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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쿰 사막 계속 사막이 펼쳐진다
키질쿰 사막계속 사막이 펼쳐진다 ⓒ 김준희

간밤에 나를 재워준 사나쿨은 이곳에서 10km를 더가면 식당이 나온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까 괜히 후회가 된다. 어제 좀 무리해서라도 그곳까지 갔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어제 저녁에 일홈을 만나지도 못했을 테고 염소고기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선택이란 언제나 동전의 양면같은 것. 그러니 후회하지 말자.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짐을 꾸렸다. 그 거리를 보충하기 위해서 오늘은 좀 일찍 출발한다. 시간은 오전 7시.

작은 도시 가즐리가 가까워져서일까. 계속 사막이 펼쳐지지만 도로변에는 식당이 종종 나타난다. 어제 잔 식당에서 2km를 걸어오니까 또 식당이 하나 나오고, 10km 떨어진 곳에는 경찰 검문소가 있다.

검문소 옆의 상점에서 1ℓ짜리 생수와 탄산음료를 한병씩 샀다. 포장도로는 매끄럽게 이어지고 내 발걸음도 가볍다. 가즐리에 도착하면 사막이 끝나는 걸까. 아직은 알 수없다. 분명한 것은 오늘 무조건 가즐리까지 가야한다는 사실이다.

한참을 걷다보니 사막 안쪽에 컨테이너가 두개 보인다. 여기도 그동안 몇 번 보아왔던 사막의 일꾼들 숙소인 것 같다. 그리고 한쪽 컨테이너에는 에어컨이 붙어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다. 이 사막에 에어컨이라니? 어느새 뜨거워진 태양. 나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그 컨테이너 안쪽에는 이불이 깔려 있고 베개도 놓여 있다. 친절하게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만 같다. 컨테이너에 있던 한 남자에게 이곳에서 조금 자겠다고 손짓으로 말했더니, 그러라고 하고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다. 갑자기 나타나서 자겠다는 외국인이 약간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막의 무더위에 시달리다 에어컨이 놓여있는 컨테이너로 들어가니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벽에 붙어있는 러시아제 에어컨의 성능이 그리 좋지는 못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양말을 벗고 나서 이불위에 큰 대자로 누웠다. 그리고 잠시후에 잠이 들었다.

사막의 일꾼들 숙소에서 낮잠

키질쿰 사막 걷다보면 나오는 경찰검문소
키질쿰 사막걷다보면 나오는 경찰검문소 ⓒ 김준희

키질쿰 사막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
키질쿰 사막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 ⓒ 김준희

30분 정도 자고 일어났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나는 화장실도 다녀오고 이들과 함께 따뜻한 차도 한 잔 마셨다. 이들은 사막 한쪽을 가로지르고 있는 커다란 가스파이프를 가리킨다. 가스파이프를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여기서 먹고자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다시 뜨거운 태양 속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에 잠도 잘자고 음식도 배불리 먹었는데 걷다보니까 또 지친다. 사막에 들어온 지 8일. 사막의 뙤약볕이 내 몸의 체력을 모조리 태워버린 것만 같다. 그동안의 도보여행으로 피로가 누적된 것일까. 아니면 단지 더위 때문일까.

저기 멀리 또 식당 건물이 보인다. 저기까지 가서 쉬자. 가서 차가운 음료수나 물을 한병 사서 벌컥벌컥 들이키자.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그거 하나뿐이다. 그늘에 앉아서 차가운 무언가를, 목구멍이 얼얼해지고 눈알이 뻐근해질때까지 들이키는 것.

그런데 도착한 식당에는 음료수가 없다. 콜라, 환타를 외쳐봤지만 여기에는 없단다. 식당에 콜라가 없다니? 이들은 주방 바닥에 잔뜩 놓여있는 생수를 가리킨다. 혹시 차가운 물이 없을까 싶어서 냉장고를 가리켜보았지만 그 안에는 소시지와 고기만 들어있다. 냉장고에 빈공간도 많은데 왜 물을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을까. 이렇게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물을 왜 차갑게 보관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된다.

엉뚱한 곳에서 절망한 나는 한쪽 탁자에 앉아서 모자를 부채삼아 흔들었다. 그때 다른 탁자에 놓여진 커피통이 보인다. 그래 바로 저거다. 꿩대신 닭이라고, 차가운 음료수가 없으면 뜨거운 커피라도 마시자. 도보여행 시작한 이후로 커피를 한 잔도 못마셨다. '카페인과 알코올'을 좋아하는 내가 그동안 카페인 없이 알코올만 섭취하며 걸어온 셈이다.

"커피 한 잔 줘요!"

