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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설 단 한 명을 위해 '나머지들'이 알아서 뒷 배경이 되어주는 세상. 건강한 자아를 세워갈 시기에 줄서기를 가르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가.
 
경쟁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세뇌시키는 세상. 언제나 부는 미덕이요 또 언제나 가난은 부끄러움이라고 은연중 가르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가.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말하는 세상. 현실을 애써 들추어보는 것은 무례한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 그것이 참 좋은 세상인가.
 
만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 그런 세상이라면, 혹시 우리는 숨가쁘게 달려온 2008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큼지막한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에 와 있지 않을까. 세상에, 역사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그대로 살 만한 세상인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광주 망월동 신묘역 사진 전시관 벽면에 써 있다는 이 글귀가 어디 벽면 한자리만 차지해서야 되겠는가. 도리어 이 세상을 통째로 울리고 또 울리는 '영원한 오늘의 소리'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역사에 기대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후배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운 기둥에 기대고, 우리가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서 걸어가게 됩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보면 라다크에서는 오늘 하는 내 행동과 말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끊임없이 헤아려 보는 것, 그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그때의 역사에 비춰 어떻게 풀어 나가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영향을 미치고, 좀 더 나은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인지, 그랬을 때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헤아려 보는 것이 지혜이며 역사 의식이기도 합니다"(<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24)

 

어제가 있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일진대, 어떻게 어제를 까마득히 잊고서 내일을 말할 수 있을까. 현재를 곱씹지 않는 내일이란 공허한 헛기침에 불과할 것이다. 그 헛기침에 어제라는 토대가 먼지처럼 사라지고 오늘은 아귀다툼들만 남을지 모른다. 그리고서 어찌 내일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분명 서로 필요하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돕는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와 같은 쉽지 않은 질문 혹은 외침에 무언가 답할 수 있기 위해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역사의 줄기를 늘 되짚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가 바라듯이 우리 시대 대한민국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책은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싶은 듯이 '박준성이 바라본 세상-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되풀이되는 역사'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총 6가지 주제에 걸쳐 이 시대 대한민국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그래, 맞다. 아, 정말 그렇다. 어디에 서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역사를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역사에서 무엇을 보는지에 따라 '지금 이곳'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말하자면, 역사와 사회 그리고 심지어 나 자신마저도 보이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려는 대로 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역사를 보는 눈이 곧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이 책 첫 무대를 연 박준성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되풀이되는 역사'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 진하게 말하고 싶었나보다.

 

이 책은 "작은책 12주년 기념 겸 노동자 7·8·9월 대투쟁을 기념해서 만든 여섯 개의 강좌"에서 비롯되었다. 어찌보면 소박하고도 진솔한 이 시대 이야기들을 엮은 책 정도로 담담하게 역사에 남을 수도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2008년을 멋있게 수놓는 이들 명단에 올랐다.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 중 한 권에 뽑히는 뜻하지 않은 영광(?)을 누렸던 일이 바로 그것인데, 무엇보다 이 일에 동참(?)했던 책들이 모두 본의 아니게 '책 읽는 한국사회'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그 바람에 너도 나도 '지금 이 곳'을 다시 한 번 더 세심히 바라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안건모가 바라본 세상-세상을 바꾸는 글쓰기'를 쓴 안건모는 저자 6인을 대표해 쓴 머리글 제목을 '80의 진보를 이야기하자'로 달아놓았다. 또 "이 책에서 내린 결론을 말하자면, 책 제목대로 왜 80%나 되는 노동자 민중이 20%밖에 안 되는 자본가들에게 지배당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놀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 냄새 물씬 풍기는 지분 싸움을 상징하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한 쪽으로 비뚤어진 눈을 비비고 세상을 다시 보자고 당당히 요구하는 차분한 외침이다.

 

역사, 노동, 교육, 여성, 경제, 철학 등 여섯 가지 주제로 기획되었던 강좌들은 나중에는 역사, 글쓰기, 여성, 경제, 교육, 노동 여섯 가지 주제로 약간 바뀌었다. 철학 대신 글쓰기가 들어간 셈인데, '안건모가 바라본 세상-세상을 바꾸는 글쓰기'가 이 책이 바라는 철학의 의미를 얼추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세상을 달리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상을 향해 변화를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홍세화는 '홍세화가 바라본 세상-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저당잡힌 오늘'에서 지난 날과 달리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탈의식화입니다. 즉 지배 의식과 방송 매체를 통해서 형성된 의식을 벗어내야 합니다. 80은 20이 장악한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나보다. 달리 말해, 그는 (20이 주도하는 사회질서를 반영하는) "지배 질서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자기 시각을 갖기 바랐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80'은 한 마디로 하루 하루를 모아서 역사를 이루어가는 평범한 우리 이웃을 말한다. 그리고 '20'은 변화를 바라지도 않으며 그 필요성은 더더욱 느끼지 않는 이들로서 '문제를 항상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구조적 관점'을 탐탁치않게 여기는 이들을 말한다고 하겠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단순한 숫자놀이가 아니다. 이것은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이 책을 보는 내내 '왜'를 되뇔 수밖에 없다. 이 책이 말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에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은 분명 '20'이 아니라 언제나 '80'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앞서 말한 안건모, 박준성, 홍세화 외에도 여성 분야에서 이임하, 노동 분야에서 하종강, 그리고 점점 더 이 나라의 내일을 흔들어댈 게 분명한 한미FTA를 주요 주제로 경제 분야에서 정태인 등이 쓴 알찬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은 다시 이 시대를 향해 '왜'를 외쳐야 할 이유와 그 방향이다.

 

이 책이 말하는 '20'이란 '지금 이 시대'를 향해 물음표를 던지고 '지금과 다른 세상'을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기에,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강요당한 세상을 묵묵히 걸어가는 '80'의 깊은 속내를 일부러라도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불안한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금과 다른 세상'을 시작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괜스레, 다시 한 번 묻자.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대답해보자.

 

시대를 향한 물음표 앞에 선 당신.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세상을 그리고 계십니까?

 

"오늘의 내 삶에 진정으로 충실할 수 없을 때 어떻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를 위한 충실한 삶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이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불안 요인이 되는 것, 즉 "아프면 어떻게 할까? 또 내 자신이 앞으로 커서 자식 교육이나 시킬 수 있을까?" 하는 누구나에게 부딪히는 그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을 살리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 문제가 바로 사회 보장 문제입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적어도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도 자식 교육 문제, 의료 문제, 기본적인 주거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같이 공동으로 같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같이 해결한 다음에 그 다음에 경쟁을 하든 뭐든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럴 때만이 '오늘을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점점 신자유주의 아래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오늘을 저당 잡히고 있습니다. 오늘의 내가 없는데 오늘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같은 책, 194)

덧붙이는 글 |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작은 책 스타가 바라본 세상> 박준성 외 5인 지음. 철수와영희, 2007.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 작은책 스타가 바라본 세상

하종강 외 지음, 철수와영희(2007)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진보#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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