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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편함은 여러 종류의 요금청구서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시민단체들에서 오는 소식지가 그래도 반가운 우편물에 속한다. 고작 1년에 한 번 밖에 보낼 수 없는 성탄카드도 인터넷이 보편화되고부터는 이메일로 대체되었고,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더 간편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된지 이미 오래다. 편리함은 있는데 편지를 열어보는 그 기쁨을 이제 다시 경험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이 헛헛해진다.

 

갈수록 어두운 경제 상황의 여파인지 그 어느 때보다 옛 것이 그리워진다. 해가 가기 전에 멀리 있는 친구에게 정성스레 쓴 편지를 띄워 보내는 일로 2008년을 마무리하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방학 때면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던 일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것은 일종의 과제였는데 독후감처럼 쓰기 싫다기보다는 무슨 말을 써야 할까 두근두근 설렘이 있었다. 아마 좋아하는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여서 그랬겠지.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동생도 종종 그런 편지를 받는다. 아이다운 편지지에 삐뚤빼뚤 글씨가 귀여웠다. 어린 학생이 보낸 편지라 뭐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만큼은 절절하게 와 닿았다. 편지에는 글쓴이의 마음이 녹아있어서 읽다보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추억이 묻어 있는 편지들, 오랜만에 꺼냈더니 먼지가 소복하다
추억이 묻어 있는 편지들, 오랜만에 꺼냈더니 먼지가 소복하다 ⓒ 정명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따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오는 기이한 시절이었다. 열심히 뛰어놀고 그다지 버겁지 않은 공부에 흥미도 느꼈던 그 때는 해가 바뀌어 반이 바뀔 때마다 좋아하는 친구도 바뀌었다.

 

남자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중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6학년 때 받은 성탄카드다. 입체카드라 접혀지는 부분에는 아주 깨알 같은 영자로 ‘아이 러브 유’라 적혀있었는데, 카드를 받은 그 당시에는 몰랐고 몇 해가 지난 후, 편지들을 꺼내 찬찬히 읽어보다 알게 되었다.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작게 글씨를 적었던 그 소심한 친구는 지금 드넓은 미국땅 어디에선가 학위를 받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소리를 바람결에 들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서울로 전학 간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편지를 통해 서울 아이들이 공부하는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야자의 개념을 차용해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안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친구가 불쌍했고 나도 왠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으로 사춘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와의 편지는 중고교 시절 6년 간 계속 되었는데,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사춘기 시절의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새로운 문화에 길들여지느라 그랬는지 편지는 계속될 명분을 찾지 못하고 점점 뜸해지더니 급기야 끊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쁜 편지지를 고르고 골라 편지를 쓰다가 나중에는 편지지 사러 갈 시간, 마음의 여유도 부족해 연습장에 써서 규격봉투에 담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그 친구에게서 오는 편지가 매번 얼마나 반갑고 오아시스 같던지. 학교라는 감옥에 오래 갇혀 지내다보면 오아시스가 따로 없는 법. 편지를 꺼내보니 100통이 넘는 편지의 9할은 서울로 이사 간 친구와의 편지였는데, 중1부터 고3처럼 공부했던 친구는 지금도 공부에 여념이 없다. 남편과 함께 미국 텍사스 에이앤앰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절절한 연애편지 한번 제대로 못 주고 받고 이십대를 보냈다는 게 이제와 원통한 사람이 있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편지지 위에 또각또각 마음을 전해보자. 긴 편지글이 아니어도 좋다. 그림 같은 엽서 위에 몇 자를 쓰더라도 받는 이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으로 행복한 순간을 안겨줄지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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