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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은 짙은 어둠이다.

 

안쪽엔 책장 넘기는 소리,

간혹 들리는 기침 소리... 뿐.

아이들은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

 

갖가지 그림으로 자습 인원을 체크해 놓은 칠판.

 

나는 칠판처럼 심심해졌다.

  장난삼아 폰카를 들이밀었다.

  공부하던 아이들, 찰칵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저거 봐,

한 녀석이 나를 가리킨다.

 

우리들로 하여금 시대의 위기의식으로 무장하게 만들어준 그분이

무지하게 고맙다는,

반어와 역설을 구사할 줄 아는 영특한 녀석이다.

 

 

찍는 줄 알았다면 이쁜 포즈로 찍을 걸 그랬다며

다시 찍자고 보채는 녀석을.

 

난 이대로가 좋은 걸, 했더니

입을 뾰로퉁하게 내민 채 책 속에 고개를 묻었다.

나는 다시 심심해졌다.

 

... 애들아, 놀자.

  나 혼자 심심하단 말야!...

 

 

끝날 시간이 되기 전,

부시럭거리며 가방을 싸더니 아이들끼리 신속하게 토론을 시작했다.

'야, 우리 이번 시험이 2학년 마지막 시험이니까 잘 준비해서 보자.

그러려면 과목별로 나누어 예상문제를 뽑아오도록 하면 어때?

내가 수학 해 올게.'

'난 문학 할게.'

'그럼 난, 국사'

'나는 사회문화.'

'너희들! 내가 윤리 해주면 좋겠어?'

'당근, 그래 주면 좋지!'

'그럼, 복사비는 각각 내는 걸로 하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알아서 하는 아이들.

벼랑에 던져서 살아남는 놈만 키우겠다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손잡고 건너가는 법을 보여준다.

 

창 밖의 날씨는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데

내 마음은 한없이 푸근해졌다.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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