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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심산/풀빛)

 

"산은 하나의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져 독립된 신비의 왕국인 것이다. 이 왕국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모두가 발 아래 있다!“

 

위의 글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외쳤던 고상돈의 목소리이다.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는 산이 만든 책, 책 속에 펼쳐진 산 이야기이다. 저자는 ‘산에만 오르고 산서를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의 산행’이라고 말한다. 또 ‘산서에만 매달릴 뿐, 산 근처에는 얼씬도 않는다면 그것 역시 어슬픈 남독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산서는 무엇보다도 등반행위를 주제로 삼고 있는데 그것은 곧 산과 인간이 빚어내는 격렬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산악문학의 보급과 정착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김영도 선생은 ‘만일 산서가 산만을 묘사한다면 산서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를 읽으면서 산악문학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의 눈을 떴다고 할 수 있을까. 산악문학이 더러 많다는 것은 그가 읽고 소개하는 책들을 접하면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심산이 소개하는 산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국내산이 아니라 인간 한계를 초월하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에 대한 산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 산들을 오르고 올랐던 산사람들의 경험적 체험이 녹아 있는 논픽션 혹은 픽션들이다. 그리고 인간한계에 도전한 산사람들의 도전기이다. 존 로스켈 리가 쓴 논픽션 <난다데비>에서부터 시작해서 쿠쿠츠카의 ‘14번째 하늘에서’에 이르기까지 총 24편의 산서를 저자 특유의 감각과 개성적 글쓰기로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변적인 말장난으로 가득 찬 시에 식상한 당신에게 산서를 권한다. 하잘 것 없는 신변잡기에 불과한 소설 읽기에 넌덜머리가 난 당신에게 산서를 권한다. 하늘의 별을 보다가 발  밑의 하수구를 놓치기 일쑤인 철학서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당신에게 산서를 권한다. 보다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온갖 처세술 나부랭이에 치인 당신에게 산서를 권한다. 여기 극한 상황에서 마주친 인간의 실존이 있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산에 관련된 책에 관심을 갖게 되어 가끔 나도 산에 관련된 책들을 접한다. 하지만 대부분 산행기이거나 여행기 등인데, 심산이 소개하는 책들은 일찍이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고 읽지 않았던 책이 대부분 담겨 있다. 이번 기회에 산악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난다데비>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등반가 윌리 언솔드라는 사람이 에베레스트 등반을 마치고 인도 북부지역을 트레킹 하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 할 만큼 아름다운 만년설의 봉우리를 발견했는데 그 봉우리 이름이 ‘난다데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딸을 낳으면 이름을 난다데비라고 지으리라 생각했던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고, 딸의 이름을 난다데비라고 지었다. 자신의 신비스러운 이름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라난 딸 난다데비는 26살 생일을 맞은 기념으로 원정대를 꾸려 난다데비에 올랐다.

 

신비스러운 산 난다데비 등반에 그녀는 성공했지만 조난을 당했고, 자신의 이름과 똑 같은 봉우리 난다데비에서 눈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행복하게 죽어갔다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어서 라인홀트 메스너의 <죽음의 지대>, 이노우에 야스시의 <빙벽>, 앨버트 머메리의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장호 산시집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 김장호의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가스통 레뷔파의 <별빛과 폭풍설> 등 픽션과 논픽션이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그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을 마음을 매료시킨다.

 

“자기 인생이 ‘무’라는 것을 안 자만이 자기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다. 일단 죽음의 지대에 들어서면 의미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 사람은 불안에서 해방되고 시간적 공간적 무한 속에서 자기를 해소시키게 된다. 이러한 체험을 겪고 나면 사람은 자기가 새로 태어난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이 상태는-다시 산기슭에 내려오게 되므로-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라인홀트 메스터, <죽음의 지대>중-

 

