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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착한 마음을 믿는 이여

기다림이라는 길이라는 님

아직도 모시고 있다면

먼 길 그냥 더 가시게나

언제이고 어머니 뵙거든

흙에게 강에게 숲에게

나무 호미 하나 깎아드리고

무릎 꿇어 삼배 올리시게나

 

- '흙의 경전' 몇 토막(16~17쪽)

 

흙과 논밭을 어머니로, 쌀과 농작물을 아버지로 모시며 살고 있는 농민시인 홍일선이 요즈음 말과 웃음을 잃어버렸다. 시인은 얼마 전부터 목울대에 자그마한 물혹이 생겨 이야기를 할 때 쇳소리가 섞여 나오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시인은 지난 9일(화) 전신마취를 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16년 만에 내는 세 번째 시집 <흙의 경전>이 마악 나올 무렵이었다. 그때 시인은 말했다. 이번 시집이 나오면 여주에서 조선 토종돼지 한 마리 잡아놓고 문인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열겠다고. 오랜만에 여는 그 잔치에 많은 문인들이 와서 가슴을 툭 터놓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갑게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약속 때문이었을까. 다행히도 수술 결과가 좋아 달포 정도 지나면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다 한다. 지금 홍 시인은 여주 집에서 가족들 간병을 받으며 하루속히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인은 묵언고행을 하고 있는 그 와중에서도 "오대 운하를 판다 난리인데 큰일났소"라는 문자메시지를 글쓴이에게 남길 정도로 우리 환경에 대한 관심 또한 남다르다.

 

흙과 논밭, 쌀과 농작물을 생명신으로 여기고 있는 시인 홍일선. 시인은 왜 16년이란 긴 세월동안 시를 논밭 한 귀퉁이에 거름더미처럼 그저 쌓아놓고 있었을까. 시가 발효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흙에서 갓 싹을 틔운 시가 너무 여려 좀 더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잎사귀를 드리우는 그날까지 일부러 참고 있었던 것일까.

 

논두렁 밭두렁처럼 서로 살갑게 껴안고 있는 시

 

"대저 시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이 땅에서 시인이라고 부름 받은 것은 또한 무엇이겠는가라고 심각하게 의문하는 이도 없지만, 그렇더라도 내 무능이 시업에 도저하지 못하였기에 답할 길이 없다… 나는 시라는 이름의 깨끗한 이슬 한 방울로 아직 흙 한 줌 적셔주지 못했다. 그러나 순결한 시의 씨앗으로 어머니 대지에 지극한 생명을 모시고 싶은 꿈은 여여하다"-'시인의 말' 몇 토막

 

여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명, 평화, 문예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홍일선(58) 시인이 마침내 16년이라는 오랜 침묵을 깨고 세 번째 시집 <흙의 경전>(화남)을 펴냈다. 시인은 1980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줄곧 우리 농업과 농토, 흙과 대지를 모시는 시를 발표해왔다.

 

시인이 그동안 시 창작 뿌리로 삼은 농업과 농토, 흙과 대지는 곧 생명과 평화, 상생으로 이어진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에서도 대지는 곧 생명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곧 언제나 넉넉했던 흙을 되살려내고, 건강한 대지로 향하는 끝없는 그리움이자 죽은 생명을 일으키는 거름이다.

 

이번 시집에는 농업과 농민, 흙과 대지, 사람과 대자연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그린 농민시 43편과 1970~1980년대 농토와 농민 수난사를 다룬 3편의 연작시 '젊은 소작농 김씨의 꿈', 그리고 상처받고 죽어가는 생명들을 증언하는 장편 서사시 '聖(성) 시화호', 시인이 쓴 산문 등이 논두렁 밭두렁처럼 서로 살갑게 껴안고 있다.

      

홍일선 시인은 <농토의 역사>(1986년), <한 알의 종자가 조국을 바꾸리라>(1992년)를 펴낸 뒤 16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시집에 대해 "게으른 산행은 산의 마음과 한 몸이 되는 행복한 산행이 되지만 내 게으른 시업은 실패였기에 실패한 시업을 탄하며 이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 비감 또한 자못 크다"고 말한다.

 

홍 시인은 "한 사람이 있어 평생 글 섬기는 것에 뜻을 두었다면 먹을 갈아 벼루 열 개 정도는 바닥을 맞뚫어야 하고, 아울러 붓 일 천 자루 정도는 소진시켜 티끌로 남기는 일이 큰 붓의 마땅한 도리"라는 추사 김정희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시창작을 위한 길을 느리지만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논은 게으른 농민에게 게으른 만큼 적게 준다

 

하루에 못 나가보아도 세 번은 논밭에 나가보아야

흙의 마음 겨우 뵐 수 있을 거라는 어머니

그래 먹실 고래실 물꼬는 괜찮던가요

뚝 너머 목화밭 꽃은 보기 좋던가요

생전에 좋아하시던

소나무 참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어울려 사는

숲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어머니

거기서 한창 때 떠나신 아버지를 만나셨는지요

아버지는 꽃을 좋아하셨는데

그 숲에도 꽃피는 봄이 찾아주시던가요

당신은 그래도 꽃 중에서 벼꽃이 제일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머니

어머니

 

