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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아침, 추적추적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는 집 앞 가로등 위에 나란히 자리 잡은 정체모를 새 일곱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집 앞 가로등 위헤 나란히 자리 잡은 정체모를 새 일곱마리
집 앞 가로등 위헤 나란히 자리 잡은 정체모를 새 일곱마리 ⓒ 염창렬

 

아침 준비로 분주하신 어머니를 모시고와 이 재미난 광경을 보여 드리며, 분명 까치가 그것도 일곱마리가 집 앞에 왔다는 건 분명 길조라며 아침부터 기분좋게 모자가 대화를 나누웠다.

 

흐릿한 날씨에 바람에 흩날리며 여기저기 갈피를 못 잡고 내리는 빗방울에 자세히 새 종(種)을 확인하기 어려워 디지털 카메라로 줌인을 해 보고자 사진에 담아봤다.

 

 그 새들의 정체는 돼둘기(돼지+비둘기)였다.
그 새들의 정체는 돼둘기(돼지+비둘기)였다. ⓒ 염창렬

 

애석하게도(?) 길조인 까치가 아니라 비둘기 아니 비대해진 몸매를 빗대어 표현한 돼둘기(돼지+비둘기)들 이였다.

 

희뿌연 하늘만큼이나 칙칙한 회색빛의 비대한 몸을 가진 비둘기가 추적추적 차가운 겨울비를 피할 처마를 찾지 못하고 애처롭게 가로등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언젠가부터 도심 공원에서 비둘기의 힘찬 날개짓을 볼 수 있었다. 순백색의 눈부신 비둘기의 힘찬 날개짓은 평화의 상징인 만큼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둘기는 그 깃털과 변, 냄새로 공원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었고 그 관리도 소홀해져 하나둘씩 공원에 마련된 보금자리를 떠나 사람들의 일상속으로 스며 들었다. 어차피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낸 보금자리가 아니였기에 떠나는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지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떠난 비둘기를 이제 굳이 공원을 찾지 않아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은 눈부신 순백색의 그들이 아니였다.

 

터진 봉투 사이로 쏟아져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연신 쪼아먹고 사람이 바로 옆에 지나가도 겁내하거나 피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차가 무섭게 달리는 대로 주변에도 버젓히 유유자적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렇게 먹고 날지 않아 비대해진 몸과 더불어 오염에 찌든 회색빛 하늘만큼이나 짙은 회색빛 기운을 띄고 점점 무채화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둘기들을 비난하고 돌을 던질 수 만은 없다. 그들은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공간을 빼앗기고 강제적으로 한 곳에 몰아 넣어졌다. 사람들은 손바닥과 손등이 양립해야 하나의 제대로 된 손이 된다는 이치를 망각한 체 그들의 아름다운 한쪽면만 부각시켜 즐겨오다 그 깃털과 변, 냄새가 싫어 그들을 비난하고 멀리 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객(客)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겐 인간과 같은 욕구와 욕망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은 높은 창공을 가르며 보금자리를 짓고 자신의 새끼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갈 뿐 인간들처럼 부와 명예에 눈이 멀어 다른 비둘기를 약탈하거나 해(害)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인간 세상에 어쩔 수 없이 스며들어 살게 됨으로서 날렵했던 몸은 비대해지고, 눈부셨던 깃털은 회색빛을 띄게 된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다고 그 말이 사람은 사람끼리만 있어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 역시 다른 동물들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다. 망가질려면 차라리 혼자 망가지자. 이제라도 그들에게 우리가 불법적으로 점유했던 그들의 공간을 돌려 줘야 하지 않을까.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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