나는 커피통을 들고 주방에 말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곧 커다란 머그컵에 커피를 가득 담아왔고, 나는 설탕을 넣어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 식당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실내에는 작은 침대가 여러개 놓여있다. 장거리를 가는 트럭운전사들이 이곳에 들러서 휴식을 취하며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다.

식당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다

키질쿰 사막의 식당 나에게 커피와 음식을 제공해준 현지인들
키질쿰 사막의 식당나에게 커피와 음식을 제공해준 현지인들 ⓒ 김준희

커피를 마시니까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걸어서 여행한다니까 이들은 나한테 온갖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쉬기는 다 틀렸다. 주방에서 접시에 빵과 소시지를 담아와 내 앞에 놓는다.

"이거 얼마에요?"
"돈 필요 없어요. 그냥 먹어요!"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이들은 또 한국에 관한 질문들을 던진다. 한사람은 자기 치아를 가리키면서 뽑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 돈이 얼마 필요하냐고 묻는다. 치과에 가려면 돈이 얼마드는지 묻는 듯하다. 치과에 가서 어떤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사랑니를 뽑는 비용과 임플란트를 박아넣는 비용의 차이처럼. 나는 대충 생각해서 말해주었다.

"100달러!"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한꺼번에 놀란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치과에서 치료를 받을 때 돈이 없어도 된단다. 탁자 위에 놓여진 벽돌처럼 생긴 빵을 가리키면서 한국에서는 얼마냐고 묻는다. 빵의 종류도 여러가지이지만, 나는 식빵을 기준으로 해서 한개에 2달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빵 5개를 1달러에 살 수있다고 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질문을 한다. 한국으로 가서 일하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생활비는 얼마나 드는지. 한국에서 쌀이랑 쇠고기가 1kg에 얼마인지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쇠고기를 kg 단위로 사던가. 식료품 물가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한 사람이 내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역사도시 부하라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기지드반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거기 꼬치구이가 최고라고. 이건 정말 중요한 정보다. 기지드반에 가면 꼭 꼬치구이를 먹고, 지작이라는 도시에 가면 양고기만두를 먹어보란다.

그런 와중에도 빵과 소시지를 계속 권한다. 한쪽에는 토마토케첩도 있다. 도보여행 시작하고 케첩을 맛보는 것도 처음이다. 나는 케첩을 바른 빵과 소시지를 먹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여러가지로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 될 것 같다.

물과 음식을 얻어서 다시 출발

키질쿰 사막의 식당 건물 앞에서 현지인들의 배웅을 받는다
키질쿰 사막의 식당건물 앞에서 현지인들의 배웅을 받는다 ⓒ 김준희

떠들썩하게 휴식을 취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들은 비닐봉지에 큰 소시지 하나와 빵 하나를 담아준다. 그리고 1.5ℓ짜리 생수도 한통 건네준다. 돈을 주려고 했지만 필요없다면서 거절하더니 건물 앞에까지 나와서 나한테 손을 흔든다.

그래, 내가 이 맛에 혼자 도보여행한다. 이런 즐거움도 없다면 어떻게 혼자서 사막을 걷겠나. 처음 식당에 도착해서 느꼈던 절망이 어느덧 가슴벅찬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진한 커피를 두잔 마셔서인지 정신도 맑아졌고 몸의 피로도 사라진 것 같다.

걷다보니 또 식당 하나가 나왔지만 그냥 통과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 앞으로 3시간후면 해가 진다. 이제부터는 한눈 팔지 말고 열심히 걸어야한다는 이야기다. 멀리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사막의 전봇대들과 그 너머로 오가는 차량들이 보인다. 저 지평선 너머에 가즐리가 있을까. 식당이 있을까.

부지런히 걷지만 앞에는 계속 막막한 지평선 뿐이다. 6시가 지나면서 조금씩 어두워진다. 그리고 저 멀리 희미한 불빛들이 보인다. 저 불빛이 있는 곳이 가즐리일 것이다. 저기까지 거리가 얼마일까. 사막에서의 착시현상을 고려한다면 결코 가깝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 무리를 해서라도 10km를 더 갔어야 했는데, 그러면 지금쯤 가즐리에 도착했을 텐데.

자꾸만 일어나는 후회. 이런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는 걷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6시가 넘어가니까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량도 별로 없다. 이거 하나는 정말 좋은 점이다. 아무튼 몸상태는 좋다. 저기 멀리 보이는 불빛을 목표로 열심히 걷자. 지금까지 꽤 많이 걸어왔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기 암시를 하면서 발걸음을 빨리 했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듯한 저 불빛을 보면서 걷다가는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차라리 그럼 내 발을 보면서 걷자.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키질쿰 사막 가즐리 외곽의 식당에서 하룻밤을 잔다
키질쿰 사막가즐리 외곽의 식당에서 하룻밤을 잔다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도보여행#키질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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