-28쪽, '어머니, 숲으로 돌아가시다' 몇 토막

 

이 세상에서 피어나는 꽃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이 벼꽃이라고 말하는 시인 어머니. 시인 어머니는 말한다. "고향 떠나 사는 게 / 다 당신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그렇게 고향을 등져서도 "수원 오산 지방에 비가 오고 있다는 / 일기예보라도 듣는 날이면 / 아범아 지금쯤 논배미에 물이 잘 들어가시겠구나 / 벼들이 아주 좋아하겠다"라며 말끝을 흐린다.

 

글쓴이 어머니도 그랬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고향이었던 어머니는 마른하늘에 번개라도 치면 가장 먼저 고향 쪽 하늘을 바라보면 한숨을 포옥 내쉬곤 했다. 어쩌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하루에 서너 번씩 갈라먹기 논밭에 나가 물꼬를 지키며, 물을 먹고 파릇파릇 생기가 도는 벼를 자식처럼 쓰다듬곤 했다.

 

글쓴이가 어릴 때 살았던 시골 어머니들도 그랬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것은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물꼬를 통해 마른 논에 물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흙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논은 게으른 농민에게 게으른 만큼 적게 준다"고, "쌀이 곧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이고 생명줄"이라고, 국민교육헌장 외우듯이 말했다.

 

이제 숲으로 돌아가신 시인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시인 어머니에게 있어서 무논은 "당신의 슬픔을 채워놓은" 땅이다. 밭은 "당신의 그리움이 거름이 되어준" 땅이다. 때문에 시인 어머니는 "곡식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잡숫고 산다"(어머니 미수(88살)는 꼭 보십시오)며 고무신마저 벗어던지고 맨발로 논밭을 걸어 다녔다.

 

 

'개발' 앞에서는 보름달도 힘들고 목이 마르다

 

요즈음

보름달도 많이 힘드신가보다

걸음걸이가 고단해 보인다

오늘따라 무슨 상심한 일이라도 있는지

무척이나 쓸쓸한 그를

뒤에서 말없이 따라가는 일이

오늘 하루 일과라면 일과다

 

-68쪽, '저기 마을 숲이 있다' 몇 토막

 

숲도 힘들고 고단하다. "저기 머잖은 시간에 자취를 감출 / 오래된 숲"이 시인에게 무척이나 쓸쓸하게 보인다. 개발 때문에 오래된 푸른 활엽수 지대가 곧 사라질 위험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탄 신도시 지역으로 수용된 사람들은 이젠 다들 살만하게 되었다"고 게거품을 물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입을 슬며시 닫는다.

 

그들도 그동안 맑은 공기를 선물하고, 벗이 되어주고, 생명을 지켜준 "돌모루 인근 / 마을숲이 없어진다는 게 / 못내 슬퍼서"이다. 그 때문에 시인 눈에 비치는 달도 목이 마르다. 달도 "저기 삼성반도체 불빛 너머 / 기홍저수지 어름에서 / 잠시 쉬어가고" 싶다. 오래 묵은 숲이 사라지기 전에.

 

그랬다. 글쓴이는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개발'을 상징하는 포크레인 삽날이 얼마나 무섭고 참담한 것인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야트막한 산과 숲, 들판이 하루아침에 포크레인 삽날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멋모르고 "다들 살만하게 되었다"고 떠들었다.     

 

그것도 잠시. 집값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상금을 받아들고 신도시로 쫓겨나다시피 밀려난 마을 사람들은 오갈 곳이 없었다. 오래된 숲과 낯익은 야트막한 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밭과 집도 모두 사라졌다. 무분별한 '개발'은 멀쩡한 농민들에게는 도시빈민이란 이름표를, 사람을 살려주던 산과 숲, 논밭에는 '공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달랭이 무 잎새에서 늙은 어미 한숨소리 들린다

 

파장의 썰렁한 밤 열 시 삼십 분

아직 장사가 몸에 덜 밴 아내는 짐을 챙기고

지친 사람들 돌아올 수 없는 비애 그 거죽에서

우리가 하루 천오백 원에 잠드는 쪽방 영등포의 밤

딸애가 칭얼대는 희미한 백열등 그리움 속으로

비가 내린다 별들도 캄캄히 주저앉는다

 

-107쪽, '영등포의 밤' 몇 토막

 

시인은 1980년대 영등포시장 중앙통에서 곱창 전문집을 했다. <백두산> 정육점이 그 집이다. 시인은 그 정육점 뒤에 있는 나지막한 두 칸짜리 방에 살림을 차리고 살았다. 그때 그 집에는 그야말로 "'경제'가 보잘 것 없는 <시와경제> 동인들"(김학민 회고 글)과 배고프고 술 고픈 문인들이 밤늦게 자주 들락거렸다.

