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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를 적게 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예산은 한정돼 있고, 받는 사람은 많으니까. 저도 많이 걱정돼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울서부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송현철(가명·51)씨의 말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는 그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며 "오늘도 한 달 전보다 2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밝혔다.

 

송씨는 앞으로 실업급여 신청자 숫자가 폭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일용직 노동자라고 밝힌 그는 "날이 풀리면 일할 데가 많아지는데, 올해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며 "최소한 10명 중 4명은 놀고 있고, 그중 아직 실업급여 신청 안한 사람이 더 많다"고 전했다.

 

송씨의 말대로, 지난 1월 실업급여 지급액과 수급자는 각각 2761억원과 35만400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달 지급액은 작년 12월 2487억원(30만명)에 비하면 11% 증가한 수치다. 신규 신청자는 전달보다 37.6% 폭증한 12만8000명에 달했다.

 

그렇다면, 실업급여 예산이 모자랄 수 있다는 송씨의 걱정은 기우일까?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예산이 급속히 소진되고 있어,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경우 모자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빗나간 경제·고용 전망... 예산 부족한 실업급여 '흔들'

 

올해 실업급여 예산 3조3265억원은 한국 경제 성장률이 0%일 때를 가정해 책정한 것으로, 지난해 집행액(2조8652억원) 대비 올해 예산 증가율은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16.1%에 불과했다. 2007년 집행액 대비 2008년 예산 증가율(17.7%)보다 낮았다. 이런 탓에 실제 필요한 돈은 올해 예산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 경기 침체에 따른 급격한 실업급여 지급 증가로 노동부는 부랴부랴 당초 예산(2조5600억원)보다 3370억원을 더 배정한 바 있다.

 

실업급여 예산을 담당하는 노동부 고용서비스지원과의 한 관계자는 "실업급여를 대폭 확대하거나 경제상황이 매우 안 좋아지는 등 예외적인 사유가 발생할 경우, 예산이 충분히 확보될지 확답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올해 한국 경제가 -2%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IMF 전망치는 -4%로 더 암울하다.

 

특히, 경제지표 중 실업급여와 직결되는 고용 부문의 경우,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은 올해 일자리 20만개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획재정부의 전망보다 더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1월 취업자 수는 2286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0만3000명이 줄었다. 1만2000명이 줄어든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에 비하면 그 폭이 9배 확대된 것이다. 또한 한국노동연구원은 11일 경제성장률이 -4%일 경우, 매월 평균 실업자는 작년 77만4000명보다 30만3000명이 증가한 107만7000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노동자·사업자 부담으로 운영되는 실업급여... "정부가 직접 나서야"

 

노동부도 '실업급여 부족 사태'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하고 있다. 실업급여 집행을 담당하는 노동부 고용보험정책과 관계자는 "예산 소진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부족해지면 하반기에 고용보험기금 운용변경을 통해 예산을 확충할 수 있다"며 "예산 부족 때문에 지급이 지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8조8000억원의 고용보험기금 중 대량실업 발생이나 그밖의 고용상태 불안에 대비한 실업급여 계정 준비금은 2008년 12월 현재 5조원이다. 실제 실업급여 집행액이 올해 예산보다 늘어나도 견딜 수 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동부의 대응이 너무 안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2007년 실업급여 계정 적자는 1000억원이고, 결산절차가 진행 중인 2008년의 경우 2천~3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특히, 올해 수입은 줄고 지급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돼 적자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의 실업급여 대상자와 지급액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점도 노동부의 안일한 상황 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나 한나라당도 이 주장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고, 실제 현장에서는 실업급여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실업급여는 3~8개월 동안 월 최대 120만원까지 수급이 가능하다. 또한 실업 직전 18개월 동안 6개월 이상 고용보험료를 낸 노동자 중 비자발적 실업자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민주당 당론으로 추진되고 있는 김상희 의원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자발적 실업자 중 6개월 미취업자에게도 수급자격을 주고, 실업급여 수급 기간을 최대 4개월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통과될 경우, 올해 7월 시행되며 1조8000억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 전문가들은 경제 상황 악화와 그에 따른 실업급여 지급액의 급격한 증가로 노동자와 사용자의 고용보험료를 재원으로 하는 고용보험기금이 급격히 소진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역시 "경제위기가 오래 가고, 실업급여 수급자가 크게 늘어나면, 고용보험기금이 모자랄 수 있다"며 "국가 비상시기니, 일반 회계로 실업급여를 지출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희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긴급구제 차원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고, 추미애 의원은 "사행사업 수익금 중 30%를 3년간 고용안정 사업에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사업자의 부담만 커진다"고 말했다.

 

"돈을 마음껏 뿌렸다고? 어디에 뿌렸다는 것이냐?"

 

11일 서울서부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실업급여 수급자나 이곳 직원들은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실업급여가 모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 일부 실업급여 수급자들은 예산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상황을 체감하고 있었다.

 

김호진(가명·53)씨는 "한 친구는 실업 3개월 만에 집에 쌀이 떨어졌다"며 "현재 실업급여도 부족한 판에, 실업급여가 모자라는 상황이 벌어지면 무척 막막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재형(가명·50)씨는 "정부가 실업급여에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다"며 화를 냈다.

 

"강만수 장관이 돈을 마음껏 뿌렸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에 뿌렸다는 것이냐? 녹색뉴딜이나 재벌·건설업체 살리는 데 엄청난 돈을 쓴 것 아니냐. 우리를 먼저 살려야지, 선후가 바뀌었다. 먼저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실업 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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