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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진지한 태도를 취하다

 

.. 심심풀이의 오락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고, 또 그려져 왔던 만화가 현실의 중대한 문제에 처음으로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열화당,1996) 101쪽

 

 “심심풀이의 오락(娛樂) 대상(對象)에 불과(不過)한 것으로”는 “심심풀이 오락일 뿐으로”나 “심심풀이 놀이감으로나”로 다듬습니다. “현실(現實)의 중대(重大)한 문제에”는 “우리 삶에서 크나큰 문제에”로 손보고, ‘점(點)’은 ‘대목’으로 손보며, “기억(記憶)되어야 할 것이다”는 “아로새겨져야 하리라”나 “길이 남아야 하리라”로 손봅니다.

 

 ┌ 취하다(取-)

 │  (1) 일정한 조건에 맞는 것을 골라 가지다

 │   -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하다

 │  (2)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다

 │   - 휴식을 취하다 / 부당 이득을 취하다

 │  (3) 어떤 일에 대한 방책으로 어떤 행동을 하거나 일정한 태도를 가지다

 │   - 강경한 태도를 취하다

 │  (4) 어떤 특정한 자세를 하다

 │   - 포즈를 취하다

 │  (5) 남에게서 돈이나 물품 따위를 꾸거나 빌리다

 │   - 친구에게서 돈을 취하다

 │

 ├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 차분하게 다루었다

 │→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 차분하게 그려내었다

 └ …

 

 누구나 아는 우리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면 됩니다만, 말과 글로 돈을 벌거나 먹고사는 분들은 ‘누구나 아는 우리 말’로 말을 펼치거나 글을 쓰지 않아요. ‘차분하다’는 멀리하고 ‘진지(眞摯)하다’를 가까이하며, ‘매무새’를 멀리하고 ‘태도(態度)’를 가까이합니다.

 

 ┌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하다 → 마음에 드는 것을 가지다

 ├ 휴식을 취하다 → 쉬다

 └ 부당 이익을 취하다 → 몰래 이득을 보다

 

 신문 기사든 방송 소식이든 책이든, 이야기입니다. 내가 남보다 먼저 얻거나 알거나 깨달은 앎과 생각을 남한테 너그러이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나 혼자 품고 있기에는 아쉬울 뿐더러, 나 혼자 갖고 있자니 빛바랠까 걱정되어 이웃한테 스스럼없이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나누어 줄 때는 언제나, 주는 쪽 눈높이가 아닌 받는 쪽 눈높이여야 합니다. 고아원에 가서 라면 한 상자를 주든, 경로원에 가서 쌀 한 섬을 주든, 받는 쪽에서 즐겁게 받는 한편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 강경한 태도를 취하다 → 세게 나오다 / 거칠게 나오다

 ├ 포즈를 취하다 → 모양을 잡다

 └ 친구에게서 돈을 취하다 → 동무한테서 돈을 얻다(빌리다/꾸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읽거나 말을 듣는 사람 눈높이에서 돌아보면서, 내 글이 얼마나 잘 읽히고 기꺼이 받아들여지겠느냐를 곱씹어야 합니다. 내 말이 얼마나 잘 들리고 넉넉히 껴안아 줄 수 있겠느냐를 되씹어야 합니다. 읽는 사람한테 맞추고 듣는 사람한테 맞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장사속으로 쓰는 글이요, 돈벌려고 하는 말이라 해도.

 

 

ㄴ. 느낀 바를 취하다 / 중국 음을 취하다

 

.. “… 그러니 앞 사람의 뒤만 답습할 필요가 있으랴. 급암이 딴 가곡으로 느낀 바를 취하여 새로 가사를 짓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  《이제현/신구현,상민,김찬순 옮김-길에서 띄우는 편지》(보리,2005) 29쪽

 

.. 중국에서 준 편경은 음이 바르지도 않고 들쭉날쭉해서 취할 수 없었습니다 ..  《박시백-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2005) 105쪽

 

 “앞 사람의 뒤만 답습(踏襲)할 필요(必要)가 있으랴”는 “앞사람 뒤만 좇을 까닭이 있으랴”로 다듬습니다. “가사(歌詞)를 짓는 것이”는 “노래말을 지으면”으로 손봅니다. ‘음(音)’은 ‘소리’로 손질합니다.

 

 ┌ 느낀 바를 취하여

 │→ 느낀 바를 가려 뽑아서

 │→ 느낀 바를 헤아려서

 │

 ├ 취할 수 없었습니다

 │→ 따올 수 없었습니다

 │→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 쓸 수 없었습니다

 └ …

 

 “골라서 가지다”를 뜻하기도 한다는 ‘取하다’는 옛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문학을 옮길 때, 또 옛 역사를 다룰 때 흔히 쓰입니다. 아무래도 지난날 양반이나 사대부들은 한문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글을 쓴 터라, 이런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게 되었지 싶어요.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옛글에서 흔히 쓰이던 이와 같은 말투를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이어받아서 쓸 만한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지난날에는 온통 한문으로 된 글에서 ‘取’라고 적혔을 텐데, 이 글을 오늘날 한글로 ‘취’라고만 옮겨 적는 일이 알맞을까 궁금합니다. 글자로만 한글인 ‘취’가 아니라, 속알맹이와 뜻까지 아울러서 ‘우리 말’이 되도록 가다듬거나 녹여내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아이들을 헤아리면서, 앞으로 이 땅에서 우리 문화를 일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이 땅에서 우리 터전을 보듬고 가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ㄷ.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니?

 

.. 그래서, 그럴 때마다 너는 어떻게 하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니? ..  《스나가 시게오/편집부 옮김-뜨거운 가슴으로 아들아》(갈무지,1988) 75쪽

 

 ‘행동(行動)’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몸짓’이나 ‘움직임’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뒷말과 묶어서 손보아도 됩니다.

 

 ┌ 너는 어떻게 하지? (o)

 └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니? (x)

  아무 행동도 안 하니? / 아무것도 안 하니? / 아무 일도 안 하니?

 

 보기글 앞쪽을 살펴봅니다. 보기글 앞쪽에서는 “어떻게 하지”로 적습니다. 바로 뒤에서는 “행동도 취하지”로 적습니다. 둘은 얼마나 다른 뜻이나 느낌으로 쓴 글일까 궁금합니다. 둘은 얼마나 다르게 쓰일 법한 글일까 궁금합니다.

 

 ┌ 아무 행동도 안 하니?

 ├ 아무것도 안 하니?

 ├ 아무 일도 안 하니?

 ├ 가만히 있니?

 └ …

 

 한자말 ‘행동’을 그대로 두고 싶다면 “아무 행동도 안 하니”처럼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행동’을 스스럼없이 털어낼 매무새라면 “아무 일도 안 하니”처럼 다듬거나, 뜻과 느낌을 살리면서 “가만히 있니”나 “팔짱만 끼고 있니”나 “모른 척하고 있니”처럼 손질해 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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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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