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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이 내리던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벌써 우리 곁에 성큼 봄이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다.

 

입춘을 하루 앞둔 3일 계룡시 엄사리에는 화요장이 섰다. 장터 곳곳에는 봄을 알리는 듯 각양각색의 꽃과 탐스러운 과일, 코끝을 자극하는 각종 먹을거리, 그리고 봄의 전령사 냉이나물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늘어서 있었다.

 

대보름에는 잡곡밥과 부럼 정월대보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부럼(오른쪽, 땅콩, 호두, 밤)과 조, 콩, 수수, 기장 등 각종 잡곡이 들어가는 잡곡밥이다.
대보름에는 잡곡밥과 부럼정월대보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부럼(오른쪽, 땅콩, 호두, 밤)과 조, 콩, 수수, 기장 등 각종 잡곡이 들어가는 잡곡밥이다. ⓒ 김동이

 

특히, 다음 주 월요일인 9일이 정월대보름인지라 각종 잡곡들과 나물, 그리고 부럼으로 쓸 호두와 땅콩, 밤 등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띠었다.

 

시장통을 누비는 시민들은 이번 화요장이 대보름 전 마지막 장이기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대보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보름하면 단연 쥐불놀이와 밥 훔치기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대보름 음식을 보고 있노라니 예전 대보름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어렸을 적 정월대보름의 추억하면 떠오르는 것이 단연 쥐불놀이와 밥 훔치기였다.

 

충청도인 우리 마을에서는 쥐불놀이를 일명 ‘개불이 쥐불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 그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도 ‘쥐불놀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것은 사실이다.

 

쥐불놀이는 보통 대보름 전날에 하는데 어린아이들이 다 먹고 버린 이유식 깡통을 주워 그것의 아래 부분을 대못으로 구멍을 내고 낫같은 날카로운 물건으로 옆면을 갈기갈기 찢어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만든 뒤 깡통 양쪽에 구멍을 내서 그곳에 가는 철사를 매달아 쥐불놀이할 깡통을 완성한다.

 

그리고는 겨우내 준비해 쌓아둔 장작더미로 가서 장작 몇 개를 꺼내 깡통에 넣을 수 있도록 다시 작은 크기의 장작으로 쪼갠다. 어느 정도의 장작이 마련되면 마루 한 켠에 놓여있는 고구마 자루로 가서 고구마 몇 개를 챙긴 뒤 친구들과 함께 드넓은 논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쥐불놀이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 깡통 안에 넣어서 익혀먹는 고구마를 먹는 즐거움 또한 쥐불놀이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논으로 가서는 본격적으로 쥐불놀이를 즐기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논 한켠에 쌓여져 있던 짚단을 가져와서 불소시개용으로 깡통의 맨 하단에 깔고 그 위에 준비해 간 장작을 올린 뒤 깡통 밑바닥에 구멍난 곳을 이용해 불을 붙인다. 겨우내 바짝 말라서인지 짚단은 성냥을 들이대자마자 곧바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고, 깡통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철사줄을 잡고 신나게 깡통을 돌려댄다.

 

잠시 후, 신나게 돌리던 깡통에서는 어느샌가 연기가 사라지고 벌건 불이 일어나면서 바람에 부딪히며 나는 ‘윙윙’대는 마찰음과 함께 둥근 원을 그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한참동안을 그렇게 깡통을 돌리며 즐기다가 장작불에 불이 붙었다 싶으면 준비해 간 고구마를 꺼내 깡통에 집어넣고는 다시 또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만 돌리고 이제 한번 고구마 꺼내봐. 익었을 거 같은데?”
“아녀. 아직 좀 더 돌리야 돼.”

 

같이 온 친구들도 궁금한 모양이다. 옆에서 자기 꺼나 재미있게 돌리기나 할 것이지 왜 남의 것에 자꾸만 관심을 갖는지... 하지만, 아마도 고구마가 익어가면서 나는 맛있는 냄새에 신경이 쓰였는가 보다. 얼마나 돌렸을까? 팔이 점점 아파오고 손바닥에는 얼마나 돌렸는지 철사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디 다 익었나 볼까?”
“빨리 꺼내봐. 냄새 죽인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깡통 속에서 고구마가 나오고 마침내 그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 나와 친구들은 먹이를 두고 싸우는 맹수들 마냥 한 곳으로 시선이 집중됐고, 입에서는 군침이 나도모르게 흘러나왔다.

