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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장(長江) 싼샤(三峽)  6,300km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중국 최대의 강 창장, 그 창장의 꽃 싼샤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진하게 녹아 흐른다
창장(長江) 싼샤(三峽) 6,300km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중국 최대의 강 창장, 그 창장의 꽃 싼샤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진하게 녹아 흐른다 ⓒ 김대오

중국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위치우위(余秋雨)는 중국에서 가장 흥미롭고 꼭 가볼 만한 곳으로 창장(長江)의 꽃인 ‘싼샤(三峽, 세 협곡이라는 의미로 창강 상류에서부터 취탕샤 瞿塘峽, 우샤 巫峽, 시링샤 西陵峽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충칭(重慶)에서 싼샤 댐까지 약 600km의 물길은 이제 펑퍼짐한 호수로 변모해 그 힘찬 기세와 아름다움이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초행의 나그네에겐 여전히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싼샤는 바로 이백, 두보, 소식, 백거이, 육유, 범중연 등 수많은 문인들이 유랑하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곳이자 또 유비, 제갈공명, 관우, 장비 등 장수들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한 쟁투를 벌이던 전쟁터였으며 또 굴원, 왕소군 등이 태어난 포근한 고향이기도 하다.

<삼국지>의 첫 구절처럼 도도히 흐르는 창장 위에 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졌을 그 수많은 영웅들의 이름을 미처 다 기억에 담기도 벅차다. 빼어난 인물들과 수 천 년의 역사와 뛰어난 경관들을 껴안고 진흙 빛으로 흐르는 그 강을 이제 나도 따라 흘러간다.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유람선은 그 큰 몸집만큼이나 호화롭고 주도면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부두에는 기악합주단이 승선을 환영해주고 5성급 호텔수준급의 객실에 베란다로 나가면 바로 창장(長江)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더위에 지친 연수단에게는 더 없는 휴식과 풍류를 즐기는 기회가 되었다.

유람선에 올라 방을 배정받자 선생님들은 단체로 구입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삼삼오오 객실에 모여 오랜만에 여흥을 즐긴다. 선내 첫 미팅에 갔더니 서양인 영업팀장은 영어로, 중국인 통역은 중국어로 직원들을 소개하고 또 선내에서의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멀어지는 충칭(重慶)의 불빛들 유람선은 충칭을 떠나 싼샤댐까지 약 600km를 여행할 예정이다.
멀어지는 충칭(重慶)의 불빛들유람선은 충칭을 떠나 싼샤댐까지 약 600km를 여행할 예정이다. ⓒ 김대오

배는 상현달의 배웅을 받으며 펑퍼짐해진 창장의 흐름에 육중한 몸을 맡긴 채 유유히 어둠이 깊어가는 충칭을 벗어난다. 충칭의 화려한 야경은 점점 어둠에 묻혀 멀어지고 강을 오가는 선박들의 불빛만이 검은 물줄기를 잠시 출렁였다가 이내 암흑 속에 사라진다.

빅토리아 호는 앞에는 밝은 서치라이트를, 옆으로는 가느다란 불빛으로 양쪽 해안을 확인하며 마치 등을 들고 어둠을 더듬으며 걸어가듯 느릿한 항해를 계속한다. 다음날 아침 펑두(豊都)에 이르러 잠시 닻을 내리고 휴식을 맞이하였다.

아침을 먹는 사이 배에서 펑두의 부두까지 가교가 설치되었고 승객들은 그 가교를 통해 펑두에 내렸다. 부두 바로 뒤로는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문다는 꿰이청(鬼城)이 있었으나 그곳은 서양 관광객들이 가고 우리 연수단은 강의 맞은편 계곡에 있는 쉬에위똥(雪玉洞)이라는 석회암 동굴로 향했다.

펑두(豊都)에 도착한 유람선 배가 정박한 곳은 바로 다큐멘터리영화 <양쯔강을 따라서(沿江而上)>의 주인공 가족이 살다가 수몰된 집이 있던 바로 그 지점이다.
펑두(豊都)에 도착한 유람선배가 정박한 곳은 바로 다큐멘터리영화 <양쯔강을 따라서(沿江而上)>의 주인공 가족이 살다가 수몰된 집이 있던 바로 그 지점이다. ⓒ 김대오

펑두는 바로 오승은의 <서유기>의 제 10회와 11회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자, 유람선이 정박한 곳은 중국계 캐나다인 감독 장차오용(张侨勇)의 다큐멘터리 영화 <양쯔강을 따라서(沿江而上)>의 주인공 가족이 살다가 수몰된 집이 있던 바로 그 지점이며 부두의 비탈과 계단은 주인공 가족이 수몰 직전 살림살이를 어깨에, 머리에 짊어지고 힘겹게 오르던 그 비탈이여서 감회가 새롭다.

