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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밤, 은평 시민들이 직접 만드는 인터넷 신문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 4주년 기념 '모두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사회를 보았다. 2부 문화공연 사회. 사회를 보면서, 아니 보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저녁 시간인지라 1부 순서가 끝난 뒤 먹을거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치르는 문화 공연은 자칫 어려울 수 있다. 음식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기에 시끄럽기 십상이고, 공연에 집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가 심해질 경우 공연하는 분들이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소박한 분위기라 해도 사회보기 전에 걱정이 됐다. 초대 공연 오신 분들 마음 섭섭하게 해드리면 안 되는데, 조마조마했다.

 

 

엠프며 마이크대, 악보대에 이르기까지 이름도 미처 다 모르겠는 온갖 장비를 다 가져오신 녹번동 주민 인생악사님. 이름은 '어재선'씨지만 다들 그를 '인생악사'라고 부른다. 이랜드 문화제에서 같은 날 공연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 이 분 얼굴만은 참 익숙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보기엔 분명 프로급 섹스폰 연주자인데 본인은, 그냥 좋아서 즐길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신다.

 

이 날도, 이렇게 소박한 장소에 누구보다 먼저 와서는 시스템 설치까지 도맡아하셨다. 사람들이 늦게 와서 행사 초반엔 빈자리가 참 많았는데, 그런 광경이 초대 손님으로선 충분히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었는데 불만을 내비치기는커녕, 주로 야외 공연만 해 와서 실내 공연은 익숙지 않아 잘 될지 걱정이라고 오히려 걱정을 하신다.

 

그 말씀을 듣는데, 행사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넘어선 감동을 느꼈고, 이 분처럼 혼자 좋아서 여기저기서 공연 치른, 더불어 이 날 인생악사님처럼 공연을 해야 하는 같은 딴따라 처지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정도 시스템에, 이 정도 솜씨에서 우러난 섹스폰 연주를 우리가 언제 만날 수 있겠는가. 이 날 자리에 함께 한 모든 분들은, 정말이지 복 받은 거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섹스폰 부는 게 어지간히 힘든 게 아닌 듯하다.

 

기타 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력과 에너지가 드는 악기가 바로 섹스폰인 듯. 혼신을 다해, 즐거운 마음으로, 소박한 자리를 빛내주신 인생악사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왠지, 같은 딴따라 처지로 은평구 여기저기에서 자주 만나 뵐 것 같다. 언제, 어느 곳이 될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나.

 

 

인생악사님에 이어 또 한 분 프로급 가수가 나와 주셨다. 은평구 역촌동, 서부 경찰서 앞에 있는 은평 대표 문화 공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사장님 윤성근님이다. 지난 주, 진보신당 은평구 당원협의회에 출범식에도 초대 가수로 와 주셨는데 이 날 또 만나 뵈었다. 그 때처럼 사회자 겸, 같은 딴따라 처지로.

 

'장작불'이란 노래를 얼마나 멋지게 불러주셨는지. 감동했다. 노래 솜씨에도, 추운 날씨에 걸 맞는 노래를 골라 오신 안목에도 정말 큰 박수 쳐드리고 싶다. 이 분 공연도 자꾸만 다시 보고 싶다. 어떤 노래들을 불러주실지, 자꾸 궁금해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 다음 순서! 달호 아빠로 통하는, 직장인이면서 헤비메탈 그룹 활동까지 하고 계시는 윤정현씨다. 이 분 또한 이랜드 문화제에서 몇 번 같이 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자기는 주로 "원곡을 훼손하는 쪽"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말씀하시더니 '해방가'를 정말 원곡보다 멋지게 불러주셨다.

 

독특한 리듬과 박자에 맞추어서. 처지는 노래, 어려운 내용을 담은 해방가를 이렇게 재해석할 수 있다니. 이랜드 문화제에서만 주로 노래하는 걸 들었건만 실내라 그런가, 목소리가 참 좋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예상치 않은 가수가 탄생했다. 달호 아빠가 공연하기 전, 기타 조율을 하는 틈을 어떻게든 메워 보려고 행사장에 있는 아이들 인사를 시키려고 했다. 그저 인사만 시키려고 했는데 이 아이가 갑자기 노래를 하겠다는 거다.

 

이게 웬 떡! 아이 입에 마이크를 대 주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갑자기 마이크에서 흘러나온다. 아이를 안고 있던 난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들으면서도 이게 그 노래 맞나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더구나 목소리는 얼마나 맑고 예쁘던지. 처음엔 노래가사에 놀랐지만 나중에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더 놀랐다.

