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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이와 한 백년 살고 싶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집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반딧불 초가집도 님 과 함께라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남진의 저 ‘저 푸른 초원 위에’ 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가사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님과 평화로운 초원 위에서 집을 짓고 농사와 목축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서구 산업화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몰아친 현재에는 꿈과 같은 삶이다.

얼마 전까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아주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라다크 라는 곳이 바로 그 곳이다. 라다크?

‘문화적으로 라다크는 티베트에 속하고 실제로 흔히 작은 티베트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렇게 티베트와 밀접한 연결이 되 있는 라다크는 약950년부터 1843년 흰두 도그라스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독립적인 왕국이었다. 도그라스가 카시미르를 장악하자 라다크와 그 이웃인 발티수탄은 자무와 카시미르의 왕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1947년의 인도 파키스탄 전쟁 이후에 발티스탄 지역은 휴전선의 파키스탄 쪽에 있게 되고 라다크는 인도의 자무와 카시미르 주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갈등의 고조, 1950년의 중국의 티베트 침공, 그리고 1962년의 악사이 친 지역에 대한 중국의 점령 등으로 인해 라다크는 인도의 가장 중요한 전략지가 되었다.’ (헬레나 코지 <오래된 미래> 30-31p)

아름다웠던 라다크의 문화

제 1부 <땅과 함께 살기>에서는 인간의 욕심을 자연과 함께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라다크 인의 검약 정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약 하면 옹졸하고 구두세 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검약은 작은 것에서 더 많이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에서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오해와 갈등을 풀어나가는 라다크인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은 갈등이 생기면 당사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설득하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라다크 인은 인간 간의 오해나 갈등이 생겼을 때는 자발적 중재자에게 모든 것을 의례한다. 자발적 중재자는 사건의 당사자 외의 제3자가 될 수 있고, 아니면 아주 친한 사람도 될 수 있다. 아주 친한 사람이 중재자를 하면 친한 사람에게 편중될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친한 사람일수록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 각자 좋은 방향으로 오해를 풀 수 있는 판단을 내린다고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분쟁 없이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의 현명한 지혜가 아닌가 생각된다.

<삶의 기쁨> 에서는 만족과 마음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는 외부의 상황에 좌우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 것은 내면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대인은 대부분 외부의 상황이 자신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다크 인들은 외적 상황을 탓하지 않고 내면을 갈고 닦으면 마음의 평정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서구화가 진행되기 전 라다크는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라다크는 변했다. 왜?

광복 이후 한국 사회는 아주 빠르게 산업화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경제 낙후국으로 불렸던 한국은 20세기 후반이 되자 세계적으로 성공한 산업사회가 되었다. 많은 제 3세계 국가들이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배우려는 붐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먹고 살만해졌는데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떤가? 근대화 전에 간직하고 있던 이웃 간의 공동체 문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자연 농법 등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옆에 있는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인간의 식욕을 위해 자연의 흐름까지 파괴하고 있다.

제2부에서는 라다크의 전통이 서구의 문물의 유입으로 파괴고 있는 실태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과거의 모습과 같이 라다크 또한 전통이 무참히 파괴되었다. 

변화된 라다크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서구 문물의 유입이 ‘옳다 그르다’ 라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문물의 무분별한 유입에 따른 라다크 문화의 파괴를 주목해야 한다. 즉 '서구 문물의 유입은 민주적이었는가' 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 정부는 라다크를 관광 지역으로 개발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민주적으로 일을 추진했다. 라다크 사람도 아니고 그 지역 말도 모르는 의원과 주정부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일을 진행 시켰던 것이다. 비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추진된 개발은 라다크의 아름다운 문화를 한 순간에 산산 조각 내버렸다.  

이명박 대통령! 라다크로부터 배웁시다!

'녹색뉴딜 사업의 핵심은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라 4대강 정비사업이다. 4대강 및 연계사업에 2012년까지 18조원을 투입하고 경부·호남 고속철도를 조기에 개통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예산 50조원 가운데 사회기반시설 투자 관련 부문이 32조원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진정한 의미의 녹색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 연구개발 예산은 2012년까지 3조원에 지나지 않는다.'(한겨례신문  [사설] 공사판 벌이는 게 ‘녹색뉴딜’인가 /2009. 1. 7)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 뉴딜은 녹색의 가치가 빠진 개발지상주의 정책이다. 아름 다운 국토를 삽으로 파괴하여 소수의 토건 업자들의 배만 불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아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말을 한 번만 고려해 보는 게 어떨까?

호지는 책의 끝자락에서 라다크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발전, 생태적 삶을 현대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생태적 삶이라고 하면 과거 라다크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살아가는 자연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런 삶의 방식을 통해 저자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발전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개발에 시대에 생태의 가치를 곱씹어 보자! 우리 사회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되지 않겠는가!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중앙books(중앙북스)(2015)


#오래된 미래#생태#녹색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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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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