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서교동에 가면 육교 아래에 자그마한 전파사가 하나있다. 이곳은 어르신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곳이다. 한 시간여 이곳에 머물다보니 '전자제품은 무엇이든 가져오세요. 다 고쳐드립니다' 이렇게 써 붙여놔도 될 듯싶었다.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에 관한 것은 어르신들이 찾아와 묻기만 하면 부부가 척척 시원하게 다 해결해주었다.
사실 요즘 동네에서 전파사를 찾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기업의 서비스센터가 도시 곳곳에 있어서 전파사를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 사양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여수 화장동)에도 전파사가 사라진 지 꽤 되었다. 그래서 길을 지나가다 반가움에 별 용무도 없으면서 잠깐 들렀다.
스스럼없는 손님들...이제는 모두가 단골
"전파사를 보니 굉장히 반갑네요. 아직도 찾는 사람들이 있나요?"
"굉장히 많아요. 하루에 30~40명이나 찾는걸요. 장날은 어찌나 많은지 말도 못해요.""서비스센터가 있어서 전파사가 없어진 줄 알았거든요.""실은 사양 산업이라 힘듭니다. 신기술이 계속 나와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되고요. 서비스센터에서도 여기로 보냅니다. 서비스센터는 자사제품만 취급하거든요.""정말 의외네요?""비슷한 이름의 제품들이 많이 있잖아요."가게 안은 각종 전자제품들로 벽면이 빼곡하다. 믹서, 밥솥, 전기담요, 라디오, 전화기, 계산기 등 물건들이 아주 다양하다. 건전지 하나가 필요해도 어르신들은 이곳에 찾아와 일일이 다 맞춰보고 안 맞으면 돌아서고, 물건도 세세히 살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가도 나무랄 이 아무다 없다. 어르신들은 이들 부부가 이무럽게(편하게, 스스럼없이) 대해주기 때문에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할아버지 한분이 머뭇머뭇 출입문으로 들어섰다. 이내 가스히터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뭘 좀 물어보려고 왔는데 불이 안 와요.""가스통을 떼어놓고 가져오세요.""네!"할아버지는 만족한 듯 대답하며 돌아선다. 할아버지는 여수 돌산도에서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오늘 날이 많이 풀렸소.""...""대목(설) 장사 많이 했소?" "여기는 대목이 더 안 됩니다. 이제 후라이팬이나 몇 개 사가겠지요."가게 앞을 지나가는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건네곤 한다. 시골 동네 같은 분위기다. 정감이 넘쳐난다.
"정말 보기 좋네요, 정겹고...""여기는 다 단골이에요. 이녁 집같이 '뭐~ 가져갈까'하고 물어요."손님 맘 상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요
전파사의 주인장(53. 남수평)은 이곳에 둥지를 트지가 28년째란다. 부품이 안 들어가는 전자제품의 간단한 수리는 거저다. 그냥 해드리면 어르신들은 손수지은 나물, 호박, 고구마 등의 농산물을 가져와 한사코 말려도 가져다주곤 한단다.
두부를 만든다며 믹서기를 구입해 가는가 하면 전기요 수리를 해가는 이도 있다. 부부는 잠시도 쉴 짬이 없다. 손님들은 아주머니가 더 잘 고친다면서 아주머니를 주로 찾는다며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가 여간 아니라며 남씨는 아내를 추켜세운다.
'서당개 3년이면 천자문을 외운다'면서 자신 또한 기술을 배운 적은 고사하고 그 알량한 자격증 하나 없다고 한다. 그저 전자제품 고치는 것이 좋아 취미로 시작한 것이 밥벌이 수단이 된 것이다. 노모도 모셔야하는 처지이다 보니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이 일을 선택했다.
이곳 전파사를 찾는 이들은 주로 어르신들이다. 물건에 대해 묻고 또 묻고, 어르신들은 궁금한 게 뭐가 그리도 많을까. 어쩌다 약주라도 한잔 걸치고 찾아온 어르신은 정말 대하기가 힘들다고. 곁에서 지켜보니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고서는 어르신들을 일일이 상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아보였다. '옛말에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더니 언뜻 그 말뜻이 이해가 되는듯했다.
아침 8시 30분경에 가게에 나왔다는 그의 아내는 오후 3시 무렵에 목이 쉬었다. 얼마나 말을 많이 했기에 그랬을까 싶기도 했지만,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답해주는 걸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지칠 법도 한데, 이들 부부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손님 맘 상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부부의 환한 미소가 정말 아름답다.
재물이라는 게 평등하기가 물과도 같다고 하더니, 자고로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인가보다. 지난 28년간의 숨은 노력이 알게 모르게 쌓여 어느덧 소중한 무게로 그들 부부에게 기쁨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