 

몇몇 분들은 여섯 살 난 아이 입에서 저 노래가 흘러나온 걸 걱정하시기도 했다. 아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일 테니까. 하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부르게 되는, 퇴폐성 짙고 잘못된 '성' 인식까지도 심어줄 수 있는 그 많은 요즘 대중가요들보단 그나마 나은 노랫말 아닐까?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건, 그냥 있는 그대로 사실일 뿐이니까. 그리고 교과서에서도 배우는 내용이니까.

 

그보다는, 그저 인사 해보라고 갖다 댄 마이크에 저절로 노래부터 하고 싶어 하는 그 '딴따라' 기질을 높이 사고 싶다. 난 ‘목소리' 좋은 사람은 물론이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또한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한테는 무조건 관심이 쏠려 버린다. 알고 보니, 영지 아버님이 한때 '노래를 좀' 하신 분이시란다. 정말 그 기질도 타고나는 게 있나 보다. 영지의 그 맑고 맑은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울린다.

 

 

그동안 은평구에 살면서, 어떤 행사를 치르건, 어떤 장소에 인사를 가건 무조건 내 소개를 이렇게 했다.

 

"은평구 대표 딴따라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인사말을 바꿨다.

 

"신사동 새댁입니다! ^^"

 

정말이지 몇 년 전만 해도 아니 최근까지만 해도 은평에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노래며 악기를 즐기고 좋아하고, 남들 앞에서까지 마음껏 그 기량을 보여주는 사람들 별로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당당히 스스로를 은평구 대표 딴따라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멋진 분들이 많지 않은가. 기량도 흥도 모두 나보다 훨씬 나은 분들이. 아이마저도!

 

비록 대표 딴따라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지만, 난 하나도 아쉽지 않다. 정말 반갑고 행복할 따름이다. '프로'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기 삶에서 음악을, 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난, "은평구 대표 딴따라"가 아니라 "은평구 여러 딴따라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신사동 새댁이자.

 

이렇게 어제 문화 공연은 나중에 은평구 딴따라들끼리 모여서 따로 공연 한 번 치러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잔뜩 드는 시간들이었다. 더불어 난 사회자이기도 했고, 앞선 분들이 워낙 출중하셨던지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마이크도 안 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악보 없이 노래를 했다. 사람들과 같이 '상록수'랑 '바위처럼'을 부르는 시간, 공연이라기보다는 그냥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2부 문화공연을 마무리했다. 은평시민신문이 바위처럼, 상록수처럼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사회자는 보통 외롭다. 그리고 문화 공연을 즐기지 못한다. 계속 긴장을 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행사일지라도. 그래도 어제는 간간히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공연하시는 분들도 분위기를 너무 잘 이끌어 주시고 봐주시는 분들도 걱정한 것과는 달리 분위기를 잘 맞추어 주셨기 때문에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랬나 보다. 그나저나 이렇게 자꾸 사회만 보게 되면 나중에 공연하기가 어려워질지도 모르는데. 난 '사회' 잘하는 사람보다는 '노래' 즐겁게 하는 사람으로,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으로 불리는 게 훨씬 행복하니까.

 

 

이날 어린 아이들이 두 명 있었다. 남자 아이는 달호, 여자 아이는 영지. 행사 치르는 내내 저 칠판에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제법 잘 그린다. 은평에서 화가가 탄생하는 거 아닌지. 이 모든 사진들과 아이들 사진을 직접 찍어 준 전 운영위원 이수현씨는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장면을 보면서 신윤복(?)과 김홍도를 떠올렸다고 한다. 요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두 주인공. 어른들 행사에 그림으로 '알아서' 즐겨 준, 달호도 영지도 정말 귀엽고 예쁘다.

 

 

추운 날씨에도 와주신 많은 분들. 행사 초반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이렇게 자리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즐거운 시간 만들어 주고, 즐겨 주셨다.

 

'걱정'으로 시작했던 은평시민신문 모두모임 문화공연은 이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건 오로지,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공연 잘 치러주신 은평구 대표 딴따라 분들과 그분들의 공연을 열심히 응원해주신 (은평시민신문을 아껴주시는) 여러 분들이 같이 만들어 준 결과물이다.

 

'딴따라'는 관객이 있을 때만, 그것도 좋은 관객들을 만날 때만이 빛날 수 있는 거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은평구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키우는 풀뿌리 지역 신문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에도 실린 글입니다. 


태그:#은평구, #딴따라, #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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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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