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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꽃이 예뻤네

저 꽃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네

 

시들시들해지기 전에

떨어져 죽어 없어지기 전에

 

저 꽃을 내 눈 안에 넣어

내일 만날 그녀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네

 

-박연복, '아침에 핀 진달래' 모두

 

초겨울, 뇌성마비 시인들이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에게 시를 읊어주고, 음악을 선물하며 다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일반인들이 많이 참석해 자신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예쁜 시집까지 선물로 준비해 놓고 말이다.

 

뇌성마비 시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이 마산의 이선관(64, 1942~2005)이다. 사실, 이선관 시인은 태어날 때는 멀쩡했다. 하지만 한 살 때 백일해 약을 잘못 먹어 뇌성마비 2급 장애를 평생 동안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선생은 시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장애를 사회의 장애로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뛰어난 민족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발가락으로 좌판을 두드려 시를 쓰고 있는 뇌성마비 1급 시인 박연복(35)은 태어날 때부터 강직성 사지마비 때문에 온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열 살 때까지 부모가 똥오줌은 물론 밥까지 떠먹여 주어야 했다. 그 뒤 부모의 이혼으로 고아원에 버려지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그는 이를 악물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 결과 마침내 스스로 힘으로 주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발가락 한두 개를 열심히 꼼지락거려 컴퓨터 좌판을 두드리며 시까지 쓸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그는 1997년, 첫 시집 <새들처럼>을 펴냈고, 7년만인 2004년에는 두 번째 시집 <아침에 본 진달래>까지 펴내며, 당당한 시인으로 자리잡았다.

 

중증 장애시인 최종진(50)은 김해군의료보험조합에서 일하다 1989년 1월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을 하던 도중 덤프트럭과 충돌해 '경수손상'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는 그때부터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 책읽기와 명상으로 지내다가 노모의 도움으로 시를 쓰기 시작해 1993년부터 소식지 <징검다리>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했다.

 

30년 숙원사업 뇌성마비복지회관 개관 첫 행사 

 

 

"이번 행사는 뇌성마비 시인들이 비장애 시인들과 함께 더불어 시를 낭송하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뇌성마비 시인들에게 창작의욕을 드높이고 뇌성마비 시인을 발굴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더불어 비장애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활동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뇌성마비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합니다."

 

지난 13일(목) 뇌성마비복지회가 30년 숙원사업으로 마련한 뇌성마비복지회관이 문을 열게 되면서 뇌성마비 시인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뇌성마비복지회관을 주춧돌로 삼아 여러 가지 문학예술행사를 기획하고,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에게 직접 선보이면서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시와 음악이 있는 우리들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27일(목)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까지 뇌성마비복지회관 강당에서 열리는 '제7회 뇌성마비 시인들의 시낭송회'가 그것. 뇌성마비복지회관 개관 첫 행사이기도 한 이날 시낭송회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주최하고 서울강서문인협회가 주관한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기획홍보팀 최명숙씨는 "이날 참여하는 뇌성마비 시인들은 지난 8월 뇌성마비시인 선정위원회에서 작품을 공모해 문학평론가 장영우 교수(동국대 문예창작과)와 조병무 교수(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의 심사로 선정된 6명이라며 "초대시인은 서울강서문인협회 김정호 회장 등 4명"이라고 말했다.

 

뇌성마비 시인들이 펼치는 초겨울 시 잔치 한마당

 

뇌성마비인과 가족, 지역주민 등 약 150여 명이 참석하는 이번 행사에는 초대시인 4명과 뇌성마비 시인 6명을 합쳐 모두 10명의 낭송자가 나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속에 자작시를 읊는다. 뇌성마비 시인은 김소영, 남경우, 박근영, 신용민, 설미희, 정상석이며, 초대 시인은 김소엽, 조병무, 강서문인협회 김정호 회장, 강병수 수석부회장.

 

박재희(KBS 라디오 리포터) 사회, 장영우(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심사로 열리는 이번 시낭송회에는 김경민(뇌성마비피아니스트), 나눔클라리넷앙상블, 강성세(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이수자), 구기성(섹소폰), 라파엘 몰리나(라틴음악과 안데스전통음악 싱어)가  시낭송 연주자로 참가한다.

 

이날 춘천에서 참여하는 정상석 시인은 KBS 제3라디오 사랑의 소리방송 '내일을 위하여'란 프로그램 로고송을 작사했으며, 제2회 춘천시장애인문학상 수기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부산에서 참여하는 신용민 시인은 제7회 곰두리 문학상 동화 부문 당선, 제9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 소설 부문, 제14회 가톨릭 문학상 동화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아들과 단 둘이 살면서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문창과를 수료한 설미희 시인은 <뿌리>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특히 이날 출연하는 안데스 전통음악 싱어 라파엘 몰리나는 페루의 음악인으로 KBS 인간극장에 출연할 만큼 널리 알려진 음악인이다.

 

뇌성마비 시인들과 뇌성마비 음악인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초겨울 시와 음악이 흐르는 아름다운 잔치 한마당. 초겨울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를 향해 갸날프게 지피는 사랑의 불씨에 또 하나의 믿음의 불씨를 보태며, 이들이 내미는 예쁜 시집 한 권에 은행잎 책갈피 끼워가며 차분하게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뇌성마비 시인들#시낭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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