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詩人)의 마음이 활자(活字)화된 시집을 읽고 난 기쁨은 남다르다. 남모르게 귀한 예술작품 한 점을 소유한 느낌이고, 시집을 통해 보다 친밀하게 시인을 만나 담소를 나눈 기분이다.
이번에 접하게 된 시집은 한국 대표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모음집인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는 현역 시인 100명이 추천한 한국의 대표시 100편을 모아 정끝별 시인(명지대 국문과 교수)이 해설을 단 작품이다.
이번 시집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김수영, 한용운, 김소월, 김춘수 시인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시와 절절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시들이 수채화 같은 일러스트와 함께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의 <칼로 사과를 먹다> 중
황인숙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득 ‘사람에 대한 예의’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가슴깊이 되새기게 된다. 칼은 누군가를 향한 위협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칼로 일어 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성경의 교훈처럼 폭력과 위협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칼로 더 이상 상처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둥글게 다듬어 더 이상 칼에 대한 금기(禁忌)들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들이 남은 우리 젊은 청년들이여 힘을 내자!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 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김승희의 <솟구쳐 오르기2> 중
정끝별 시인은 이 시에 대해 평하길 “김승희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시는 상처의 꽃’이라는 말이 입에 돈다. 상처에서 피처럼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시라는 생각에 미친다……. 매일매일이 상처투성이다.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짓뭉그러져 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내장된 “상처의 용수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상처의 화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튕겨 오르는 힘, 솟구쳐 오르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새롭게 아침을 맞는다”라고 밝힌다.
정말 상처 주는 세상살이에서 우리 마음에 그 상처를 누르고 일어설 용수철마저 없다면, 꾹꾹 눌러 억압만 해 놓는다며 아마도 우리네 마음이 너무나 황폐해질 것이다. 그래도 상처의 용수철이 생겼다는 건 그만치 마음이 단련됐다는 점에서 기쁜 소식이다. 이 용수철이 방향을 잘 잡아 원죄와 죄책감의 무게에서 가벼워지는 선한 면죄부가 되기를.
시인들은 역시 선지자적 영감을 소유한 듯하다. 100여평의 시들이 하나하나 지금의 시공간에서도 동일하게 읽히고 이해되며 시적 감흥을 일으킨다. 이 귀한 시심을 통해 지금의 고통들이 조금은 위로를 얻은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