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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주택시장... "집이 아예 안나와요"

미국 뉴욕의 한인들이 많이 사는 퀸즈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P씨는 다른 직종으로의 전업을 고려하고 있다. 뉴욕은 경기에 관계없이 높은 부동산 가격을 형성해왔고 개발할 땅은 이미 다 개발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캘리포니아나 뉴저지 등 지역에 비해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적었다.

하지만 불황의 늪이 점점 깊어지면서 매물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일이 적어진 것이다. 이미 시작된 대규모 실직과 내년에 기다리고 있을 신용카드 대란과 같은 악재 때문에 사람들은 지갑을 닫았고, 집을 늘리거나 이사를 가는 등 돈이 드는 새로운 시도는 꿈도 꾸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매물이 거의 없어요. 비싼 집들은 팔리지도 않고 안 팔릴 것을 아니까 내놓지도 않아요. 조금 매매가 있는 것은 50만불대의 주택들인데, 이런 집들은 작년, 재작년만 해도 60만불대에 팔렸던 집들이죠. 그리고 같은 크기라도 거실이나 주방이 큰 쪽 보다는 방이 큰 쪽이 잘 팔려요. 불황일수록 개인생활이 중시되고 실속있는 쪽을 택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불황에는 전자제품이나 게임기, 신발 등이 잘 팔린다고 한다. 가족이 모여 웃고 즐기는 것도 버거울 만큼 고단한 삶이 시작된 것일까. 그녀가 일하는 부동산 체인 사무실에서 20명 중 5∼6명이 일을 그만 두었다. 전업으로 하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하지만 부업으로 하던 사람들은 다른 직종으로 바꾸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 50만불은 주택의 한계가격에 해당한다. 주택이 차지하는 기본적인 대지와 건물, 문화적 혜택, 그리고 글로벌한 도시로서의 수요 때문에 사실상 40만불 대의 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지역이 바로 뉴욕이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택 가격이 이 한계가격 근방에 도달했다.

유학생인 K씨는 올 봄에 맨해튼 가까운 뉴저지 지역에 집을 사려고 했다. 가격이 떨어졌다고 하니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 후 살 집을 장만하려 했던 것. 이때만 해도 그는 30퍼센트만 계약금으로 내면 내국인에 비해 비싸기는 하지만 8퍼센트 정도의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작년이나 재작년이었다면 수입이 없는 학생이라도 낮은 계약금에,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높은 이자 때문에 대출을 망설이다가 집값이 더 내리길 기다린 그는 현재 아무리 계약금을 많이 내도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대출 이자는 내려갔지만 이제는 대출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유학생인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인이고 신용이 좋고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계약금을 많이 내도 대출이 거절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이들은 개개인들 뿐 아니라 기관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부동산 열기는 급속히 식었고 집값이 2∼3년 만에 두배로 뛰던 그런 날이 또 올 거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는 듯하다.

 지난 10월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근처 황소상 뒤에서 구제금융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자들.
지난 10월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근처 황소상 뒤에서 구제금융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자들. ⓒ 블룸버그=연합뉴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불러온 '모럴 해저드'

미국의 주택 경기를 꽁꽁 얼리고 더 나아가 경제를 파국으로 이끈 이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란의 원인을 경제 주체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로 꼽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 의하면 경제 주체의 누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흔히 '도덕적 해이'라고 번역되는 모럴 해저드는 자동차 보험에 들면 운전을 더 난폭하게 하고 주택보험에 들면 집안의 전열기구를 관리하는 데 덜 신경을 쓰는 것처럼, 자신이 행하는 어떤 행위의 결과를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된다면 (그렇지 않다면 안 했을) 어떤 위험한 행동을 할 경향이 더 커지는 것을 말한다.

신용상태가 좋은(프라임, prime) 사람이 아니라 그에 못 미치는(서브프라임, SUB-prime) 사람에게도 마구 주택대출(홈 모기지)을 해준 것이 오늘의 사태를 낳은 것인데 왜 주택 판매에 가담한 경제주체들이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모럴 해저드인 것이다.

주택 중개인은 그들 자신의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기에 주택 구입자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가격의 집을 보여주고 무리한 주택 구입을 부추겼다. 대출인들은 또 자신들의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기에 주택구입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때로는 필요한 문서까지 위조해 가며 투자은행의 돈을 가져다 빌려주었다.

