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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눈물' '누들로드' '한반도의 공룡'... 최근 인기를 끌었거나 끌고 있는 다큐멘터리들입니다. 다큐가 대세입니다. 반응도 뜨겁습니다.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당당히 시청률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합니다. 시청자들은 행복합니다. 그 가운데 사라지는 다큐 채널도 있군요. 뜨는 다큐, 사라지는 다큐. 여러분들을 다큐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KBS1 <다큐멘터리 3일>
 KBS1 <다큐멘터리 3일>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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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예상되는 질문이 있다. <다큐멘터리 3일> 작가로 일하면서 이미 수없이 많이 받은 질문이다. '진짜 3일만 찍나요?' 답은 '그렇습니다.' <다큐멘터리 3일>은 3일(72시간이므로 정확히는 3박4일) 동안 찍는다.

<다큐멘터리 3일>은 기본적으로 르포르타주 프로그램이다. 소재의 어느 단편이 아니라 심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적어도 그것을 목표로 하는) 다큐멘터리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재료가 된다는 면에서는 휴먼 다큐멘터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르포르타주나 휴먼 다큐와 구별되는 형식상의 특이사항이 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둔다는 점. '한 장소'에서 '3일' 동안만 촬영한다는 것이다.

'한 장소'에서 '3일', 무엇을 '건질' 수 있을까

초창기 제작진은 고민이 많았다. 달랑 3일 찍어서 50분 방송 낼 수 있을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한 장소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가령 낙원상가라면 낙원상가 앞 국밥집은 포함이 되는가 아닌가, 원칙적으로 사전섭외가 없으니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인데 과연 섭외가 될까, 그리고 3일간의 관찰로 과연 그 장소나 그 사람들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묵직한 의문까지.

일단 나갔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이 뜨겁고 다이내믹한 나라의 구성원들은 모두 상당한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으며 뜻밖에도 카메라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다. 카메라를 대하는 취재원들의 3일간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이러하다. 첫째 날, 카메라를 경계하거나 적어도 어색해한다. "찍지 마세요. 딴 사람 찍으면 안 될까요." 둘째 날, 카메라를 의식하기보다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제작진-을 보기 시작한다. 때로 먼저 말을 건넨다. "아침은 먹었나요. 어제 인터뷰 안 해줘서 미안해요." 그리고 마지막 날, 자신의 진심을 내보여주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비록 조금이라도. "내가 사실은…"으로 시작되는 그 감사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

바로 지난주(20일) '입양인의 고국방문' 편에서만 해도 그랬다. 처음 고국에 온 한 입양인 청년. 첫날, 촬영 자체를 꺼리던 그는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존"이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리고 3일 뒤. 제작진이 "존"하고 부르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성준, 성준."

탈진할 지경에 이르는, 밀도 높은 72시간

 <다큐멘터리 3일>은 딱 3일, 72시간만 찍는다.
 <다큐멘터리 3일>은 딱 3일, 72시간만 찍는다.
ⓒ KBS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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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일간의 만남이라는 조건은 제작진에게도 대상에 대한 엄청난 집중력과 긴장감을 요구한다. 72시간 동안, 우리는 그 장소에 징그럽도록 눌어붙어 산다. 매번 촬영 종료 후에는 탈진할 지경에 이를 만큼 그것은 밀도 높은 72시간이다. 매력적인 인물을 발견하면 염치 불구하고 졸졸 따라다닌다. 대상이 카메라를 어려워한다면 좀 떨어져 지켜보면서 경계심을 풀고 불러주시기를 기다리는, 약간의 솜씨랄까 하는 것도 발휘한다. 시간의 흐름대로 편집하는 것이 원칙이라 오늘 이 순간을 놓치면 내일 비슷한 걸 찍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장에선 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 장소에서 3일을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그 생태계의 구조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군상의 지형도가 어렴풋이나마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득, 그 동네 유머를 구사하고, 그 집안 사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단 3일 만에 이루어지는 그 기묘한 경험은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는 듯하다. 72시간이 종료될 즈음 작별인사를 건네러 가면 "아이고 서운해서 어떡해"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이 참 많았다. 어느 건물의 청소용역 아주머니께서 제작진의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단다.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래 월사금은 얼마나 받누." 그러니 그 불쌍한 이들이 요청하는 인터뷰를 어찌 끝까지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라는 전통적인 관계를 넘나드는 일들이 발생한다. 예전에는 카메라를 잘 세팅해 놓고 제작자가 출연자에게 큐 사인을 주고 '저기부터 걸어오세요. 거기 서세요. 하늘을 보세요'하는 식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다큐멘터리가 많았다. 이른바 '오시오 가시오 다큐멘터리'. 이러한 다큐멘터리에서는 NG컷과 OK컷이 명확하다. 정제된 그림을 얻는 데는 탁월하나 현장감은 좀 떨어지는 방식이다.