소식은 <핑두산(平都山, 펑두산의 옛 명칭)> 이라는 시에서 “비둘기 울음소리에 낮잠 깨고, 이른 아침 일 서두르는 사슴을 듣네(午梦任随鸠唤觉,早朝又听鹿催班)” 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과연 어느 누가 삶의 터전과 고향을 수장(水葬) 당한 수많은 농민 비둘기들의 울음소리와 고단하고 비탈진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슴 같은 민초들의 바동거림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조금씩 비가 오는 펑두의 아침은 창장을 사이에 두고 양안(兩岸)의 풍경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한쪽은 폐허가 되어 물에 잠긴 귀신의 도시이고 다른 한쪽은 창장을 발아래에 둔 번듯한 신도시가 어깨를 으스대고 있으니 말이다.

꿰이청(鬼城)의 염라대왕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문다는 꿰이청(鬼城)은 이제 그야말로 물에 잠겨 유령의 도시가 된 듯하다.
꿰이청(鬼城)의 염라대왕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문다는 꿰이청(鬼城)은 이제 그야말로 물에 잠겨 유령의 도시가 된 듯하다. ⓒ 김대오

버스가 산 전체를 하얗게 뒤덮은 염라대왕상이 있는 꿰이청을 뒤로 하고 1992년 완공되었다는 다리를 건너 신도시에 들어섰다. 현지 가이드는 생활환경이 훨씬 깨끗해지고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하지만 과연 수몰지역의 농민들이 정부보상금만으로 저곳에 입주할 수 있었을까?

설령 입주를 했더라도 저 신도시에 입주한 농민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저 성냥갑 같은 공간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까? 밤새 내린 비로 도로 곳곳이 무너져 내린 산길을 버스가 달리는 동안 이런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갑자기 불어난 진흙탕물이 세차게 흐르는 창장의 지류인 롱허(龍河) 위로 ‘청산은 늘 그곳에 있으니 맑은 물이 영원히 흐르게 하라(靑山常在 讓綠水長流)’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싼샤(三峽)댐으로 창장의 물줄기를 막아 200만 명을 이주시킨 중국정부가 아무래도 문구를 잘못 골랐지 싶다.

석회암동굴 쉬에위똥(雪玉洞) 여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샤워를 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석회암동굴 쉬에위똥(雪玉洞)여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샤워를 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 김대오

40여 분을 달려 쉬에위똥에 도착했다. 최근에 개발된 쉬에위똥은 동굴 내 종유석의 80%가 눈처럼 하얗고 옥 같은 재질을 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총 길이 1,644m 중 1,166m가 관광객에게 개방되고 있는데 국내에서 보는 석회암 동굴과 흡사해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곳곳에 바위를 타고 흐르는 작은 폭포들과 산허리에 구름인지 안개인지 하얀 띠를 두른 협곡의 산세가 훨씬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창장을 둘러싼 이 협곡의 절경들은 어쩌면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다 헤쳐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배로 돌아오는 길에 펑두 시내에 들러 포도, 복숭아 등의 과일을 사는데 과연 시골이라 값이 저렴하다. 주민의 80%가 농업에 종사하다 보니 농산물 값이 쌀 수밖에 없다. 한 사내는 진흙탕 길을 걸었는지 흙이 덕지덕지 붙은 신발을 구두닦이에게 내밀고 거만하게 앉아있다. 중국의 빈부격차를 절감하게 하는 이 상징적인 장면을 펑두에서 직접 목격하게 된다. 싼샤댐 건설로 인한 서민들의 어쩔 수 없는 이주는 현지 주민들의 빈부격차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싼샤댐 건설로 가중되는 빈부격차 진흙이 덕지덕지 붙은 신발을 구두닦이에게 내밀고 있다.
싼샤댐 건설로 가중되는 빈부격차진흙이 덕지덕지 붙은 신발을 구두닦이에게 내밀고 있다. ⓒ 김대오

배를 타는 부두에는 어느새 인근 마을 상인들과 걸인들이 잔뜩 모여 관광객의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필요한 물건을 산 터라 살 것이 없다고 해도 상인들은 막부가내로 달라붙는다. 간신히 뿌리치고 가는데 이번에는 키가 작은 꼬마가 옆에 붙어서 계속 손에 든 포도를 자기에게 주면 안 되느냐고 거머리가 된다. 몇 번의 “슈슈, 쏭게이워 뿌싱마?(叔叔, 送給我不行嗎? 삼촌, 저에게 주면 안 돼요?)”에 마음이 약해져 들고 있던 15위엔(약 3천원)어치의 포도를 주었더니 쏜살같이 사라진다.

