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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잡혔다'

미네르바는 현대판 신화였다. 신화가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현대판 신화가 인터넷을 통하여 재생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신화는 무엇인가 감추어져 있을 때만 생명력이 있는 것이지 모든 것이 드러나면 더 이상 신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화탄생의 요건은 사회적 위기이다. 위기의 시대에 사람들은 확실한 전망과 희망을 보고 싶어 하고, 공식적인 국가 기관의 신뢰가 무너진 바탕 위에 현대판 신화의 토양이 쌓여간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이 정확하게 지적하였듯이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은 미네르바가 아니고 정부였다. 주가 3000의 신화와 경제성장률 7%가 최고 권력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적어도 적중률에 있어선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폭등을 예측한 미네르바에 대한 신뢰가 강만수 장관을 필두로 한 정부에 대한 신뢰보다 높았다.

 검찰이 인터넷을 통해 허위 경제 위기설을 퍼뜨린 혐의로 체포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와 민주수호 촛불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국민행동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미네르바의 석방과 인터넷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검찰이 인터넷을 통해 허위 경제 위기설을 퍼뜨린 혐의로 체포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와 민주수호 촛불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국민행동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미네르바의 석방과 인터넷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30대 전문대졸 백수'... 그래서 뭐?

검찰이 공식적으로 밝힌 그의 이력이다. 틀릴 수도 있지만, 검찰이 저리도 자신만만해 하는 것을 보면 체포된 사람이 미네르바일 확률은 높아 보인다.

일부 누리꾼들이 그의 이력을 두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그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로만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율배반이다. 경제 위기 시대에 백수라는 것을 두고 그의 인격을 의심하거나 전문대 졸이라는 학력을 두고 그를 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쯤해서 우리 다시 한 번 점검해보자. 미네르바가 '30대 전문대졸 백수'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달라진 것은 하나다. 50대 이상의 증권사 경력과 해외 경험이 풍부한 경제학 전공자일 것이라는 그에 대한 이력의 추정이 깨졌다는 것이다. 거기다 이러한 추정에 일부 동조하며 자신의 경력을 왜곡한 미네르바의 거짓말 하나가 신뢰성에 영향을 줬다는 점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미네르바의 전망도 그대로이고, 정부의 전망도 그대로이다. 정부의 공신력 있는 전망은 무너졌고, 미네르바라는 일개 누리꾼의 전망은 수많은 담론의 격전장에서 생명력을 얻고 살아남았다. 격전장에서 전망의 적중도는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그 신화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갔다. 정부는 그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써야 했다.

미네르바가 증권사에 다니고 50대 이상이라는 잘못된 추정은, 미네르바 자신의 글이 아니라 '공신력' 있는 언론 기관이 익명의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미네르바의 글 솜씨와 전문성을 인정하여 그 보도를 신뢰하였다. '익명의 정보 당국자'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다른 가정을 하나 해보자. 체포된 미네르바가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증권사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을 가진 50대의 전문가였다면 언론보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역시'라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나왔을 것이고, 신화는 확대되고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마 보수 언론으로부터도 집중 조명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란 베스트셀러를 써서 일약 시골의사에서 잘 나가는 경제 전문가로 떠오른 박경철씨보다 더 인기가 좋은 칼럼니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네르바의 전문성 의심도 못한 '전문가'들

오늘 <중앙일보>를 보니 한국의 대표적 지성이라고 하는 이어령씨의 글을 필두로 하여 3회에 걸쳐서 미네르바라는 '일그러진 신화'가 왜 탄생했는지 전문가들의 분석과 대책을 연재한다고 예고하였다. 전문가에 대한 맹신을 여실히 드러내며 주류 언론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 분석하는 일밖에 없다. 분석이 맞는지는 아무도 검증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분석은 죽은 사람에게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죽었다는 사실 자체이지 왜 죽었는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자신이 있었다면, 당당하게 PC방이 아닌 자기 집에서 글을 쓰는 미네르바를 검찰이 IP추적을 하여 체포하기 이전에, 스스로 나서서 그의 글들을 읽어보니 비전문가가 쓴 글이 명백하다고 선언을 했어야 할 일이다. 지식 전문가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이제 '30대 전문대졸 백수'에 불과함(?)이 밝혀진 다음에야 비겁하게 수많은 비난에 자기 비난을 하나 얹는 일이 무슨 전문가가 해야 할 대단한 일인가?

여기서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을 떠올린다. 인터넷은 익명의 평등한 공간이라 극장의 우상이 나타날 여지가 없다. 오직 자신의 논리와 필력이 자유경쟁을 통해서 살아남으며 미네르바는 그 속에서 글로서 살아남았다.

지식 전문가들은 자신이 있는가? 계급장 떼고 오직 글과 지성으로만 사람들에게 어필할 자신이 있는가 말이다. 자신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자신의 지식과 글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치기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이명박식 코드를 지식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재화와 용역의 실물경제에만 자유시장 원리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지식에도 지고지순한 시장원리를 도입하라는 말이다. 아마도 시장에만 맡겨 놓을 수 없는 시장실패를 반대 논리로 언급할 것이다. 그 논리를 언급하는 순간 시장 원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던 보수 세력 스스로의 논리가 모순에 빠져버릴 것이다.