<다큐멘터리 3일>은 그 반대다. 취재원은 제작진에게 음료수며 떡이며 순대를 주기도 하고, 사양하면 입에 푹 넣어주고 도망가기도 하고, 질문을 하면 '미쓰 조(이 정겨운 호칭이라니)는 어떻게 생각해?'하고 거꾸로 질문이 들어와서 이쪽에서 저쪽을 상대로 하는 인터뷰가 아닌 한바탕 수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주체와 대상의 경계를 넘어 손을 불쑥 내미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카메라에 기록된다.

옆집 아저씨에게서 나오는 주옥같은 인터뷰의 비밀

생태경제학자 우석훈 교수는 한 책에서 썼다.

'시민은 분노하는 존재이고 민중은 저항하는 존재다. 그러나 서민은 슬퍼하는 존재이고 당황하는 존재다.'

<다큐멘터리 3일>에는 유독 그 서민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이 주인공이다. 종종 <다큐멘터리 3일>의 꾸준한 시청률의 비결을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들과 우연한 만남은 의외로 극적일 때가 많다.

'우연'과 '만남'은 <다큐멘터리 3일>의 주요 키워드이기도 한데, '포장마차' 편(2007년 11월 15일 방송)에서 첫날 외상을 지고 갔던 손님들은 촬영 종료 전에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나타나 외상값을 갚고 갔다. '낙원상가' 편(12월13일 방송)에서는 이쪽 VJ가 촬영하고 있던, 40년 전에 자신이 만든 기타를 고쳐 달라고 고집부리던 실향민 할아버지가, 하필 저쪽 VJ가 촬영하고 있던, 성격 까칠한 기타 장인 할아버지네 가게로 들어가, 일대 격돌을 벌인 후 인생의 동지가 되었다.

거칠지만 가공되지 않은 진실을 보는 것 같은 점이 <다큐멘터리 3일>의 강점이다. 인터뷰 또한 그러하다. 별 대단한 질문을 던진 것도 아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행복하신가요.' 그 흔하고 통속적인 질문에, 소주 한 잔으로 얼큰해진 옆집 아저씨, 파마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식당 아줌마, 주변에 흔하디 흔한 청년 백수의 입에서 시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끄러운 데서 일하시면 귀 아프지 않으신가?"
"난 이 소리가 안 들리면 귀가 아플 것 같다."
- 미국발 경제위기 직후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난 어느 노동자

"기차를 타고 갈 때는 직진한다고밖에 생각을 안 한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길이 굽이굽이 되어 있다.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뒤돌아보면 굽어 있고, 그게 인생인 것 같다."
- 구로역에서 만난 한 취업준비생

현재의 삶이 고단할수록, 그것을 받아들이고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지혜는 있는 법. 비록 어릴 적 꿈을 이루며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모색하는 이들이라서, 마음속에 불덩이 한 번 가져보지 못하고 안일하게만 산 인생들이 아니라서, 주옥같은 인터뷰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다큐 3일> 제작진에게 생긴 이상한 버릇

 지난 13일에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낙원상가편'.
 지난 13일에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낙원상가편'.
ⓒ KBS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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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3일>이 첫 방송을 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처음에는 촬영한 시간 순서대로밖에 편집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그때 현장에서 이걸 더 찍었어야 했는데, 하며 땅도 많이 쳤다. 취재원을 좋은 의자에 앉혀 안정적인 앵글로 인터뷰하는 것보다, 그들이 일하고 놀고 움직이는 상황을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말 한마디 툭 건네 보는 것이 더 진심을 듣기 쉬울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회를 거듭하며 이른바 '서민'의 '삶'이란 걸 너무 도식화하는 것 아닌가 반성도 했다. 행복, 도전, 꿈, 삶, 인생, 일상, 희망, 기적, 터전, 고단한, 소박한, 소소한… 이런 단어들을 줄곧 쓰면서도 쉽게 쓰이지 않기를 바랐다.

제작진들에게는 이상한 증상도 생겼다. 버스 안에 앉아서 문득 사람들을 보면 다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따라가 말을 시켜보고 싶어진다.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드라마를, 어떤 명인터뷰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라는 장치를 가진 다큐멘터리로서 어떤 벽에 부딪힐 것이며 또 어떤 식으로 진화하게 될까. 참 궁금하다.

또 한 해가 간다. 마음이 어수선해지는 연말, '늘 작년 이맘때처럼 살고 있는', 그래서 나는 '낙오자'가 아닐까 초조한 이 땅의 모든 평범한 분들, 그러나 알고 보면 놀라운 드라마의 주인공인 당신들께 지극히 <다큐멘터리 3일>다운 인사를 올린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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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조정화 기자는 KBS1 <다큐멘터리 3일> 작가입니다.



#다큐멘터리3일#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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