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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창고? 까고 남은 굴, 바지락을 저장해 두는 곳, 갑자기 내리는 눈,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움막? 창고?까고 남은 굴, 바지락을 저장해 두는 곳, 갑자기 내리는 눈,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 김형만

1994년 완공된 17.7km 시화방조제와 대부도를 거쳐 301번 지방도로를 따라 선감도(탄도, 전곡항)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대부도와 선감도를 잇는 대선방조제가 나온다. 대선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한 쪽은 탁 뜨인 서해 바다고, 다른 한 쪽은 거대한 시화호 간척지다.

대부도(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 대선방조제 앞 마을 입구 한편에 한 겨울 추위도 잊은 채 모닥불에 시린 손을 녹이며 굴을 까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은 대부분 대부도에서 나고 자란 본토박이들이다. 이 글은 한 평생 대부도앞 바다에서 바지락, 굴 등 각종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오신 분들 이야기다.

필자가 도착했을 때는 지나는 차도 별로 없고, 손님도 없어 한산했다. 날씨는 봄 햇살처럼 따스한 태양이 비추고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겨울철 바닷가 추위는 매서웠다.

대부도와 함께 한 '갯꾼' 할머니들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도로가에 자리를 잡은 움막(창고) 앞에는 몇 개의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1년을 하루 같이 이곳에서 바지락과 굴을 까서 파는 마을 주민들이 시린 손을 녹여가며 시끌벅적하게 입담을 풀고 있었다.

이분들 연령은 70세부터 85세까지 고령이다. 할머니들 나이는 곧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인고의 세월, 그분들만의 갯벌 경력인 셈이다. 물론 여기 계시는 분들이 다 70, 80대는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난 필자를 보고 손님인 줄 알고 여기저기서 "굴, 바지락 젓 좀 사가세요!" 한다.
멋쩍은 웃음을 띠며 잠시 서 있는데 눈치 빠른 할머니 한 분이 카메라 가방을 보고 "손님 아니야! 보니까 사진 찍으러 온 것 같은데……. 요즘 여기저기서 사진 찍으러 많이 오네, 어디서 오셨소?"하며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필자가 간단한 소개를 마친 후 "이곳을 지나다 보니 굴 까는 모습이 보기 좋아, 사진도 찍고 사시는 이야기도 듣고 싶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 찍을 게 뭐 있다고……. 기왕 찍는 거 우리 장사 좀 잘 되게 잘 (홍보) 좀 해줘요……. 요즘 장사가 잘 안 돼서 힘들어. 겨울철 번번한 돈 벌이도 없고, 이거라도 잘 돼야 긴 겨울나고, 먹고 살지……"라며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모닥불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 찬 겨울바람에 손과 발이 시려…….
모닥불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 찬 겨울바람에 손과 발이 시려……. ⓒ 김형만

굴 요즘 손님이 없어…….오늘 중으로 다 팔 수 있을 런지…….
요즘 손님이 없어…….오늘 중으로 다 팔 수 있을 런지……. ⓒ 김형만

하루 평균 3만원 벌이, 어떤 날은 개시도 못해

이분들은 대부도 갯벌에서 굴과 바지락을 채취해 생활한 지 50년 이상 된 '갯꾼'들이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해떨어지기 전)까지 눈비가 오거나 몸이 아픈 날을 빼곤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장사를 한다. 장사를 하면서 하루 버는 돈은 평균 3만원, 단골손님이 찾아오는 날은 5만~6만원의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어떤 날은 개시도 못하고 들어가는 날도 있다고 한다.

특히 날씨가 추은 날엔 찾는 손님이 떨어져 빈손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73세의 장아무개 할머니는 여기서 굴 까는 일에 대해 "이거 상노동이야! 젊은 사람은 못해!"라고 표현하신다.

겨울철 밖에서 바지락을 까면 손이 시렵기 때문에 낮에는 모닥불 피워놓고 굴만 까서 판다. 저녁에 장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다음날 장사를 위해 또 바지락을 까야 한다. 단골손님이 오는 날은 전화로 주문한 양을 맞추어야 하기에 따뜻한 아랫목의 유혹도 뿌리치고 밤잠을 설쳐가며 고된 일을 해야 하니 몸이 항상 피곤하다고 한다.

