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지음(知音)
..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지음(知音)을 만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 《중자오정/김은신 옮김-로빙화》(양철북,2003) 13쪽
“만나는 것처럼”은 “만나는 일처럼”으로 손질합니다. 바로 뒤에 보면 “기쁜 일”이라고 나오는데, 이 자리처럼 ‘일’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없을 것이다”는 “없다”나 “없으리라”로 고칩니다.
┌ 지음(知音)
│ (1) 음악의 곡조를 잘 앎
│ (2) 새나 짐승의 울음을 가려 잘 알아들음
│ (3)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평생 동안에 한 명의 지음이라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
├ 지음(知音)을 만나는
│→ 좋은 벗을 만나는
│→ 마음동무를 만나는
│→ 마음 읽는 벗을 만나는
│→ 마음 맞는 벗을 만나는
│→ 속을 읽어 주는 벗을 만나는
└ …
내 마음을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지긋이 헤아려 주는 사람은 나한테 좋은 벗입니다. 나 스스로 묻지 않아도 지긋이 건너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나는 그이한테 좋은 벗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벗, 마음이 이어지는 벗, 마음이 만나는 벗, 마음으로 사귀는 벗, 한 마디로 하면 ‘마음벗’입니다. ‘마음동무’입니다.
┌ 마음 + 동무 = 마음동무
└ 마음 + 벗 = 마음벗
놀이를 함께하니 ‘놀이동무’이듯, 생각을 함께한다면 ‘생각동무’입니다. 일을 함께하니 ‘일동무’이듯,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면 ‘이야기동무’입니다. 학교에서 사귄다면 ‘학교동무’가 되고, 절에서 사귄다면 ‘절동무(절집동무)’가 되며, 교회에서 사귄다면 ‘교회동무’가 됩니다.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 아주 가까운 사람을 일러 ‘너나들이’라고도 합니다.
ㄴ. 국외자(局外者)
.. 그분은 이미 국외자(局外者)로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고난에 참여하시고 인간과 함께 괴로와하시는 하느님이다 .. 《헤르테르트 하아크/김윤주 옮김-하느님에 대한 욥의 물음》(분도출판사,1975) 46쪽
“국외자로서의 하느님”에서 ‘-로서의’는 ‘-로 있는’으로 고쳐 줍니다. “이 세상의 고난(苦難)에 참여(參與)하시고”는 “이 세상 고달픔에 함께하시고”나 “이 세상 아픔에 함께하시고”로 손봅니다.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 국외자(局外者) : 일이 벌어진 테두리에서 벗어나 그 일에 관계가 없는 사람
│ - 그 사건의 국외자가 되어 버린 나는
│
├ 국외자(局外者)로서의 하느님
│→ 손님 같은 하느님
│→ 구경꾼 같은 하느님
│→ 구경만 하는 하느님
│→ 먼발치에 서 있는 하느님
│→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느님
│→ 팔짱 끼고 있는 하느님
└ …
강 건너 불을 구경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내 일이 있는 네 일로만 여기고, 우리 일이 아니라 너희 일로만 여긴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일로 여긴다면 ‘함께하’거나 ‘어깨동무’를 합니다. 네 일로 여기니 ‘구경’만 합니다. ‘팔짱을 낍’니다. ‘고개를 돌립’니다.
┌ 그 사건의 국외자가 되어 버린 나는
│
│→ 그 일에서 구경꾼이 되어 버린 나는
│→ 그 일을 멀거니 구경만 해야 하는 나는
│→ 그 일에서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나는
└ …
우리가 날마다 쓰고 있는 말과 글입니다만, 우리들은 우리 말 북돋우고 가꾸는 일을 내 일이 아니라 네 일, 또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깁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모질게.
우리가 늘 주고받고 있는 말과 글입니다만, 우리들은 우리 말에 담을 넋을 살찌우거나 일구는 일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할 일로 여기고 남들이 해 줄 일로 생각하며 내 삶하고는 동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나날이 더욱 끔찍하게.
우리가 어느 자리에서나 함께 나누는 말과 글입니다만, 우리들은 우리 말과 삶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헤아리지 않고 나 몰라라입니다. 내 아이한테 영어 빨리 가르치고 한자 지식 더 많이 집어넣는 데에만 마음을 쏟는 나머지, 영어를 왜 가르치고 한자를 왜 익히도록 하는지를 살피지 않습니다. 영어든 한자든 우리 말이든, 말을 배우는 까닭을 모르고 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 하지 않으며 말에 깃드는 얼을 추스르지 않습니다.
┌ 구경꾼 / 손님 / 남
└ 국외자 (x)
우리 땅에서 우리 스스로 구경꾼이 되어 간다고 할까요. 우리 마을에서 우리 스스로 손님으로만 지낸다고 할까요. 우리 삶터에서 우리 스스로 남남으로 헤어지거나 흩어진다고 할까요. 말을 말다이 쓰지 못하고 글을 글다이 쓰지 못하는 버릇이 깊어지면서, 우리 스스로 아름답고 싱그럽고 해맑게 살아가는 길을 놓칠 뿐 아니라, 어지러이 헤집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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