아마도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몇십 년에 걸쳐 공식적 교육기관을 통해 무엇보다 일류 딱지로만 쌓아온 학력이 무시당하고, 유수 언론에서 경제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공적인 언로의 힘을 가진 자신보다 '30대 전문대졸 백수'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것에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만든 정권인데 경제 문제에 휘둘리는 것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한 티를 내지 말기 바란다. 자존심은 드러내면 낼수록 더욱 상처를 입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와 교수들이 나서서 30대 백수를 비난하면 할수록 그들의 자존심은 회복되기는커녕 생채기만 더욱 커질 것이다.

미네르바를 처벌하지 말라

미네르바를 처벌하지 말라. 미네르바의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잘못은 있으되 그 잘못이 법률 전문가들이 쓰는 어려운 말로 '범죄의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가 이전에 쓴 글에서 경제 전망을 정확히 하지 않았다면, 이번 그의 글이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체포된 결정적 사유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가 아니라, 그가 글을 너무 잘 썼기 때문이다. 심기가 불편한 정권은 계속 그의 글을 주시해왔고, 꼬투리가 잡히는 순간 무시무시한 검찰권을 행사하였다.

창피하지 않은가? '30대 전문대졸 백수'라고 무시하면서 그에게 검찰권이라는 칼을 들이대는 것이 말이다. 정치인들이 구속되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표적수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당당한데, 이번이야말로 표적수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더구나 이번 일을 통해 미네르바가 사익을 취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 글에 대하여 처벌을 한다면, 악의적 보도를 하였다가 정정보도를 한 신문사도 동일한 처벌을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부인 김윤옥씨와  함께 지난 2007년 12월 19일 밤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부인 김윤옥씨와 함께 지난 2007년 12월 19일 밤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나는 언론보도를 통하여 미네르바 신드롬을 처음 접하였다. 그리고 보도를 흥미 있게 지켜봤지만 그의 전망에 대해서는 좀 심드렁하게 쳐다봤다. 그동안 경제 전망을 맞췄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전망까지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솔직히 그의 전망이 맞은 것도 우연의 일치라고 보았다.

다만 그것이 인터넷 상의 무명논객이었기 때문에 무시했던 주류 지식인들과는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랐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에 대한 완벽한 전망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 예측만큼 믿지 못할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들의 주가 예측도 공인된 기관의 경제 전망도 참고만 할 뿐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이 그렇게 잘 맞힌다면, 아마도 그들이 몇년 안 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점쟁이가 저 죽을 날 모른다'는 속담은 경제 전문가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론도 잘 알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장기적으로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폭풍우가 멎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단기간의 폭풍우에 사람이 죽어간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미네르바는 단기간의 폭풍우에 대하여 예측을 하였고, 경제 전문가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지난 몇달 간의 경제 위기에 우리가 받은 상처와 앞으로의 후유증을 생각한다면 누구의 예측이 우리에게 실용적이었는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처벌하려거든 747 내세운 정권부터 내놓든지

나는 주류언론이 그토록 미워하는 미네르바의 사기극(?)보다는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과 경제 전문가들이 암묵적으로 동조해온 사기극에 분노를 느낀다.

지난 잃어버린 10년 간 경제가 죽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747의 경제 부흥을 이룰 것이라고 우파 경제학자가 이야기해 왔다. 나는 미네르바의 이야기는 쉽게 의심하였지만, 경제전문가들의 말은 그래도 어떠한 근거가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였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내린 결론은 전문가들의 집단 사기극이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론을 득세할 때 우리 경제가 IMF 당시보다 튼튼해졌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이명박정부를 보면서 '후안무치'라는 말을 떠올렸다. 지난 10년간 경제를 망쳐놓아 경제 하부구조가 약해져서 7% 성장이 올해는 어렵겠다고 핑계를 대던 것이 누구였는가 말이다. 전문가들의 말이라고 국민들이 그 모순을 눈치 못챌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이명박 정권이 정히 미네르바를 처벌하고 싶다면, 747 공약을 내세워 10년 만에 되찾은 정권을 내놓기 바란다. 시장원리가 돌아가는 바탕은 공정한 대가의 지불이다. 747이라는 수표를 내놓고 정권을 받아갔는데, 이제 부도가 났음이 확실해졌으니 정권을 내놓는 것이 순서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미네르바를 가만 놔두어라. 7% 경제 성장과 주가 3000의 신화가 거짓이란 이야기에 딴죽을 거는 부정적 누리꾼이 보기는 싫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

바람소리에 섞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무수한 대나무들처럼, 수많은 누리꾼들이 일어나 '747은 사기야'라고 외쳐대기 시작할 것이다.

 8일 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마친 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를 둘러보고 있다.
8일 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마친 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를 둘러보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미네르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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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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