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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동교동자택을 방문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동교동자택을 방문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진보정치 정택용

DJ가 야당과 시민단체로 구성되는 '민주대연합'을 제안하고 나서자 진보개혁진영이 술렁이고 있다. 오랜만에 활발한 논쟁이 벌어져 반가우면서도 혹시 통합을 위한 제안이 또 다른 분열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민주대연합'에 찬성하는 주장과 반대하는 주장 모두 수긍이 가는 논리이다. 찬성하는 측은 현 상황이 매우 심각하니 상대적으로 작은 차이를 인정한 채 각 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논리이고, 반대하는 측은 민생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대안 없이 '반MB'나 통일문제만으로 하나로 뭉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논리가 서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 측의 논리대로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에 동의하는 세력이 연합하는 순서를 밟으면 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대안의 수위이다. 만약, 대안이 지나치게 원리적이고 지나치게 세밀할 경우에는 대안에 동의하는 세력 자체가 하나의 분파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철저하게 국민의 시각에서 지금의 상황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진보진영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왼쪽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의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모두 신자유주의자들이니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민주당과 연합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과 손을 잡는다는 것이니 별로 내키지 않을 것이다.

 

'종부세 되살리기' 연합체 구성은 어떨까?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향한다는 점에는 나 역시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집권 때 종부세를 만들어냈다. 이제 종부세가 거의 무력화됨으로 인해 내년도에 지자체가 재량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에 큰 제약이 생기고 이로 인한 피해는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역일수록 클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의 복지재정 축소는 취약계층의 삶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종부세 무력화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되는 2009년도에 '종부세 되살리기'를 목표로 하는 연합체가 구성된다면 국민들의 눈에는 '반신자유주의 전선'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예산 구조에서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차이가 있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에는 현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설보다 복지 쪽에 무게를 두었다(그렇다고 지난 10년 간의 재정지출 정책이 만족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대운하 같은 헛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운하를 막고, 건설 예산을 복지 쪽으로 전환하는 것도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에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적어도 '부자 감세 반대'와 '건설예산 축소 및 복지예산 확대'라는 방향에서는 진보정당과 민주당이 하나로 될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지난달 17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경제파탄, 민생파탄 강만수 퇴진 국민캠페인 <종부세는 살리고, 강만수는 나가고>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국민해고통보서 보내기 운동, 퇴진 촉구 서명운동, 대중집회 등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지난달 17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경제파탄, 민생파탄 강만수 퇴진 국민캠페인 <종부세는 살리고, 강만수는 나가고>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국민해고통보서 보내기 운동, 퇴진 촉구 서명운동, 대중집회 등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진보와 보수, 원칙과 개량은 모두 상대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이다.

 

현재 진보진영에 북유럽 복지국가를 모델로 하는 사회민주주의 담론이 광범하게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100년 전에는 사회민주주의가 개량주의였고, 당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배신자로 불렸다.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처럼 북유럽의 특정 경제학자나 철학자에 의해 완결된 논리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이상과 현실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변형 또는 진화되면서 하나씩 그 실체가 드러난 이론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능적 소유권' 이론이다.

 

사회주의는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따라서, 소유권을 국가에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혁명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소유권을 기능에 따라 처분권, 사용권, 수익권 등 여러 가지로 나누어, 처분권은 자본가에게 귀속시키되 사용권은 국가에서 제한을 가하는 등의 대안을 내세우며 자본가와 타협할 수 있었다.

 

소유권을 하나로 보지 않고 기능에 따라 여러 분야로 나누어 자본가와 국가가 나누어 갖도록 하는 '기능적 소유권' 이론은 사회민주주의가 타협과 배신(?)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의 일관된 철학은 실용주의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되 그를 향해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적과도 과감히 타협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이론을 계속 도입하고 원칙을 수정하는 과정이 바로 사회민주주의가 탄생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하나의 생각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00주의, XX주의 등 여러 가지 사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중산층과 서민이 더 잘 사는 사회'라는 추상적인 목표에서는 모두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보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언제든지 정치적 경쟁자와 손잡을 수 있고 적과도 타협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 태도가, 원칙에 고립되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원리주의자보다 더 진정한 진보일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진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진보가 아니다.

 

한편 '민주대연합'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연합의 여지는 더욱 더 넓다. 지방선거는 총선이나 대선보다 거대 담론의 중요성이 덜한 대신, 주민 밀착형 생활정치 의제가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주민복지 향상을 위한 의제를 공동으로 발굴하여 건설족과 대립한다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또한 후보단일화 방식으로 선거연합체를 꾸릴 경우 정치공학적으로 흥행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를 위해 민주당과 진보정당 후보들이 각 언론을 통해 정책토론을 벌이고 인터넷 투표 또는 핸드폰 투표와 같이 많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후보를 결정한다고 상상해보자. 흥미롭지 않은가?

 

'사람 살리기' 구호로 '가짜 경제'와 싸워라

 

국민들의 눈에 비친 진보진영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자기들끼리 잘난 놈들'이다.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보다 자기들만의 원칙과 사상, 자존심을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통합의 노력은 보이지 않고 싸움의 흔적만 보이기 때문이다.

 

소득이 90만원인 저소득층에게 소득을 100만원으로 올려주는 것은 당사자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큰 보탬이 된다. 이러한 개선은 사회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 국민들은 불신할 수밖에 없다. 목표에 비해 쥐꼬리만큼 미미한 정도일지라도 국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과거의 감정과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로 뭉친다면 진보진영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달라질 것이다.

 

12월 4일, 민생민주국민회의가 민생을 위한 중요한 의제를 발표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구호는 사실상 '대기업과 부자 살리기'다. 우리는 '사람 살리기' 구호로 이명박 정부의 '가짜 경제 살리기'에 맞서야 한다. 이 자리에서 '사람 살리기' 구호에 걸맞은 좋은 의제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가능하면 많은 정치세력과 시민사회단체가 하나로 뭉쳤으면 한다.

 

 지난달 1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미FTA 졸속체결 반대 비상시국회의 재결성을 위한 조찬 모임에서 자유선진당 류근찬(왼쪽부터 시계방향).김낙성 의원, 민주당 최인기 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민주당 유선호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민주당 천정배 의원, 이해영 한신대 교수,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1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미FTA 졸속체결 반대 비상시국회의 재결성을 위한 조찬 모임에서 자유선진당 류근찬(왼쪽부터 시계방향).김낙성 의원, 민주당 최인기 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민주당 유선호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민주당 천정배 의원, 이해영 한신대 교수,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안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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