투자은행들은 우량과 불량이 뒤섞인 대출들을 이리저리 나누고 합쳐서 모기지 관련 유가증권과 채권으로 변모시켜 발행했다. 투자자들은 이 유가증권을 모기지 보험상품과 함께 사들였다. 모기지 관련 보험은 또 상위의 보험에 들어있었다. 이렇게 경제주체들은 폭탄 돌리기를 하듯이 위험을 다음 단계의 주체에게 떠넘겼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다 잘못한 것 같은 모럴 해저드에서도 따져보아야 할 것이 있다. 즉 정보접근의 불균형성이다. 2004~2006년 사이에 집값이 치솟는 것을 경험한 개인들은 너도나도 많은 대출을 얻어 더 큰 집을 사들이거나 오른 집값에서 '에퀴티'(집값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것)를 뽑아 썼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 모기지 이자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거나, 혹은 감당하기 벅차더라도 집값이 올라 이득을 얻었을때 집을 팔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자율은 올라갔고 집값은 곤두박질 쳤다. 이들은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찾아온다는 경제 상식을 몰랐을 수도 있고 일부는 알고도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서는 그 때가 되기 전에 빨리 빠져나오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가 돌아가는 정보 접근성에서 열세에 있어서 생각처럼 빨리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런 이들을 지배한 것은 모럴 해저드라기 보다는 '탐욕'과 '무지'일 것이다.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월스트리트를 가리키는 거리 표지판.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월스트리트를 가리키는 거리 표지판. ⓒ Ramy Majouji

더 많이 책임져야 할 계층이 있다

이 경제주체들이 엮인 사슬의 상위로 갈수록 경제학이나 MBA 전공으로 무장한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접근이 안되는 고급 정보가 제공되는 주체들이 있었다. 이들은 아마도 오늘날의 파국을 예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그런 파국적인 경제활동을 수년간, 막판까지 해온 이유, 그것이 바로 '모럴 해저드'인 것이다. 파생상품 등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고, 아무리 위험해도 눈앞의 이득을 움켜쥐었던 그들은 어차피 자신들이 망하면 다 망하는 것이니 국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뻔뻔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베어스턴스, 프레디 맥(Freddie Mac)과 패니 매(Fannie Mae) 같은 국책 투자은행들과 AIG, 시티그룹, 자동차 빅3(포드, GM, 크라이슬러) 등은 그들이 파산했을 경우 퍼질 시장의 공포, 쏟아져 나올 실업자들을 이유로 구제가 결정되거나 준비되고 있다. 그야말로 대마불사인 것이다.

하지만 재무장관인 헨리 폴슨의 말에 의하면 '모럴 해저드' 때문에 위의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리먼 브라더즈나 메릴 린치, 워싱턴 뮤추얼 등은 구제되지 못하고 간판을 내렸다. 그들은 다른 회사에 합병이 되었지만 살아남은 직원들조차 구조조정 1순위가 되었다.

차압 위기에 처한 주택 구입자들을 위한 구제금융도 거절되었다. 대신 융자를 재조정해 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출 이자율을 낮춰주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으나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가 대출 원금은 그대로 있기에 파산의 시기를 조금 늦추는 효과밖에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모럴 해저드의 책임을 물려야 할 거대 회사들의 CEO들은 거액의 돈을 챙기고 직위를 떠난 반면 아무 잘못도 없이 불황에 실직하는 사람들은 일부만이 실직보험을 탈 수 있다. 모두가 같이 모럴 해저드 때문에 위험한 일을 했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구제금융은 또다른 '폭탄 돌리기'일뿐

대규모 구제금융이 제공된 것은 이번 뿐이 아니다. 1979년의 크라이슬러사의 구제금융, 1989년의 저축금과 대출금에 대한 구제금융, 1998년의 헤지 펀드인 롱텀 캐피털 매지니먼트 사의 구제금융, 그리고 2001년의 항공사 구제금융 등 미국 역사상 구제금융은 셀 수 없이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큰 놈은 살리고 시시한 작은 놈은 버리는 구제금융의 이중 잣대는 경제를 건전하게 되살리겠다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구제금융을 제공받았던 크라이슬러가 또 위기에 처한 것을 보라) 점점 더 모럴 해저드만을 만연시켰다.

모럴 해저드로 인한 경제파국은 그 경제 주체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풀어야지 구제금융으로 풀 것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구제금융은 다음 세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또다른 폭탄 돌리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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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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