 

“얼마 안 되지만 조금씩만 나눠 먹자.”
“얼른 줘봐. 맛있으면 집에 가서 고구마 가져오게.”
“자. 얼른 먹고 가서 빨리 가지구 와.”

 

친구가 가지고 온 고구마 덕분에 한참을 쥐불놀이를 즐겼고, 2% 부족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그리고 드넓은 논에 쥐불놀이의 마지막인 깡통을 던지면서 작은 소원을 빌어보기도 했다.

 

우리 작전은 몰래 들어가서 밥 훔쳐오기

 

화요장에 나온 정월대보름 음식 정월대보름을 일주일여 앞둔 3일 계룡시 엄사화요장에는 고사리, 씨레기 등 각종 나물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띠었다. 어린시절 대보름에는 밥훔치기 풍습도 있었는데 나물이 많아야 비빔밥이 맛이 있다.
화요장에 나온 정월대보름 음식정월대보름을 일주일여 앞둔 3일 계룡시 엄사화요장에는 고사리, 씨레기 등 각종 나물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띠었다. 어린시절 대보름에는 밥훔치기 풍습도 있었는데 나물이 많아야 비빔밥이 맛이 있다. ⓒ 김동이

대보름 전날 쥐불놀이를 즐기며 보냈다면 꽉 찬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에는 동네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잡곡밥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조를 나누어 뜸별로(현재의 통/반 개념) 돌아다니며 얻거나 몰래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 안에 놓여있던 밥을 훔친(?) 뒤 다시 한 곳에 모여 큰 양동이에 넣고 비벼서 같이 나누어 먹기 위해서다.

 

“너랑 너는 ○○뜸, 너는 누구랑 ○○뜸...”
“걸리면 어떡해?”
“오늘은 밥 훔치다 걸려도 뭐라 하는 사람 없을겨. 오히려 더 주면 더 줬지...”
“그려. 배고프니까 빨리 한바퀴 돌고 다시 모이자. 출발!”

 

이렇게 해서 친구들의 밥 훔치기 대작전이 시작되려하는데, 저쪽에서 다른 무리들의 소리가 들린다.

 

“밥 주세요! 밥 주세요!”
“쟤들은 안 훔치고 아예 달라고 하고 댕기네? 쟤들이 간 데는 못가니까 빨리 움직이자”

 

말을 마치고 우리 팀들도 작전 짠대로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친구 한명과 함께 첫 번째 목표 집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 팀은 작전이 몰래 훔치기로 해서 나도 친구와 첫 번째 집의 부엌으로 몰래 숨어들어갔다. 다행히 그 집은 불이 꺼져 있었고, 숨을 죽이며 부엌 안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옮겼다. 드디어 가마솥 앞에 도착했고, 조심스럽게 솥뚜껑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뿔사!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뭐여? 이 집은 밥도 안 넣어놨네? 아님 누가 벌써 왔다 갔나?”
“에이, 공쳤네. 얼른 다른 집으로 가자”

 

하고 부엌문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문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마을에서 공식적으로 밥 훔치는 것에 대해서 인정해 준 날인데도 마치 도둑질하다 걸린 것 마냥 뻘줌했다. 부엌에서 나오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집주인은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라면 두봉지를 내밀었다.

 

“어떻게 하지? 다른 얘들이 벌써 왔다가서 줄 밥이 없는데. 이거라도 가져가서 얘들하고 맛있게 끓여먹어”
“고맙습니다. 라면 덕에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네요”

 

‘야! 대보름에 이제는 라면까지 등장했네’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밥을 얻다보니 어느새 들고 간 그릇에 밥이 가득 차 기분좋게 모이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벌써 와 있는 얘들도 있었다. 어느덧 다 모이고, 얻어 온 것들을 보니 밥은 기본이고, 나물이며, 생채며, 부럼이며, 심지어 내가 얻은 라면까지 진수성찬이었다.

 

얻어 온 것들을 양동이에 전부 집어넣고 거기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함께 섞어 버무리니 어느 식당에서 이같은 비빔밥을 만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맛있는 정월대보름 저녁을 먹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지금은 비록 시골에서도 대보름을 맞아 쥐불놀이를 즐기고, 밥을 얻어먹는 풍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70, 8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정월대보름#쥐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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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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