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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산길에 잔설이 쌓였다.
▲ 수종사 가는 길 호젓한 산길에 잔설이 쌓였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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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움'이 그리울 때면 나는 가끔 수종사(경기 남양주시 조안면)를 찾는다. 산 중 깊숙한 곳에 숨겨진 작고 아담한 이 절은 유서도 깊다. 절이 만들어진 연대가 자세하지 않고 다만 세조에 의해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자료를 통해 전해진다.

수종사의 창건 신화 역시 세조와 관련이 깊다. 금강산을 다녀오는 길에 날이 저물어 지금의 두물머리 인근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된 세조의 귀에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다음날 종소리의 근원을 찾아가 보니 깊은 숲 속 동굴이 있었고, 암반에 물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 자리에 16나한이 모셔져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세조는 16나한을 모시는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은 친히 수종사라 칭했다. 수종사의 유래가 된 장소였던 동굴은 지금 볼 수 없다. 그 자리에 16나한에 두 분의 나한을 더 모신 응진전이 자리한다. 수종사에 들어서면 왼쪽 마지막 건물이 응진전이고 오른쪽으로 산신각과 약사전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절의 가운데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곳에 절의 규모에 맞게 아담한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대웅보전과 요사체 중간에 세 개의 탑과 부도가 자리해 있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 무너지고 전소된 공간을 20세기에 새롭게 건축한 수종사 건물 틈에서 현재 남아 있는 오롯한 옛 유물들이다.

수종사 일주문 지나 만나는 명상의 길. 
그 길 저 쪽에 관음보살이 내려다 보신다.
▲ 명상길 수종사 일주문 지나 만나는 명상의 길. 그 길 저 쪽에 관음보살이 내려다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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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가 분주해졌다. 절의 유래가 된 나한전(응진전) 앞에
분수대 같은 시설물도 들어서고
▲ 분수대? 수종사가 분주해졌다. 절의 유래가 된 나한전(응진전) 앞에 분수대 같은 시설물도 들어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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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스님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태종의 5녀인 정의옹주부도비와 안정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어여쁨으로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수종사다층탑이다.

수종사는 절 한가운데는 요사체가 들어서 있고, 그 유명한 두물머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당이 요사체 앞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다른 사찰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에 불과할 마당을 '넓다'고 표현한 건 수종사가 어디까지나 산 속 깊은 절 벼랑 위에 지어진 절이기 때문이다. 수종사는 작고 아담한 절이다. 절의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당이 넓다는 의미다.

수종사 절 마당이 넓은 이유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지점인 두물머리를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함이다. 마당 한쪽엔 수종사의 유명한 약수로 끓인 차를 마시며 쉬었다 갈 수 있는 삼정헌이 자리한다. 삼정헌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내려다본 두물머리도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나란하다. 다만, 이제 그런 여유를 부리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유감이다.

수종사를 수종사이게 하는 옛 유물, 
정의옹주부도비와 수종사다층석탑이 사이좋게 서 있다.
▲ 탑과 부도 수종사를 수종사이게 하는 옛 유물, 정의옹주부도비와 수종사다층석탑이 사이좋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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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수종사를 찾는 손님들이 늘었다. 지난달 개통한 '운길산역(중앙선)' 때문이다. 편리한 접근성이 수도권 주민들을 불러 모았던 모양이다. 주말이면 운길산과 수종사에 제법 길손들이 찾아 들었지만, 오랜만에 찾아간 일요일(18일)에 북적대던 인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차량도 늘었다. 송촌리 입구에 임시로 만들어진 주차장에서 부터 수종사까지 산길 양옆은 주차장이 따로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온 이들의 긴 행렬에,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차량들까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고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도 "별 날이 아니다"는 시큰둥한 답변을 들었다.

급경사를 지나가던 차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 
산속은 아수라장이 되고
▲ 큰 일 날뻔. 급경사를 지나가던 차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 산속은 아수라장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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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유명세를 타고 있는 운길산과 수종사가 지하철역 개통과 함께 더 큰 변화를 몰고 오는 징조인가. 썩 좋은 징조가 아니듯. 아수라장 같던 산길에서 드디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한 방문자가 무리하게 차를 몰고 가다가 산길을 이탈해 산 아래쪽으로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사람은 많이 다치진 않았으나 몇 개의 나무가 부러졌고 구조차며 견인차에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고요해야 할 산이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편의를 위해 수종사까지 산길을 포장해 놓았는데 의외로 경사가 급하다.

급한 경사 길에 지그재그 포장길을 내놓았으니 사람이 올라가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길이 자동차라고 쉬울 리 없었던 것이다. 운길산 들머리에서 수종사까지 약 2km 구간, 좀 걸어가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 좋은 산 걸으면서 운동도 하고 명상도 하고 가면 좀 좋을까 싶은데 걷는 건 귀찮고 절에는 가야겠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태그:#수종사, #세조,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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