피곤하면서도 이곳에 나온다. 힘들다고 못하게 말리는 자식들 걱정을 알면서도 이곳에 나와 굴을 까는 이유가 한 분 한 분 다 있다. 그분들 이야기를 잠시 들어 봤다.

"각종 공과금, 세금은 우리가 벌어서 내야지. 이런 거까지 애들에게 부담시키면 안 되지. 경제가 어려워 다들 먹고 살기 힘든데 우리가 좀 도와 줘야지"라는 할머니. 몸은 힘들어도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과 따뜻한 배려가 한 겨울 추위도 잊게 해준다.

84세의 장씨 할머니  집에 있으면 뭐해 증손자들 용돈이나 벌어야지…….
84세의 장씨 할머니 집에 있으면 뭐해 증손자들 용돈이나 벌어야지……. ⓒ 김형만

굴까는 모습 이씨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길었던 인생의 여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굴까는 모습이씨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길었던 인생의 여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 김형만

장씨 할머니는 "이제는 눈이 잘 안 보여 굴 까는 것도 힘들고, 자식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 하는데 좀이 쑤셔서 있을 수 있어야지……. 여기 나와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또 손자, 증손자에게 줄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주름살이 굵게 패인 얼굴이지만 그 모습이 18살 소녀의 앳된 얼굴보다 예쁘시다.

황해도가 고향이신 정아무개 할머니는 7살에 피난 내려와 이곳에서 정착해 15살부터 갯일을 시작하셨다. 힘은 들었지만 자식들 교육도 시키고, 출가도 시켰다고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나 이거 해서 우리 아들 대학원까지 보냈다오."

이아무개 할머니는 "자손들 반대가 심하지만, 일 년을 하루 같이 몸 아픈 날 빼고 나온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이 나이 먹고 내 손으로 직접 내가 쓸 용돈도 벌고, 보약도 해먹고 한다. 오늘도 누워 있다 좀 늦게 나왔지만 이곳에 나오니 기분도 좋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이곳에 앉아 바지락과 굴을 까느라 등이 휘었다는 장씨 할머니와 이씨 할머니는 등이 굽어 걷는 것도 힘에 겨운데 늘 이곳에 나와 일을 하신다. 주위 분들도 그런 할머니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누룽지 모닥불위에서 누룽지가 끓고 있다.
누룽지모닥불위에서 누룽지가 끓고 있다. ⓒ 김형만

점심식사 점심은 간단히 끓인 누룽지와 깻잎 반찬, 김치로 간단히 해결합니다.
점심식사점심은 간단히 끓인 누룽지와 깻잎 반찬, 김치로 간단히 해결합니다. ⓒ 김형만

시간은 오후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장기를 느꼈던지 한 분이 모닥불 위에 누룽지를 올려놓는다. "벌써 밥 때가 되었네!" 한 분이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누룽지가 모닥불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그래도 좀 젊은 할머니가 빈 그릇에 누룽지를 나누어 담아 팔십이 넘으신 왕 할머니 세 분에게 나누어 드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누룽지에 김치를 올려 한 그릇 뚝딱 비우신다.

따뜻한 방의 잘 차려진 밥상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 끼 식사를 나누며 서로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정이 따뜻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80대 중반 넘은 왕할머니, "20여년 전엔 갯벌에 해산물 넘쳐났지"

굴을 까는 분들 중에 연세가 가장 높으신 분이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주변 분들이 80세 중반을 넘었다고 해 일명 '왕할머니'로 통한다고 한다. 이 분 말고도 위에서 소개한 장씨 할머니, 이씨 할머니가 연세가 많다.

굴까는 모습 내 나이가? 나이는 알아서 뭐해…….  나는 나이를 잊고 살어…….
굴까는 모습내 나이가? 나이는 알아서 뭐해……. 나는 나이를 잊고 살어……. ⓒ 김형만

기억속의 어장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씀을 하신다 - “난 힘도 없어 잡지도 못하지만, 여기는 잡을(어장) 곳이 없어!”
기억속의 어장일상적인 대화보다는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씀을 하신다 - “난 힘도 없어 잡지도 못하지만, 여기는 잡을(어장) 곳이 없어!” ⓒ 김형만

젊은 사람들이 동네에서 벌어먹어야 하는데 일거리가 없다며 20여 년 전 갯벌에 바지락과 굴, 각종 해산물이 넘쳐나던 때를 회상하시면서 속내를 말씀하셨다.

