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있는디 뺑뺑 돌아 왔네. 쇠때(열쇠) 하나 맹글어 주시오”
해가 하루를 정리할 무렵, 할머니 한분이 가게 문을 힘들게 열고 들어오시면서 하시는 말이다.
“찾아오시는데 어려우셨어요?”
“다리도 아프고 날씨도 영판(아주) 추워서….”
할머니가 주신 열쇠는 복제가 까다로운 아파트 보조열쇠였다.
“할머니 다 됐어요. 7000원입니다”
“할머니가 뭔 돈이 있어, 좀 깎아 주시오”
“할머니 안 깎아 드린 대신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그러면 되겠죠? 어느 아파트 사세요?”
“정말로? 그러면 고맙죠. D아파트요”
할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가게에서 2Km정도, 할머니 걸음으로 50여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마치 택배회사로 물건을 찾으러 가려는 참인데다 복제 열쇠가 혹여 맞지 않으면 할머니의 심란한 모습이 그려져 확인도 할 겸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할머니, 손자나 아들한테 복제를 해 오라고 하시지 직접 오셨어요?”
“내가 잃어버렸으니 내가 해야지, 다들 바빠요”
“그럼, 할아버지랑 오시지 그랬어요?”
“할아버지, 거그가 뭣이 좋다고 먼저 갔다요”
“언제요?”
“20년 되었구만요. 그래서 큰아들 집에서 사요”
“20년이면 할아버지 얼굴이 기억 안 나시죠?”
“어째 생각이 안나.”
떨어진 낙엽을 바람이 몰고 다니는 차창 밖 도로로 고개를 돌리신다. 괜한 질문을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여그서 잠깐 내렸다 갑시다. 유모차를 가지고 가야허요”
“무슨~ 어디가 있는데요?”
“저그요”
할머니가 가리키는 쪽은 낮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노는 모정이다.
할머니는 열쇠가게가 가까운 곳에 있는 줄 알고 할아버지들이 계시는 곳에 유모차를 맡겨두고 오셨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모정에는 할아버지들이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유모차에는 아기하고 관련 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텅 빈 채로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왜? 무슨 유모차일까? 궁금증은 할머니 아파트 앞에서 풀렸다. 할머니는 유모차를 차에서 내려놓자마자 손잡이를 잡으시더니 유모차를 밀고 쏜살같이 아파트 입구로 가시는 것이었다.
유모차는 할머니가 밀고 다니는, 할머니에게 더없이 소중한 바퀴달린 현대판 지팡이였다.
“할머니 열쇠가 잘 열어집니다. 그런데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팔십 일곱.”
깜짝 놀랐다. 연세에 비해 정말 건강하셨고 외모에서도 나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열일곱에 결혼하셨다고 한다. 큰딸이 내년에 칠순이고 큰며느리가 당신한테 참 잘 한다고 자랑도 하신다. 열쇠를 할머니께 드리고 막 돌아서려는데,
“건강하고 돈 많이많이 버시오. 정말 고맙소”
두 손을 합장하시고 등까지 구부리며 몇 번을 감사하다는 말을 하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에게 인생을 배웠다.
연세가 드셨지만 할머니에게는 잃어버린 열쇠를 직접 복제하려는, 유모차를 이용해 혼자 움직이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가족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긍정적인 생각, 감사의 마음을 숨기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다. 또 그 안에 할머니가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비결도 있었다.
덧칠하며 살아가는 내 삶이 어느 날 그 뒤안길에서 덧칠이 다 떨어지면 그때서야 어렸을 적에 가졌던 마음이 드러날까 생각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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