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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발표되고 공식화되는 사실들은 늘 정의롭고 평화로운 것 뿐이지만, 언제나 정치는 정의를 추구한다는 그 사실에 제동을 걸고 나선 현직 독립외교관이 있다. 1989년 영국 외교관으로 선발되어 15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등에서 사전 업무를 진행했던 엘리트 외교관인 칸 로스가 바로 그이다.

 

보통의 경우 하나의 전문 직업 세계를 경험한 후, 글로 남기는 자전적 에세이들은 많은 비판거리들과 자기 반성, 그리고 후배들에게 남기는 부탁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칸 로스는 현실에서 경험했던 부정에 대해 스스로 행동하며 개혁을 꿈꾸고 있다. 21세기와 20세기, 아니 그 이전부터 세계 정세의 큰 축이었던 영국의 엘리트 외교관이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UN에 참여할 수 없는 약소국들의 정치적 열세의 극복을 위해 일하게 된 이유가 이 책을 덮을 때쯤엔 이해가 된다.

 

 세상의 어떤 문제든 '현실'이라고 이유를 들기 시작하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달라지곤 한다. 수많은 전투현장에서 '현실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벌어진 학살이 묵인되곤 하고, 종교기관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완벽한 회계 제도를 적용하기 어려워 회계상 약간의 오차는 묵인되기도 한다.

 

정치에서 역시 '현실'때문에 묵인되는 일들을 저자는 솔직히 털어놓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일선 외교관들의 사고방식과 의사결정 방식들이 갖는 다양한 효과들을 폭로하고 있다. 거기에 맞춰서 어떠한 현실도 가슴 벅차게 정의로운 정치로 포장되는 국제사회의 외교 현장의 실상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일상적 삶이 어느 것 하나도 지역적이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책 21페이지에는 "그물망처럼 지구 전체에 퍼져 있는 다국적 단체와 기관은 어떤 면에서는 현대 외교의 중요한 성과다. 다국적 기구는 공공생활의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며 우리의 생활을 중재하고 때로는 법률로 존재한다. 숨 쉬는 공기마저도 다국적 기구의 중재 및 규제사항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인의 삶 속에서도 우리가 강조하던 세계화가 반영되어 있고, 국제화의 특성이 나타난 다는 것이다. 저자는 반영이나 특성의 범위를 넘어서 국가나 대륙간 상호의존의 심화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양상에서 외교관들의 역량에 한계가 있음을 설명하고, 일반인들의 참여가 절실함을 차근차근 말해주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외교관 사회

 

저자의 논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민주성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외교관의 세습 문제로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었다. 저자는 외교관이라는 집단이 스스로 '엘리트'화 되어 간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일선 정치인들로서는 외교관들의 업무에 대한 이해가 낮아 외교관들의 월권과 엘리트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둘째로, 외교관들이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매우 자의적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외교에 종사하는 우리가 국가의 원하는 바-더불어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의 이런 정체성이 어떻게 유지되고 생기는 것일까. 어떤 가치관을 구현하고 있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쓰고 있다.

 

외교관들이 '우리'라고 말하며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지만 그것이 반드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이기 때문에 외교관들의 '현실'적인 의사결정이 정당화되거나 결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셋째로, 외교 세계 자체의 부조리이다. 저자는 "우리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택하지 않고 정책에 부합하는 사실을 택했다고" 진술하고, "이런 정보 선별은 잘못된 목표에서 기인했다. 정부는 목표를 정해놓고 애초부터 신뢰하기 힘든 정보에 대해 매우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주장을 펼쳤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교 결정들이 당사자들이 말했던 정의와 최선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계속된 그의 글을 보면 "경제적 이익, 안보상의 이익, 그리고 가치는 일반적으로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는 주관적이고 복합적인 가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이며, 영국처럼 비교적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은 다르지 않다"며 회고 했다.

 

또 "우리 시대 신보수주의는 네 가지 핵심 외교정책을 권장한다. 미국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확장할 것, 적대적인 정권에는 공개적으로 맞설 것, 경제적 정치적 자유 증진, 국제질서를 미국의 안보, 번영, 신념에 부합하는 형태로 개편할 것. 요컨대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발전과 이익증진이 미국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계에도 중요하며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강대국들이 외교 기구와 절차를 임의대로 운영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추구 사이에서 균형된 시각이 아닌 국익충돌 방식으로 외교를 이해하는 사고 방식이나 외교관들의 정보 편견에 대한 문제도 지적하여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장된 사회적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독립외교관이 된 저자는 이제 비영리 외교자문기관을 운영하며 UN에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코소보와 같은 나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양심을 위해 명예를 포기한 저자가 더 큰 명예를 얻었다. 제도와 현실이 책임지지 못하던 약소국들의 외교를 도움으로써 인간의 마음속에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양심의 명예를 얻었다.

 

 한국 사회가 현실 속에서 포기해야만 했던 양심과 진실의 진술들을 되새겨 보게 만드는 책 한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을 통해 세상은 조금 더 발전해 간다. 그들이 말하던 '현실정치'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던 독자라면 일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독립 외교관

칸 로스 지음, 강혜정 옮김, 에이지21(2008)


#독립외교관 #칸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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