통의 날!  아이들이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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