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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기숙사 입구. 이곳에서 나는 공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한국에서 '공식 노숙자'가 되어야만 했다.
 연세대 기숙사 입구. 이곳에서 나는 공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한국에서 '공식 노숙자'가 되어야만 했다.
ⓒ 마이타스 슈페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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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산 지 2년 반, 그 동안 벌써 네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살면서 꽤 많이 이사를 했지만 이사는 항상 싫은 일이었다. 뭐가 더 싫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짐싸다가 처음 이사왔을 때 가져왔던 것보다 짐이 두 배로 불었다는 걸 갑자기 깨닫는 건지, 아니면 새 집에 도착했는데 너무 더러워서 짐을 다 밖에 내다놓고 청소부터 해야한다는 걸 발견하는 건지. 어쨌든 한국에서 이사하기는 단순히 그런 것들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어디 보자, 내 오딧세이는 2006년 바람부는 9월 어느 아침 연세대 기숙사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나처럼 대학원생이었던 룸메이트와의 첫 대화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에 어디서 일했는지 봉급은 얼마였는지를 물어보길래, 나도 정중히 되물으며 전에 했던 일에 대해 질문했다. 그랬더니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check your pants, check your pants(바지 봐봐, 바지 봐봐)!!", 내 몸의 주요 부위로 거칠게 손짓해 보이면서 말이다.

이 "상황"에 내가 불편해하는 걸 보고 그는 이미 좀 실망한 상태로 다시 말했다, "지퍼를 보여줘!" 알고보니 그는 전에 큰 지퍼회사에서 일했었는데 내 청바지의 지퍼도 그곳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청바지엔 단추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완전히 실망해버렸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어느날 밤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발을 내렸다가 미적지근한 물웅덩이에 미끄러져서 거의 죽을 뻔 했던 일이 떠오른다. 중심을 찾고나자 바닥에 흥건한 수상하고 따뜻한 액체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겁이 났다. 룸메이트에게 일어나라고 소리를 질러 그게 뭔지 설명을 요구하자 그는 겨울엔 라디에이터가 공기를 건조하게 하니까 방바닥 전체에 물을 뿌려야 했다며(내가 바닥에 놨던 책들 위로까지 말이다) 내가 그런 것도 몰랐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었다(군대에 갔다오면 아는 기본상식이라면서).

어쨌든 제목이 이사에 대한 거였으니, 지금은 기숙사에서의 마지막 순간으로 건너뛰어야겠다. 이름하여 어느 목요일 아침, 침대에 늘어져 늦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덜컥 열렸다. 두 청년이 문간에 서더니 짐을 내려놓았다. 그 중에 한 명이 여기로 이사를 왔는데 언제 나갈 준비가 되겠냐고 물었다! 이사를 왔다고???

알고보니 나만 못 보고 지나간 로비의 작은 공지(집중해서 보지 않는 한 칠판의 한글 공지를 잘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다)에 다음 학기 기숙사비 납기 마감일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예고 통지 하나 없이 내 기숙사 계약이 취소됐고, 나는 한시간 정도만에 짐을 챙겨서 이사를 나와야 했다. 12시 15분 경(그 상황에서도 점심으로 콩나물 비빔밥을 급하게 만들어 먹은 뒤) 나는 세 개의 짐가방을 든 채 한국에서 공식 노숙자가 되어 추운 바깥으로 나왔다.

- 에피소드 II 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독일에서 태어나 10여년 전 첫 방한 이후 거의 매년 한국에 오다가 2006년 서울로 이주했다. 독일 유러피안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학위를, 2008년엔 연세대에서 MBA를 취득하였다. 그 후 서울에서 '스텔렌스 인터내셔널'을 설립하여 유럽 라이프스타일 제품 등을 수입판매중이다. 홈페이지는 www.stelence.co.kr, 최근 한국에서의 경험을 쓰기 시작한 개인 블로그는 http://underneaththewater.tistory.com/.



태그:#연세대, #대학원, #기숙사, #이사,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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