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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대학생이 된 제자

 

최루탄 독성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몸을 정말 검사하면 최루탄 잔류 독성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학 4년 8학기 다니는 동안 마지막 학기를 제외하고는 개강에서 종강까지 순조롭게 보낸 적이 없었다. 어느 학기는 거의 대부분 휴업으로 보냈을 만큼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덕분에 최루탄 가스를 지독하게 맛보았다.

 

33년 교단생활 가운데 28년을 근무한 마지막 학교(이대부고)는 대학 구내에 있는데다가 바로 이웃에 80~90년대 학생 시위의 메카라고 할 연세대학교가 있었기에 걸핏하면 최루탄 가스가 날아와서 무던히도 마셨다. 고등학생들은 3년, 대학생들은 4~6년 마시면 되었지만 교사들은 수십 년을 꼼짝없이 마셔야 했다.

 

1980년대 어느 하루, 한 동료 선생님이 졸업생 구 아무개양이 이대 대강당 계단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하여 많은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그 며칠 후 퇴근길에 보니까 정말 그 제자가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학생들 앞에서 팔을 휘두르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는 고교 재학시절 대단히 예의 바르며 겸손하고, 매우 순종적인 학생으로 모든 선생님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런 학생이 대학 입학 후 시위 주도 학생이 되었다는데 모두 놀란 것이었다. 비단 그 학생만이 아니다. 그 시절 대학생을 둔 집집마다 부자, 혹은 부녀, 모자 혹은 모녀간 시위참여 문제로 많은 갈등이 일어났다.

 

누가 순한 양들을 '투사'로, '운동권 학생'으로 만들었을까? 그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눠보면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내용과 현실사회가 너무 달랐다고 했다. 일례로 '민주 정의로운 사회'를 표방한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과연 '민주 정의 정당'인가라고 되물을 때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요즘 '한나라당'이 당명에 맞는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이 정부는 당명에 걸맞은 길로 가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한나라 당원들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으며, 질문자는 이내 수긍할 수 있겠는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한 아버지

 

천금 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한 아버지(박정기)와 대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 아들(박종철) 때문에 아버지의 인생길이 바뀐 셈입니다. 아들을 원망해 보지 않았습니까?

"대학 입학 후 경찰서에 드나든다는 걸 알고서는 그 당시 대학생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통과의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실 나는 지방 공무원이었고, 정치에는 별로 관심도 없이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내 소원이 퇴직 후 목욕탕 주인으로 손자들 재롱 속에 내 인생을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을 잃고 내 눈이 떠졌습니다. 종철이가 죽고 난 뒤 곧 정년 퇴임하게 되었고, 그 후 유가협에 참석하게 됐지요. 여기 와서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까 내 아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치지 않고 사실을 왜곡해 가르치면 순한 양들이 뒤늦게 속은 줄 알고서 투사로 변하기 마련이다.

 

얼치기 '현대사 전문작가'

 

나는 역사 전공이 아니지만 10여 년 전부터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역사 현장에 답사도 다니면서 관련 인사들을 만나다 보니 잡지사 기자가 '현대사 전문작가' '항일 전문작가' 라는 분외의 호칭을 달아주기도 하였다.

 

지난해는 한 출판사에서 정부수립 60주년을 앞두고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진으로 보는 현대사'를 엮어보자고 나에게 제의하면서 현대사 부분을 쉽고 간략하게 써 달라는 부탁과 함께 참고도서를 세 박스나 싣고 와 내 산골 글방에 쏟아놓고 갔다.

 

다행히 나는 해방둥이로 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대부분이 내가 살아온 때의 일들이라 지난 1년 동안 산골 글방에 묻혀 현대사 공부를 하면서 집필을 마쳤다.

 

참고도서에 내가 <오마이뉴스> 여러 누리꾼의 힘을 입어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가서 애써 수집해 와 엮은 <지울 수 없는 이미지>, 그리고 우당기념관 사진들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에 실린 사진들이 참고자료로 많이 인용된 것을 보고 뿌듯함도 느꼈다.

 

이번에 교과부가 해당 출판사에 수정 권고한 부분을 찾아 읽어보았으나 내가 공부한 자료나 사실이 교과서에서 틀리게 기술한 내용이 거의 없었다. 또한 집필을 맡은 학자들이 학자의 양심과 사관으로서의 소명감을 가지고 충실하게 기술한 노력들이 행간 곳곳에 엿보였다. 한 예로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였다는 부분을 인용해 보겠다.

 

"역사는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뽑는 선거가 실시되었다. 자유당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대적인 부정 선거를 자행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는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선거 당일 오후 이미 마산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약 한 달 후 실종되었던 한 고등학생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시위를 하던 학생이 최루탄에 맞고 사망하자, 몰래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분노한 마산의 학생과 시민들은 다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마산 시위의 배후에 공산 분자가 있다고 몰아세웠으나, 오히려 시위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는 점점 거세져 4월 19일에는 절정에 달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폭력배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습격하거나 총까지 발사하여 시위를 해산시키려고 하였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폭도 넓어졌다. 심지어 계엄군까지도 시위대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당황한 이승만은 부정 선거를 인정하여 선거를 다시 실시하고, 자유당과 관계를 끊겠다는 수습책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국민은 이제 부정 선거 무효뿐만 아니라 이승만의 퇴진 자체를 요구하였다. 자신을 지원하던 미국까지도 등을 돌리자,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내놓고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278쪽

 

위의 기술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어야 한다. 왜곡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사실 대로 가르쳐서 옳고 바른 것과 틀리거나 잘못된 것은 그들 스스로 판단해서 취사선택하도록 지도하는게 바른 교육이다. 우리는 지난날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규탄하면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정권의 입맛대로 수정하려고 하는가.

 

조선왕조가 519년이나 이어온 것은 선비들의 언로를 막지 않았고, 사관들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작금 일어나는 교과부의 교과서 수정 권고를 보면서 이는 역사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우매한 일로, 우리 사회에 또 다시 투사나 운동권 학생을 양산하게 하는 작태 같아 산골 서생이 하도 답답하여 붓을 들었다.

 

이 정부는 인재가 그렇게도 없는지, 얼마 전 교과부 장관을 일제 순사 아들로 임명하더니 마침내 왕조시대에도 감히 하지 않았던 역사에까지 기어이 욕을 보이고 있다. 마무리 말로 두 마디만 붙인다.

 

"역사는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 제발 좀 국토도 역사도 내버려 둬라."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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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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