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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표류한다. 사람들이 뭔가 신실한 이정표를 바라보고 나가야 하건만 도무지 경제 외에는 관심이 없다. 나라님도 먼 앞날보다는 바로미터만 볼 뿐이다. 그 아랫사람들도 영혼 없는 육신덩이처럼 떠받칠 뿐이다. 사회 시스템도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을 위해 재조직되어야 함에도 소수 기득권자들의 욕망대로 재편될 조짐이다.

 

가장들은 IMF때처럼 구조조정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릴 판이다. 아내들도 아이들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온갖 굴욕도 마다하지 않는다. 20대들도 자기 개성을 살리는 직장보다 안전하다는 대기업에만 목숨을 건다. 유학을 가지 않아도 이 땅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건만 시계는 자꾸 거꾸로 간다. 학생들 자율에 현장체험학습을 맡긴 선생님들이 강단에서 내 몰린 판국이니 오죽하겠는가?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싱어 송 라이터 시대는 막을 고했다. 가수로 데뷔하는 것도, 음반을 내는 것도 모두 대형 기획사를 통해야만 가능한 시대다. 들을 노래들은 자연히 없어지고 대부분 리메이크만 판을 친다. 영화나 책을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창의성보다는 경제 감각에 편승하는 것들만 다량으로 쏟아진다.

 

허지웅의 <대한민국 표류기>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대한민국 전체의 현 주소를 읽어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의식이나 분수와는 상관없이 오직 경제 감각에 편승한 채 소수 기득권 층 반열에 오르려 하거나, 그들로부터 김칫국이라도 마셔보려는 대한민국 얼빠진 사람들의 헛된 꿈을 적나라하게 지적해준다.

 

그는 20대 청춘을 방 한 칸 고시원에서 시작하여 4년 동안을 버텨냈고, 여러 일자리를 통해 돈을 조금 마련했을 때에는 반 지하 전세방을 찾아 또 옮겨 다녔다. 엄마 찾아 삼만 리 하듯 자기 살 집을 찾아 삼만 리 한 셈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머무는 집이 뉴타운 세입자와 같은 처지라면 화형 당한 그 주민들의 고통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필름2.0>과 <GQ>라는 영화 쪽 잘 나가는 기자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강남의 삐딱한 좌파'라는 견해 때문에 오래도록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태생적으로 생각이 다른 남과 함께 살을 붙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비록 귀족처럼 멋 부리고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넉넉한 형편이라 할지라도 그 생각이 너무 불합리한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언론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 역시 사뭇 공격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배우 최민수와 노인 유씨 사이에 일어난 일을 진실이 아닌 이슈로 부각시키려고 한 언론사들의 왜곡보도가 도를 넘어선 이유였다. 나 역시 사실에 근거한 허지웅의 정확한 글을 읽지 못했더라면 영영 <테러리스트>의 최민수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언론사들의 작태는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류 신문사들은 MBC의 광우병 방송과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촛불집회에 대해 색깔론까지 펼쳤다. 그러면서도 신문사와 대기업의 '신방겸영'만 성사된다면 여러 일자리 창출로 획기적인 '경제 살리기'가 가능하다고 떠들어대고 있지 않던가?

 

"비리와 조작과 뒷거래를 총동원하든가 말든가 의사가 병만 잘 고치면 되지, 라는 생각이나 비리와 조작과 뒷거래를 총동원하든가 말든가 대통령이 경제만 잘 살리면 되지, 라는 생각이나 똑같이 닮은 꼴이다. 요컨대, 이것이 지금 이 시간 대한민국의 허공을 가르며 현실을 지배하는 공기이고 틀이고 패러다임이다."(167)

 

이는 허지웅이 지난 대선 전에 들여다봤던 <장준혁과 이명박>의 프레임인데, 그것이 지금까지도 드러나고 있으니 대한민국 모습이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허지웅의 말 그대로 신자유주의의 가치를 좇은 이명박 정부가 시민의 삶을 볼모로 특정 집단의 사익을 챙기면 챙길수록 대한민국은 더욱더 표류할 것이 뻔하다. 그 또한 암담할 뿐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표류기가 끝날 시점은 언제일까? 어제(30일) 저녁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서 밝혔듯이 내년이 되면 대한민국의 표류가 끝나고 원상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아니면 앞으로 3-4년은 더 걸릴까?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표류기의 끝은 대통령과 그 장수들에게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을 선택한 보통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표류기는 그 끝을 영영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허지웅이 <브이 포 벤데타>를 보며 가슴에 와 닿았다는 브이의 말은 대한민국의 표류기에 몸을 싣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가슴에 잔잔한 각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고, 신실한 이정표가 어디에서 발현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물론 국가가 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거기 앉아 TV를 보고 있는 여러분이죠. 바로 여러분이 방임했기 때문입니다."(196쪽)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수다(2009)


태그:#대한민국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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