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회루 연말에 찾은 경회루 연못이 꽁꽁 얼었다.
경회루연말에 찾은 경회루 연못이 꽁꽁 얼었다. ⓒ 한성희

겨울 왕궁은 유난히 춥다. 풍수지리학상 기가 모이는 곳이라서 춥다고 한다. 특히 경복궁은 담장 바깥보다 상당히 낮으며 바람까지 휘몰아치니 옷깃을 여미고도 추워서 덜덜 떤다.

 

30일, 경복궁을 찾던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주 화요일은 문을 닫지만 이 날만은 특별한 손님들 때문에 직원들은 쉬지 않고 출근했다. 경복궁관리소(소장 박종갑)에서 사회복지시설 ‘시온원’ 소녀들을 초대한 것.

 

바쁜 연말, 잠시 틈을 내어 고궁을 함께 관람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서 찾은 길이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추위를 참지 못해 고궁박물관으로 들어가 경복궁관리소 박정상 과장과  잠시 대화를 나눈다. 외국인들이 연이어 박물관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올해 경복궁과 고궁박물관에 들어온 관람객이 4백만이에요. 중국, 일본, 유럽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요.”

“올 한해에요?”

“네. 입장료 수입만 40억이 넘어요.”

“대단하군요!”

 

놀랍고 자랑스러워 가슴이 뿌듯해진다.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가 이제야 빛을 발하는 듯싶다.

 

“지난 10월에는 ‘천사의 집’ 장애인들을 초청해 고궁을 관람시켰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직원들이 직접 휠체어를 밀어보니 힘이 들어 장애인들의 경복궁 관람 경사로가 불편한 사항을 개선하고 동선개발에 나섰지요.” 

 

고궁을 찾고 싶어도 장애인들은 이동과 관람에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니 반가웠다. 수동식 휠체어를 밀어보니 힘이 들어서 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전동휠체어 2대를 전달했단다. 

 

박물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특히 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조의 기품 높은 유물들로 가득 차 있어 눈길을 유혹한다. 잠시 둘러보고 있으려니까 아이들이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왕비대례복 "화려한 꿩 무늬가 있는 대례복은 수를 놓은 게 아니라 옷감을 짤 때 무늬를 넣어서 짜기에 훨씬 어렵단다."
왕비대례복"화려한 꿩 무늬가 있는 대례복은 수를 놓은 게 아니라 옷감을 짤 때 무늬를 넣어서 짜기에 훨씬 어렵단다." ⓒ 한성희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12명의 소녀들이 도착했다. 하나같이 예쁘고 고운 얼굴들이다. 오늘 고궁나들이를 함게 하려고 방학이 될 때까지 기다렸단다. 모처럼 고궁나들이에 멋을 한껏 낸 소녀다운 모습이 밝고 싱싱해 보여 같이 마음이 환해진다.

 

뒤에서 지켜보니, 안내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관람하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화려한 왕비 대례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았니?”

“마지막에 본 차요.”

민지(11) 눈에는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가 탔던 리무진이 멋있게 보인 모양이다.

 

어차 순정효황후가 탔던 리무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눈망울이 곱다.
어차순정효황후가 탔던 리무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눈망울이 곱다. ⓒ 한성희

 

경복궁으로 이동하자, 아니나 다를까 강추위가 바람과 함께 목덜미를 파고든다. 근정전, 경회루, 강녕전을 돌아보는 동안, 추위를 피해 도망갈 장소도 없었다. 넓은 구중궁궐은 사람이 없어 더 한적했다. 인왕산 큰 바위가 궁을 내려다보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이곳은 근정전이라 하는데 왕이 신하들과 정무를 보던 곳이란다."
경복궁 근정전"이곳은 근정전이라 하는데 왕이 신하들과 정무를 보던 곳이란다." ⓒ 한성희

 

그 옛날, 이 궁궐에 살던 왕과 왕비, 공주, 궁녀들의 그림자도 볼 수 없지만 그들의 모습이 궁궐 구석구석 보이는 듯했다.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궁에서 살던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생활했을까. 당시엔 경복궁의 건물이 지금의 3배나 됐으니 얼마나 웅장했을까.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다는 경복궁답게 추위에도 열심히 설명을 들으며 궁궐을 살펴보는 소녀들을 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참 교육이 잘된 예절바른 아이들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를 많이 와보고 싶었나 보구나.’

 

강녕전 왕의 침전이었던 강녕전 설명을 듣자  유난히 호기심이 발하는 듯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강녕전왕의 침전이었던 강녕전 설명을 듣자 유난히 호기심이 발하는 듯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 한성희

 

관람을 마치고, 중국집으로 향하며 문을 나서자 언제 추웠냐는 듯 바람조차 없다. 탕수육과 자장면과 짬뽕으로 늦은 점심을 함께 먹으며 아이들과 담소를 나누던 경복궁관리소 직원들은 ‘날씨가 따뜻하고 꽃도 피는 봄이 되면 다시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하자 조그맣게 대답하며 수줍게 웃는다.

 

“오늘 아이들과 관람을 해보니 휴일이 아닌 날에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문화유산을 보러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모습을 보면 느끼는 점도 있을 거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공부가 될 거 같아요.”

 

나 역시 따뜻한 봄날 다시 찾아 경복궁의 계단부터 처마 끝까지 차근차근 진수를 맛보고 싶다.

 

 


#경복궁#고궁박물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