어촌에 사는 사람들은 직접 갯벌(어장)에서 잡아온 굴과 바지락을 어촌계에 넘기거나, 팔기도 한다. 그런데 이분들은 사정이 달랐다. 이분들이 그리던 기억 속 갯벌은 1987년 6월 착공하여 탄도, 불도, 대선 방조제의 완공에 이어 1994년 17.7km의 시화방조제를 완공하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대선방조제를 중심으로 한쪽은 거대한 간척지, 한 쪽은 바다다. 그때부터 이 분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직접 해산물 채취는 못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일부 어장에서 잡아온 굴과 바지락을 산 뒤, 까서 판다고 한다.

수자원공사에서는 간척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지역 주민들에게 보상금을 주었다가 원금에 이자까지 해서 되돌려 받았다고 하며, 대안책으로 간척지를 개발해 주민들에게 분할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언제 분할될지 모르는 간척지를 바라보며 20여년이란 세월을 보내왔다.

간척지가 된 지 20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부작용도 생긴다. 과거 바지락이나 굴을 채취해 높은 소득을 올리던 대부도 주민들이 방조제가 설치된 후 어획량이 감소해 생계에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섬이었던 대부도와 육지를 잇는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조류 흐림이 바뀌어 갯벌 표면 퇴적현상이 심각해졌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연안 생태계복원을 위해서는 방조제를 개방하고 육교를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주민과 대선방조제 구역 부지관할은 한국농촌공사에 있기 때문에 수자원공사에서 처리할 명분이나 권한이 없다며 '육교화 불가' 원칙을 내세우는 수자원공사 측이 맞서고 있다.

방조제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민들 주장과 수자원공사측의 팽팽한 대립은 2009년 1월 초에 각 언론사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장씨 할머니는 "(간척지를 가리키며) 수자원에서 저 땅을 개발해서 주민들에게 분할해 준다고 했는데 20년이 넘었는데도 아무런 소식도 없고 저렇게 갈대만 자라고 있네. 바다에서 할 일이 없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다 나가고 늙은이들만 남았지…. 저기에 바지락이 그렇게 많았는데 동네 사람들 거지 만들었어! 내가 살아 있을 때 저 땅을 받을 수 있을는지…"라고 말했다.

"배 다니고 바지락 나던 그때가 좋았지"

가슴에 담은 말을 하시던 할머니, 묵묵히 간척지를 바라보며 배가 다니고, 바지락, 굴, 각종 해산물이 넘쳐나던 때를 기억하시며 씁쓸해 하셨다. 하루 빨리 지역경제가 좋아져 우리 같은 늙은이나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일 안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나마 지금 하는 일(굴 까서 파는 일)이 잘 되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돈 많이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잘 좀 부탁하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고된 일을 몸 아픈 날을 빼고는 자리를 지키신다는 할머니들. 하나 같이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셨다. 당신 손으로 세금도 내고, 보약도 해 드시고, 손자들 용돈도 주시겠다는 마음으로 나온다고 한다. 비록 그 분들이 기억 속에 그리던 어장이 사라져 인근 어장에서 채취한 굴과 바지락을 팔고 있지만 "오염되지 않은 대부도의 어장에서 나온 싱싱한 해산물"라고 당당히 말한다.

더위와 추위를 이겨가며 고생해온 날들 동안 등은 휘고, 얼굴엔 굵게 주름이 패었지만 할머니들 모습 속에서 올 겨울 추위를 녹일 만한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몇 해가 지나도록 항상 같은 곳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 서로 격려하고, 보듬어 주고, 아껴주는 할머니들이 행복해 보이는 시간들이었다.

건강이 허락되는 한 이 일을 하고 싶다던 할머니, 몸은 힘들어도 집에 있는 것보다 이곳에 나오면 즐겁다는 할머니, 불에 구운 굴을 직접 찍어 입에 넣어주시며 "우리 굴 싱싱해! 맛있어"라 하시던 할머니, 18세 소녀처럼 부끄러운 미소를 지어 주셨던 할머니, 굴 까서 "우리 아들 대학원까지 보냈소!" 자랑하시던 할머니……. 올해도 돈 많이 버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필자를 향해 "다음에 올 때는 우리 굴 꼭 사가"라고 외치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뉴스,신문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선방조제#굴까는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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