유람선을 타고 신선놀음하듯 노닐면서 창장가의 빈곤과 촌스러움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가슴 아파하며 다가서려 해도 결코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일 뿐이다. 꼬마에게 포도를 주고 괜히 큰 선행이나 베푼 듯 하는 스스로가 참 부끄럽고 유람선의 분에 넘치는 호화호식이 조금은 그들에게 미안하다.

정원순 선생님은 시안(西安)에서 아들에게 주려고 샀던 연을 선상 갑판에서 날렸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금방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결국 아들에게 주려던 연을 창장의 흙탕물에 던져주고 만 셈이었지만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끊어진 연이 물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인구 170만 명의 완저우(萬州)시 유람선을 타고 밖으로 서서히 흘러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편안하고 다양한 감상에 젖게 한다.
인구 170만 명의 완저우(萬州)시유람선을 타고 밖으로 서서히 흘러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편안하고 다양한 감상에 젖게 한다. ⓒ 김대오

유람선은 펑두를 벗어나 완저우(萬州)을 지나, 하늘을 깁던 오색 빛깔의 돌 중 실수로 지상에 떨어져서 되었다는 스바오자이(石寶寨)를 지난다. 강가에는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많은 역사유물들과 더 가파른 산비탈로 주거지를 옮긴 농민들의 고달픈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유람선에서는 선장이 초대한 칵테일 파티와 생일 축하 파티에 이어 천수관음, 전통가무, 전통의상 패션쇼 등 환영공연까지 다채롭게 이어졌다. 창장에는 어둠이 내렸고 유람선은 765년 두보가 요양했으며, 부하 장달과 범강에게 살해되는 장비의 사당이 있는 윈양(雲陽)을 지나 펑지에(奉節)의 옛 지명이 새겨진 퀘이먼(夔门) 대교를 지난다.

퀘이먼 대교의 야경 궈모뤄(郭沫若)는 “쓰촨 사람은 퀘이먼을 벗어나지 않으면 큰 그릇이 되기 어렵다(川人不出夔門,難成大器)”고 하였다. 유람선이 퀘이먼을 벗어나고 있다.
퀘이먼 대교의 야경궈모뤄(郭沫若)는 “쓰촨 사람은 퀘이먼을 벗어나지 않으면 큰 그릇이 되기 어렵다(川人不出夔門,難成大器)”고 하였다. 유람선이 퀘이먼을 벗어나고 있다. ⓒ 김대오

퀘이먼은 싼샤의 꽃인 취탕샤(瞿塘峽)의 관문으로 강북에 빨간 비늘 산인 츠쟈산(赤甲山)과 강남에 하얀 소금 같은 바이이엔산(白鹽山)이 자리 잡고 있다는데 어둠은 그 어떤 색도, 형태도 남겨두지 않고 주변을 온통 암흑으로 뒤덮었다.

쓰촨성(四川省) 출신의 작가 궈모뤄(郭沫若)는 “쓰촨 사람은 퀘이먼을 벗어나지 않으면 큰 그릇이 되기 어렵다(川人不出夔门,难成大器)”고 하였는데 유람선은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을 가득 태우고 지금 퀘이먼을 벗어나고 있다. 

취탕샤 협곡의 절경과 223년 4월, 유비가 두 아들과 사직을 제갈량에게 맡긴 ‘유비탁고(劉備托孤)’로 유명한 바이디청(白帝城) 등도 어둠으로 보지 못해 아쉽다. 이백은 <아침에 바이디청을 떠나며(早發白帝城)> 라는 시에서 강 양안(兩岸)에서 애달피 우는 원숭이소리를 들었다는데, 깊은 밤 쌓이고 쌓인 어둠 위로 짐승의 숨소리 같은 배의 엔진소리만이 물결 따라 흘러갈 뿐이다.

수 천 년 동안 전쟁과 풍류로 고단했을 바이디청은 차오르는 수위(水位)에 또 하나의 근심이 늘었을 테고 나는 그 곁에서 창장을 베고 좀처럼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08년 8월5일~14일까지 중국여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싼샤#창장#펑두#설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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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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