이 책에서 소개되는 책 속의 산악인들은 대부분 생과 사의 극한 상황까지 가 본 자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닿아 본 자들의 투쟁기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복을 위한 등반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등반’, 위에 오르는 산행이기보다는 ‘내면 밑으로 파고드는 산행’을 추구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를 읽다보니 문득 산에 가고 싶어졌다. 며칠 만에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급하게 달려가는 차량들과 소음, 소음들이 어지러이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들처럼 어수선했다. 복잡한 도심 한 복판을 지나면서 멀리, 그러나 우뚝 솟아있는 맑은 날의 가을 산을 까치발을 하고서 올려다보며 ‘산에 가고 싶어라~’고 혼잣말을 했다. 날씨는 또 어찌나 맑고 푸른지, 얼른얼른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멀리 물러난 듯하지만 그 자리에 언제나 있는 산은 이젠 단풍도 절정을 넘어 점점 갈색으로 변해 가고 있는 듯 했다.

 

‘땀으로 미역감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잊어버릴 일

미지에서 나를 찾되

더러는 자신이 인간인지조차 잊어버릴 일

무엇보다 자신을 알 일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 일

한치 실수도 용서아니함

따지어 나가되 산은 늘

네 생각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 일

뜻밖의 함정 뜻밖의 헛디딤을

뜻밖의 기쁨으로 바꾸어 낼 일

아픔을 이겨 허물을 벗되

인간을 벗고

인간에 날 일‘

-김장호, 시 ‘등산학’-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글 최성현, 그림 이우만/도솔)

 

‘나무들은

난 그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 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정현종 시, ’나무에 깃들여‘

 

위에서 소개한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와 조금 다른 산 이야기가 있다.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는 이 저자 최성현 즉, ‘바보 이반’은 깊은 산속 외딴집에 잠시 살았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산 지 십년이 껑충 넘었고 그 세월을 살면서 그와 나무와 풀과 곤충과 야생동물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친화적 삶의 이야기이다. 전화도 없고 전기도 없는 산에 사는 목숨붙이들처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태양광 전기 시설로 노트북을 쓰고, 핸드폰 밧데리 충전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행복해 하는 산 사람이다.

 

텔레비전이 없어 하늘에 뜨는 별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친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들려주는 나무와 풀과 새와 곤충과 꽃들과 야생동물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는 그의 이야기는 친근하고 따뜻하다. 그가 산속 외딴집에 깃들어 살면서 산에 사는 목숨붙이들 이야기를 산문형식으로 펴낸 책이 바로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이다. 크고 높은 먼 산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고 언제라도 쉽게 갈 수 있는 산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하루 이틀이라도 산에 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산에 가 봐야 뭐 볼게 있냐고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열고 보면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가 우주의 진리를 들려주기 시작한다고 그는 말한다. 자연주의자 바보 이반이 들려주는 우리들의 산 이야기, 그 산에 잇대어 살아가는 수많은 나무들과 풀, 벌레와 야생동물 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비쳐 볼 수 있고 또 대화도 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우리가 너그러워지고 건강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피터 톰킨스는 ‘식물의 정신 생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한 지혜란 인간의 지성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라, 생명과 자연의 단순한 진리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풀밭에 조용히 앉아 있어보라. 그러면 곧 식물들이 어떻게 행성들의 움직임에 조응하는지, 즉, 어떻게 달이나 태양의 움직임, 심지어는 더 멀리 있는 별들에게까지 반응하며 꽃을 피우는지 알 수 있다.”

 

바보 이반은 그가 산속 생활에서 얻어낸,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귀 기울이지 않아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는 우리들에게 자연과 친화하는 법, 그가 관찰하고 알아낸 방법으로 우리가 잘 모르는 나물들과 꽃과 새와 곤충들을 자세하게 설명도 해 준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고나면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를 무심히 보지 못할 것이다. 더 가깝고 더 친근한 마음의 눈으로 볼 눈이 열릴 수 있기를! 숲에 가기 전에 꼭 보고 가면 좋을 책이다.


마운틴 오디세이 : 심산의 산악문학 탐사기

심산 지음, 바다출판사(2018)


#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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