 

글쓴이도 몇 번이나 그 집에 가서 술과 곱창, 순대 등 여러 가지 안주를 공짜로 먹고 오곤 했다. 그 시절, 그 집은 춥고 가난한 문인들이 안방처럼 들락거리는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시인은 문인들이 찾아올 때마다 싫은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고 피붙이나 살붙이처럼 아주 반갑게 맞이하며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내놓곤 했다.     

 

시인은 그 집에서 "백일이 겨우 지난 아기"를 데리고 "우윳병만 쓰러져 뒹구는 좁고 깊은 방"에서 "선지피처럼 엉기며 사람들을 깨우"는 빗소리를 듣는다. 그 비는 "한평생 소작농 애비 한을 풀려고" 오는 비 같다. "단돈 백 원 한 닢이라도 깎자던" 영등포 시장 사람들이 내지르는 안타까운 흥정소리처럼 들린다.

 

그때 "통금시간에 돌아온 문칸방 새우젓장수"가 엉엉 우는 소리가 빗줄기를 타고 흐른다. 시인은 생각한다. "깊은 밤 도망치듯 떠나온 고향 / 땀이 흥건히 밴 밤길 길고 긴 논둑길"이 떠올라 서러워 우는 것이라고. "노점에 수북히 쌓인 달랭이 무 잎새에서 / 늙은 어미 한숨소리"가 들려 우는 것이라고.

 

시인 홍일선 세 번째 시집 <흙의 경전>은 대지 그 자체가 삼라만상과 사람을 무한대 생명줄로 이끌고 가는 불생불멸이다. 그 대지 속에 새록새록 숨 쉬고 있는 흙은 한 줌 한 줌이 경전이다. 그 경전 속에 들어앉아 생명을 짓고 있는 시인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선지식이다.

 

백무산 시인은 "'시의 첫 마음'으로의 회귀는 가난하고 작지만 가장자리에 서는 일이다. 그곳에는 위계와 척도와 부와 지배의 힘을 파괴하는 빈자의 혁명의 역사가 있다"며 "그 가장자리에는 눈물 그렁그렁한 사람들이 있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시인이 있고, 눈물 많은 어머니가 있고, 읽어도 읽어도 다 읽어낼 수 없는 흙의 경전이 있다"고 평했다.  

 

"누구는 / 시 한 편 쓰는 것이 / 삼라만상에 큰 업장 하나 / 무겁게 얹어놓는 것이라 하는데 // 또 누구는 / 시 한 편 갖는 것이 / 신생의 아기 막 태어나는 / 첫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는데 // 나 언제쯤이면 / 갓난 아기의 마음 가슴에 모시면서 / 옳은 시 한 편 / 가질 수 있으려나"('시 한 편' 모두)

 

흙을 모시는, 생명을 모시는 우리나라 대표적 농민시인

시인 홍일선은 누구인가?

 

 

"이 나라에서는 새들도 고향 상실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나 봅니다. 허지만 무엇을 잃는다는 것은 아프지만 다시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비축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직박구리들은 허공에 낸 생애의 고단한 발자국들을 지우면서 좋은 아비가 되고 착한 어미 새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몇 번의 좌절 끝에 새로운 정처를 구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집이 세속의 평안과 행복을 도모하는 근거지였다면 새들에게 둥지는 수없이 떠돌면서, 정든 시간들과 헤어지면서 비로소 완결되는 최소한의 공간인가 봅니다. 너무 큰 우리 집이 부끄럽습니다. 내 희망이 큰 것도 작은 희망을 섬기며 사는 직박구리들에게 부끄러운 일인 셈이지요" -시인의 산문 '큰 붓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몇 토막

 

시인 홍일선은 1950년 경기도 화성 동탄면 석우리 돌모루에서 태어나 1980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쑥꽃' 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초에는 채광석, 김도연, 정규화, 김정환, 황지우, 나종영, 김용택, 선경식, 박승옥, 김사인 시인 등과 함께 <시와경제> 동인으로 참여했다.

 

1984년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지금 한국작가회의 뿌리) 간사로 활동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이사 등을 맡았고, 시 무크 <사람과 땅의 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농토의 역사> <한 알의 종자가 조국을 바꾸리라>가 있다. 지금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도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한국평화문학> 및 시 전문지 <시경> 편집주간, <대운하반대문화예술인공동연대> 공동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곳 여주 도리 마을에 정주한 지 네 해째 되어갑니다. 이곳 마을사람들은 여주를 관류하는 강물을 남한강이라 부르지 않고 여강이라 부릅니다… 요즘 들어 분분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 논의 때문인지 강물이 말수가 무척 줄었습니다. 그런데 강물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시인의 산문 '큰 붓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몇 토막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흙의 경전

홍일선 지음, 화남출판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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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 시를 모시다

#시인 홍일선#흙의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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